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병원




그들의 신체와는 다른 금속 물질로 만들어진 신체, 그 신체를 지배하는 정신은 메인코드, 신체와 정신을 연결시켜 주는 영혼은 동력장치. 우리들은 명백히 인간을 모방해 만들어졌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보다 더 뛰어나다고 하면 더 뛰어난 우리들, 나소드.

옛날의 천재는 우리를 만들었었고 엘 에너지를 원료로 하는 동력장치를 심어주었다. 하지만 천재는 다른 이들과 달리 나와 아담에게 현재까지도 그 정체가 불분명한 하위코드 'null'과 처음 주어진 엘 에너지만으로도 평생을 움직일 수 있는 무한동력장치를 남겨주었다.




'그것이 엘 에너지 폭주와 고갈로 나소드들이 죽어갈 때, 나는 계속해서 작동할 수 있었던 이유.'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코드는 메인코드의 깊은 자리에 존재했고 해킹, 변형, 삭제는 물론이거니와 나 조차도 접근이 가능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연구해도 그 코드의 존재이유와 무엇을 담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고 여러 번의 강력한 외부 충격과 바이러스에도 그 코드는 만들어질 때 당시 그대로 지금까지 남아있다. 현재는 간헐적으로 일어나는 오류의 원인이 이 코드라고 감히 추측만 할 뿐이다. 그 천재는 어떤 목적으로 다른 나소드들과 차이점을 둬 나와 아담을 이 세상에 남겨뒀는가.




이렇듯 외형을 제외하고는 전혀 다른 종족이다, 인간과 나소드는. 게다가 나는 나 자신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







청...당신은 인간이고 저는 나소드 입니다. 과연 0과 1로 이루어진 제가 당신을 깨울 수 있을까요?





-뇌파 측정기 해킹 성공, 역류 및 진입 시도-

-해킹 실패-

-다시 시도-

-해킹 실패-

-다시 시도-


실패, 또 실패.






다가갈 수가 없습니다. 분명 이론적인 계산은 완벽한데 당신의 의식 속으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이건 당신이 문을 닫고 있기 때문인가요, 아님
단순히 당신과 제가 서로 다른 존재이기 때문인가요?




'이대로면 청을 깨울 수 없습니다.'







-시스템 재 정비, Code: ???의 하위코드 code_null 활성화-

(*Code: ??? - 코드가 깨져버렸음.[불완전])
(*null: 아무 가치 없는)


-진입 가능. 5, 4, 3, 2, 1-








'여기는 어딥니까?'

'...'

'청 제 목소리가 들리시나요.'




이 곳은 청의 의식 속이 아니다. 내가 흘러 들어온 여기는 대체 어딜까?




'도대체 왜 자꾸 나를 괴롭혀? 오지 말라고...오지 말라고! 나를 깨우지 말라고!'

'청...제 말을!'

'나는 계속 여기 있을꺼야. 그냥 이대로 죽어가게 나를 놓아줘.'



여기서 나가려는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저를 기억해주세요. 그리고 다른 이들을 기억해주세요. 당신의 미련을, 해야할 일을...!'

'알게 뭐야.'



깜깜한 이 곳을 돌아다니며 청을 찾고 있지만 앞으로 나아가도 계속 어둠만 있을 뿐 청이 보이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나는 점점 튕겨져 나가고 있는 듯 하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청. 제발 저를 도와주세요.'

'...'

'부탁합니다. 제발 일어나세요. 나를 봐주세요.'

'너 누구냐?'



어둠 속에 쭈그려 앉아 있던 청을 발견했다. 그와 동시에 청이 놀란듯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나를 튕겨내버렸다.






'...이브 입니다.'






다시 뇌파 측정기로 튕겨져 나와 측정기에 남아 있던 나머지 코드들과 청과 만났던 null 코드를 재결합시켰다. 이젠 다시 들어갈려고 노력해도 들어갈 수 없겠지.



'우선 제가 움직일 수 있는 몸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감지. 반경 500m이내 인간형 나소드-

-없음-

-반경 1km이내 인간형 나소드-

-약 700m 근처_의료용 나소드 1대, 800m 근처_청소용 나소드 1대/ 총 2대 감지-

-'청소용 나소드_Maid200' 해킹 시도-

-내장코드 및 프로그램 제거, 해킹 완료. Code: ???를 이전하시겠습니까?-




내 코드의 전체가 맞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는 나소드에 잠입했다. 청소용 나소드라 거의 손상되서 조금 밖에 남아 있지 않은
전투 및 공격 코드는 최대한 써먹고 싶어도발현조차 될 수 없었다.



"제가 동료들과 싸워야 할 때 짐이 되겠군요. 게다가 이 나소드...장식용(인형) 나소드인데 청소용으로 개조를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엘 에너지와 충전된 마력이 많네요. 마법을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소드도 마력을 충전하는 방식으로 하급, 중급 마법을 쓸 수 있다. 하지만 비싸고 비효율적이다.)



내가 있는 위치는 병원의 1인실 병동. 아마 이 나소드의 주인이 병원에 입원해있고 이 나소드는 청소 및 간병, 수발을 들기 위해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청은 일어났을까요?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우선 환자복으로 갈아입어야겠네요. 이 옷은 너무 눈에 띄니..."



운이 좋게 주인은 병실에 없었고 그 사람이 없는 틈을 타 서랍장에 개여있는 반팔 환자복으로 환복한 후 귀를 가린 채 청의 병동으로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아무래도 인간들의 상황이 좋지 않다보니 병원에는 사람들이 많아 매우 바빴고 덕분에 사람들 사이에 숨어가며 이동할 수 있었다. 청은 사람들이 거의 안 다니는 1층의 외진 병실을 사용하고 있다.








드르륵-



"어..."

"...!"

"누구세요?"


청은 침대에 앉아서 태연히 몸에 덕지덕지 붙은 기계들을 떼내고 있었다. 그리고 멍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그...어떻게 깨어났죠? 혼수상태에 깨어날 가능성도 극히 희박하고 다치기도 많이 다쳤었는데..."

"어...많이 다쳤지. 아직 많이 아픈걸...음. 배에 두른 붕대는 못 풀겠네."

"얼굴의 붓기와 멍을 빼고 흉터를 제거하겠습니다."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마법을 내장된 마력을 이용해 써봤다. 나소드 자체에 내장된 마법인 듯 하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계속해서 마법을 썼다.
어차피 내장된 마법 중 공격용 마법은 없고 쓸데없는 마법 밖에 없는 듯 하니 이렇게 청의 치료에 마력을 다 써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치료보조용 마법인 듯 하네요. 배에 있는 큰 상처와 오른쪽 어깨의 창상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아야 됩니다."

"팔은 좀 아픈데 다리 뼈는 괜찮은 것 같거든? 걸을 수 있을꺼 같아. 그리고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엔 시간이 없지 않아?"

"어떤 시간 말씀하시는 거죠?"

"여기서 나가야 된다거나...아직 멍해서 기억이 잘 안나긴 하는데 드문드문 떠오르고 있는 거 보면 얼른 탈출하라고 내 직감이 말하고 있어."

"움직이시기에 힘들다거나 그런 건 없습니까?"

"빠르고 오래 뛰기는 안 될꺼 같지만...진통제 있으면 오래 걸어갈 순 있을꺼 같아. 뭐 진짜 가봐야 알겠지만."




그리고서는 뭔가를 찾는 듯 고개를 좌우로 돌리더니 자신의 팔에서 뽑았던 링거 중 하나를 다시 꼽고 약물을 넣었다. 진통제인 듯 하다.



"뭐하는 겁니까...?"

"사실 지금 아프진 않은데 찌뿌둥한게 약물 효과 떨어지면 아플꺼 같아서...미리 맞아두는 거라고 치자."

"...바보십니까..."


그는 나를 보고 한 번 싱긋 웃고서는 침대에서 일어섰다. 잠깐 비틀거리고는 병실 문의 손잡이를 잡고 한 손으로는 내 손을 잡아줬다.




"나가자! 이브!"



나를 알아봐줬네요.













"저 복도만 따라가면 뒷문이 나옵니다."

"근데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우리가 눈에 띄지 않을까?"


잠시 두리번거리고 청이 나가려고 시도했지만 반대편에서 오는 간호사를 보고 다시 원래대로 숨어버렸다.




"크...내가 너무 유명해서 나 알아볼까봐 못 나서겠다. 나도 너처럼 다른 모습이면 좋을텐데."

"이대로는 여기서 나갈 수 없습니다."

"그러게. 나 오래 달릴 수도 없는데..."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 미간을 찌푸리고는 내 얼굴을 봤다.


"사실 나는 두뇌파는 아니고 행동파지. 그치?"

"예?"




그리고는 한 번 씩 웃고는 나를 잡고 뒤도 안 돌아본 채 뛰어 나갔다.




"환자분! 병원에서 뛰면 안 됩니다! 어 뭐야! 저 환자들 누구야!"

"나가시면 안 돼요!"





그는 나를 이끌면서 달렸다. 항상 그랬듯이 복잡한 머리싸움과 계획같은건 전부 다른이들에게 맡겨둔 채 뛰어나갔다. 하지만 어느정도 달리자 체력적인 한계가 왔는지 몸이 아픈 건지 점차 달리는 속도는 느려졌고 몸을 숨기기 위해 우리는 숲으로 들어갔다.



"아...힘들다. 몸이 굳어져서 잘 안 움직인다. 막 몇 달 몇 년 누워 있었으면 큰 일날 뻔 했네."

"배의 상처가 굉장히 심합니다. 아프기도 하고 안 죽은 게 행운일만한 큰 상처인데...어떻게 정신을 차리셨죠?"

"응? 무슨 소리야~ 모르는 척 하기는."

"네?"

"너가 날 깨웠잖아."

"...저를 봤습니까?"

"응. 나한테 와서 일어나라고 해서 일어났을 뿐이야. 많이 답답하고 아프고...진짜 아프고 힘들긴 해도 정신줄 다시 꽉 잡았지."



숲에 난 길을 걸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제가 이브인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겉모습이 다른데."

"네 말투 네 느낌. 이브가 아니고 누구겠냐?"




나는 그의 밝은 눈웃음을 피하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청...이제는 말 해줘야겠네요."


숲을 조금 걸으니 초원과 언덕이 나타났다.




"...제 2의 어둠의 문 진압작전의 결과를 말씀해주세요."

"진압작전은 대 실패. 작전 중 갑자기 일어난 큰 폭발에 의해 전체 대원들이 어떤 과정으로..."

"..."

"...어떤 과정으로 사망 및 실종 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

"사망 및 실종..."

"아이샤, 레나, 레이븐은 사망. 아라는 실종되었습니다. 저 또한 공격코드의 대부분을 잃고 제 신체는 뺏겼습니다."

"하아..."

"청. 그 큰 폭발에 대해 생각나는 것 없습니까?"

"응. 딱 그 부분이 기억이 안 나. 내가 왜 이렇게 많이 다쳤는지도 기억이 안 나. 분명 그 폭발이 있기 전까진 가벼운 자상말고는 크게 다치치 않았는데..."

"또한 현재 인간의 방어선은 엘더까지 내려가버렸고 그 외 마을들에 대한 피난자나 생존자에 대한 데이터는 없습니다. 인류는 현재 마족에 의한 멸종위기에 있습니다."

"정말 암담하네. 이래서 나는 그렇게 의식을 되찾기 싫었던걸까? 마주하기 싫어서?"




어두운 그늘이 그의 얼굴에 깔린다. 많이 착잡해하고 속상해하고 슬퍼한다. 울지는 않는다.


"울지 않으시네요."

"...울 수 없다고 해야하나...내 친구들이 없다는게 현실성도 없고 막 답답하고 멍해. 그리고 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잖아. 정신 차려야지. 회악이지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해."

"살아있는 우리들의 몫이다. 이건가요?"




"이브."

"네."

"엘소드에게 가자. 그는 지금 어디있지?"





그의 눈이 살아났다. 그 전과는 다른 눈빛이다. 어둡고 무겁게 깔린 그 눈빛은 슬픔을 비추는건가 어떠한 죄책감을 비추는건가. 그게 무엇이 되던 그것은 그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된다.







"하멜. 지금부터 저희는 하멜로 갑니다."











+추가 (설정에 대한 작가의 말)

이브의 정보수집은 매애애애우 쉽습니다. 얘 자체가 0과 1로 이뤄져있잖아요. 제 2어문진압작전 결과도 코보를 해킹한다거나 아니면 미디어를 왔다갔다거리는 도중에 알 수 있는 거구요. 그리고 저 세계 사람들의 엄청난 핫이슈(자신들의 목숨이 달린)일테니 뉴스로 봤을 수도 있겠네요.

만약 간간히 '응? 이브가 저걸 어떻게 알고 있지?' 이런건 설정오류가 아닙니다. 그걸 다 풀어 쓰기엔 너무 길어지기 때문이죠. 사실 이번 화도 좀 늘려써서 지루한 감이 없지 않네요.





제 소설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정: 2015.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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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11-07 06:29 | 조회 : 2,098 목록
작가의 말
YluJ

링거바늘은 다시 꽂으면 안 돼요...삽화는 매 화마다 올라오는게 아닙니다! 가끔씩만 올라와요 ㅎㅎ [2015.11.15 설정오류에 관해서 살짝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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