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꿈



1. E


낯익고 포근하고 상냥한 이 느낌. 그렇지만 어딘가 시렵고 쓰라린 느낌. 얼굴이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내 앞에서 조용히 돌맹이를 탁탁- 테이블 위를 가볍게 친다. 아무런 의식없이 그저 멍하니 멍하니 돌맹이와 손가락을 쳐다보고 있다. 이윽고 그 소리가 멈추고 돌맹이를 잡고 있던 손으로 컵을 집어든 채 컵 속에 든 액체를 마신다.


-정말 웃기다고 생각해. 한심하고...짜증나고...


내 앞에 앉은 사람이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굳이 표현을 하자면 나는 조용히 무언가를 마시는 이 분 앞에 앉아있을 뿐이고 이 분의 생각은 오묘하게 내 속으로 흘러들어오는 듯한...

-맞아. 나는 나쁜 사람이야. 너를 나락으로 떨어트리고...

"..."


나는 말을 할 수가 없다.

-내가 지금 있는 곳에 나 혼자 있기엔 억울하니까 같이 있자고...같이 있자고...널 끌어 내렸어. 어때? 모두가 너에게 악의를 표하고 정말 밑도 끝도 없는...답도 없는 매우 안 좋은 상황. 그런데도 어째서 네 곁에는 아직까지 많은 아이들이 남아 있는걸까.

=당신이 모든 일의 배후입니까!? 온 세상이 피바다가 됐습니다. 그 피는 이 세상에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들의 피...! 마족과 인간의 피가 뒤섞여 엉망이 됐어! 어째서 이런 일을...

-하아...너희는 악인이야. 철저한 악인. 나는 아무 잘못 없어.

=아무 잘못이 없다고요...? 당신이 악인입니다! 이런 일만...아니 적어도 그 문제의 어둠의 문만 열지 않았어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지 않아도 됐는데...어째서 소중한 사람들을 이렇게나 허무하게 죽이고 학살하고 몰아내고. 당신들은, 그 중에서도 그들의 수장인 너는! 희대의 테러리스트이며 살인자이자 없어져야 할 사람입니다.

-왜 나를 너희들의 기준으로 판단하지?

=무슨 소리죠?

-...엘소드.

=뭐야...내 이름을...

-넌 너무 어려. 하 됐다. 난 너에게는 나쁜 사람이지만 너희들에게 악인은 아니야.

=무슨 소리...

-글쎄. 나를 만나기 전까지 잘 생각해봐.






2. A


제 2의 어둠의 문의 결정적인 순간을 기억하는 자가 없다. 살아있는 엘소드, 청은 사고의 충격으로 누군가의 장난처럼 마지막 그 순간의 기억만이 날아가버렸고 이브 또한 딱 그 순간의 메모리가 손상되어 있다. 자, 이젠 죽어버리고 몸조차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나는 모든 것을 놓아둔 채로 그저 순리에 맞게 윤회의 길을 가야하는 것인가. 윤회의 길을 돌고 돌아 훗날 너를 만나야 하는 걸까 아님 이 속세에 남아 너를 도와야 하는 걸까.


내가 알고 있는 것 하나,
그 날의 진실. 나는 ...가 왜 그런 짓을 했는가 믿기지도 않고 믿고 싶지도 않아. 충격적이며 무너져 내려야 할 이 사실도 어차피 죽음의 경지에 다다른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구나. 이러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지만 그 내면에 담긴 '진실'은 알 수가 없어. 도대체 ...는 어째서 무슨 의도로 우리를 배신한 것이고 언제부터 그랬던 것일까.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의 소행인 것일까

내가 알고 있는 것 둘,
...는 살아 있는 것일까 죽은 것일까? 살아 있지 않아. 하지만 죽었다고도 할 수 없어. ...역시 나처럼 이미 죽었어야 할 운명인데 남아서 싸우는 친구들이 너무 안타까워서 그래서 나같이 영원한 안식을 얻지도 못하고 윤회의 길로 들어서지도 못하고 그저 하염없이 관찰자의 입장으로 바라만 보고 있는 걸까?

내가 알고 있는 것 셋,
보이드 프린세스의 궁극의 마법, '오지 않는 죽음'. 그녀가 이 마법을 완성한 이유는 그녀를 지원해주는 ...을 위해 아니면 ...을 저주하기 위해?



남겨야 해. 내가 아는 모든 것을 남겨서 그들을 도와야 해.







그런데 어떻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마냥 하염없이 안타까워하며 그냥 이렇게 세계에 남은 너희들을 지켜보는 것 뿐인가봐.











-끝-






'아...! 엘의 조각. 그리고 공명. 그 마족에게 닿을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마력이 필요해...약간이라도 좋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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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11-19 03:54 | 조회 : 1,992 목록
작가의 말
YluJ

떡밥을 와장창창창 투척! / '카타나가타리'라는 애니를 보고 있어요...진심 꿀잼이드라고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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