8화 찜찜한 기분들




"음...어라...나 분명 마지막으로 기억을 잃었던 게 벨더였는데...뭐지..."




비몽사몽한 의식 속에서 서서히 현실로 돌아온 내가 앉아 있던 곳은 마지막으로 의식을 잃었던 새빨간 벨더가 아니었다.

그 느낌은 마치 전에 엘더 병원에서 정신을 차렸을 때와 엇비슷했다.



'분명하게 벨더에서의 일은 꿈이 아니야. 누나한테 당했던 상처랑 후유증은 몸에 남아있으니까...'




몇 가지 의문점이 있다면 옷과 피부에는 역겨운 마족 놈들의 피가 상당히 많이 튀어 있고 굉장한 근육통이 나를 짓누르며 괴롭히고 있다는 점.
또, 내가 하멜 제 2의 어둠의 문 근처의 외진 곳에 덩그러니 혼자 떨어져 있다는 점.




"분명...아이샤와 누나는 날 그 자리에 그대로 둔 채 떠났는데. 그들이 나를 이 곳으로 옮긴 건 아니다."


누군가가 나를 이 곳에 옮겼거나 아님 나 스스로 내가 모르는 새에 이곳에 왔거나.

하멜, 그 곳은 예상과는 반대로 그 어떤 마을들보다 가장 평화로웠다. 황량했던 알테라, 모든 것이 무너져 어두웠던 페이타, 새빨간 불로 뒤덮혔던 벨더.

높고 청량한 푸른 하늘에 물의 도시답게 물내음이 공기에 섞여 기분 좋은 바람이 분다. 어째서일까. 이 곳은 가장 먼저 마족들에게 점령당했는데 어떻게 이리도 평화로운 거지.

자리를 털고 일어나 걸었다. 하멜의 익숙한 풍경에 예전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이 곳에서 많이 힘들어했던 청을 처음 만나고, 물 속에서 처음 전투를 해보고, 지하에 있는 신전에서 쓰러져있던 아라를 발견하고 공존의 축제 기간엔 다 같이 정말 재밌게 놀았었지.




"공존의 축제?"



해와 달이 하나가 되는...엘의 조각에서 엘의 힘이 전부 뿜어져 나와 세상을 가득채워 자연을 풍요롭게 하는 날.

이윽고 내 눈 앞에 나타난 것은 기괴하게 땅이 뒤집어진 틈에 박혀있는 제 2의 어둠의 문.

그리고 문득 하나를 깨달았다.



"제 2의 어둠의 문 임무 당일도, 그리고 며칠 전에도 공존의 날이었네...?"




그리고 강한 중력이 느껴지면서 내 주변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주변에 있던 식물들은 중력을 이기지 못해 그대로 고꾸라지고 나조차도 서있기가 버거웠다. 하늘을 날던 새 한 마리가 문 바로 앞에서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동시에 기분나쁜 거대한 문이 괴상한 소리를 내며 열리려고 한다.




'끽끡끼기기끽끼...쿠구구...'


"어 씨X...망할..."


왜 하필 지금 문이 열리고 그래...하...






열린 문 틈 사이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온다.


"뭐야. 애드?"

"...크하하하하하하! 정말 웃기는군. 나오자마자 만나는 사람이 엘소드냐?"



애드는 한층 더 미쳐보이는 듯한 면상을 하고는 문에서 나왔다.



"아아...오랜만이네? 어째...더 미친 것 같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응?"

"전부 다 나를 무시하니 말이야. 안 미치고 있을 수가 있겠나?"



쾅콰광!




"!"



예전보다 빠르다...!



"저 날파리처럼 날라다니는 기계덩어리들...엄청 짜증나."

"어이."



아차 뒤를 잡혔다!



[더스트 아나토미]
(*플라즈마 입자로 대상을 묶은 뒤 끊어내며 입자를 방출시킨다. 방출되는 입자는 중첩 타격된다.)





[반격]
(*사악한-타격시 상대 마나 10 증발)

[샌드스톰]
(*검으로 바닥을 쓸면서 폭풍을 만들어 내 연속타격 한다.)




애드의 가벼운 기계조각들이 폭풍과 함께 흩날리고 모래들이 그 틈새를 파고 들어 작동을 중지시킨다.




"네 놈이 이기고 있는거 아니니까 쪼개지마."

[둠스 데이]
(*플라즈마를 최고조로 모아서 폭발시킨다.)




"아 이런!"



애드 저 자식이!



[기간틱 슬래시]
(*기합과 패기로 적을 경직시키고 끌어온 뒤 맹렬한 연타를 퍼붓는다.)





"엘소드. 너한테는 안 져...으아아아악!"


[퀵실버 프렌지]
(*자신의 몸을 플라즈마로 감싼다. 일정 시간동안 공격하거나 맞을 때 플라즈마 입자가 튀어 대상을 타격한다.)





"내가 할 소리다 미친놈아. 이브 몸체나 내놔."

[더블 슬래시]
(*검을 휘둘러 강하게 한 번 내려친 후 검기폭발을 전방으로 내려꽂아 연타공격을 한다.)








"커흑..."

"쿨럭..."



아, 누나에게 당했던 상처에 상처가 덧씌어져 쓰라리다.



"엘소드. 너는 어째서...어째서."

"내가 뭐."

"그거 아냐. 너 진짜 짜증난다."

"뭔데. 너 날 어떻게 안다고 나를 그렇게 싫어하는 건데. 그냥 적이라고 치기엔 나 싫어하는 게 좀 심한데?"

"증오해."

"그러니까 대체 왜! 너 그리고 마족도 아니면서 왜 마족 편인거냐."

"너가 진짜 싫으니까."



아, 이 밑도 끝도 없는 증오는, 이유 없는 미움은 어떻게 받아야 하는거지.



"전부 다 가졌었던 느낌이 어때."

"...?"

"친구도, 사랑도, 존경도 전부."

"그게 뭐..."

"전부 다 네 것인게 짜증나서 뺏는 중인거야, 우리는."




[퀘이크 버스터]
(*길을 따라 연쇄폭발을 일으키는 에너지탄을 아래로 발사한다.)



"악!"

"난 오로지 단 하나만 원하고 또 원했는데 얻지 못했잖아."

"..."

"이브...이브를 가지고 싶었어. 이브를 내 것으로 하고 싶었어."

"그래서...그래서 이브를 가져갔잖아!"

"...이브의 그 고결한 정신과 깨끗한 마음도 전부 내가 가지고 싶었어."

"변태새끼가..."

"네메시스 코드 중 일부인 'null'코드. 이브의 자아. 그 코드는 이브라는 '사람'을 뜻하지."




사람...?





"이 세상에서 그 사실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나야. 그 코드는 사람의 '마음'을 완벽하게 표현해 낸 코드. 그녀가 사람으로 있을 수 있게 해주는 코드."

"..."

"뭐야 놀라지 않냐?"

"그 당연한 소리를 지껄이는데 이미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해 누가 놀라냐."

"!?"



순식간에 애드의 앞으로 갔다. 애드는 약간 당황한 듯이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고 나는 그대로 검을 내려쳤다.



"이브는 우리 친구야, 멍청아. 네가 알고 있는 사실을 우리들이 모를 리가 없잖아?"





본인은 자신에게 '사람의 마음'이 있다는 걸 모르는 것 같지만 말야.













[청, 네메, 아이샤, 엘리시스]
-회귀의 평원-





"아아...음...이 나소드 본체의 이름은 '애플'인 것 같습니다."

"어때? 괜찮아?"



아이샤가 새로운 내 몸을 꼼꼼히 살펴보며 부서진 부분이 없는 지 체크해준다. 청은 왠지 기분이 가라앉아 있는 듯한 표정이다. 무심한 표정으로 아이샤와 나를 쳐다본다.



"제 코드와 나소드의 싱크로율이 86%정도 일치합니다. 부서진 저 메이드용 나소드보다는 훨씬 좋은 것 같아요."

"오 그래? 땡 잡았네~"


"나소드 자체가 전투용이기도 하고...이 정도면 꽤 고된 전투도 감당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 정도면 굉장히 만족스럽다. 하지만 청은 그렇지 않은지 여전히 뚱한 표정으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하다.



"청. 표정이 왜 이렇게 심각합니까?"

"응? 아...아니 긴장이 좀..."

"네?"

"이제 하멜로 가는 거 잖아. 마음을 다 잡고 정신차려야지."

"그렇군요. 엘소드가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하멜로 얼른 가야해요."

"...그렇지."




아이샤가 엘리시스의 머리에서 뒹굴고 있는 먼지들을 떼주면서 말을 한다.



"마법써서 편하게 가자! 저번에 썼던 마법(하액) 때문에 여기로 올 때는 마력이 부족해서 텔레포트 마법 못 썼잖아? 지금은 마력 적당하게 모였어."

"그래도 어느정도 여유분을 남겨놔야..."

"괜찮! 전부 계산해보니 우리 네 명 텔레포트해도 여유분은 꽤 있어."



왠지 모르게 묘한 기류가 흐르는 것 같습니다.



"마법진을 그릴꺼야."



아이샤가 마법 지팡이를 소환한다.



"예전에 보던 지팡이랑 약간 다르네?"

"응! 좀 더 강화 시켰지."

"...어디로 텔레포트 할꺼야?"



아이샤가 씨익 웃으며 청을 흘겨보고 대답했다.






"하멜 제 2의 어둠의 문 앞!"



아이샤의 마법진이 검붉은 빛을 내며 작동한다.


0
이번 화 신고 2016-01-31 17:49 | 조회 : 2,144 목록
작가의 말
YluJ

연중 안 합니다아아...그저 연재주기가 많이 느릴 뿐...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