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결심하다

" 공주마마. 결정하신 겁니까? "


조심스레 묻는 스승님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곧바로 아버지가 오라버니께 하사한, 지금의 나의 손에 놓인 검의 손잡이를 매만졌다.

수도 없이 고민했고, 그렇게 결정했다.


" 차분하게 저울질 했습니다. "


어리석은 복수심으로 인해 그릇된 판단을 할까봐 최대한 마음을 죽이고 판단했다.

하지만 뿌리 깊숙히 박힌 복수심은 절대로 뽑아낼 수 없었고 최선을 다했다. 선택이 잘못 되었다고 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기 위해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렇게 한 선택이니 아마도 힘들더라도 후회는 없을 것이리라 생각했다.


" 이 왕궁을 탈출해서 중앙 지역에 있는 테라 아카데미에 가서 미래를 준비할 생각입니다. 그를 위해서 후작. 절 도와주세요. 그리고 절 용서하지 마세요. "


살아납기 위해서 당신을 버리는 날 제발 용서하지 말아주세요. 당신이 날 용서한다면 난 절대로 숨 쉬면서 살아갈 수 없어.

눈물 어린 말을 내뱉자 스승님은 날 꼭 안자 나는 뒤에서 날 찌릿 바라보는 란트의 눈길이 느껴져 그의 품에서 나왔다.


" 스승님.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

" 아닙니다. 모든 선택은 공주마마의 의지이십니다. "

" 그리고... 혹시나... 어머니를 만나게 되신다면... 그렇다면... "


감정이 주체되지 않고 흘러나오려 했고 나는 그런 감정을 통제했다.


" 무엇이든 말씀해 주세요. 전해드릴테니. "

" 모두를 지켜주지 못 해서 미안하다고 전해 주세요. "


난 모두를 지키려고 애쓰다 지킬 수 있는 사람을 못 지키는 우는 범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것이 나의 의지고 앞으로의 다짐입니다. 그러니까 오라버니와 어머니께 더이상 날 걱정하지 말라고, 당신이 걱정하던 여린 여자아이는 자랐으니까 미안해하지 말라며.


" 알겠습니다. 공주마마. 부디 강녕하세요. "

" 알겠어요.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


마지막 인사라면 울지 말고 미소지으며 인사를 하는 게 바른 거니까.


* * * *


" 공주마마. 아니 아가씨. 물이라도 한 모금 드시고... "

" 간만에 마음껏 달리니까 시원해서 좋아. 걱정하지 말고 네 몸이나 챙겨. "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을 높게 묶어서 밤바람이 그대로 땀으로 뜨거운 목에 닿자 시원한 듯 미소지었고 그러자 란트는 곧바로 고개를 휙 돌렸다.

그러고 보니 란트란 이름도 귀족들에게 알려졌으니 가명을 정할 필요가 있었다.

백금발은 그리 많지 않으나 금발의 경우에는 흔하니까 딱히 가릴 필요 없었는데 란트의 얼굴을 눈에 띄어도 너무나도 띄었다.


" 안. 안 어때? "

" 네? 무엇을? 아 혹시 가명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

" 나 같은 경우에는 나나라는 애칭이 있으니까 상관 없잖아. 그나저나 네 얼굴 너무 눈에 띄는데... "

" 설마 제게 그런 말씀을 하실 생각입니까? 나나. "


단 한 번에 나나라고 하다니 살짝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란트라는 이름이 막 입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데 그는 애칭을 부르고 난 가명이라니 불공평했다.

조금 불편해진 덕분에 나는 불만스럽게 란트를 바라보았고 곧바로 그의 멱살을 잡고선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고 그러자 그는 내 눈을 피했다.

어머니의 눈과 똑닮은 수국빛의 눈이 란트의 금안에 그대로 녹아들었고 그러자 란트의 얼굴이 붉게 물듬과 동시에 그가 곧바로 내 손을 빼고선 사래라도 걸린 듯 기침을 내뱉었다.

결국 백기를 흔드는 란트를 보고선 기분이 나아졌고, 나는 곧바로 물로 목을 축이고선 곧바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 늦으면 안 챙겨줄테니까 빨리 와! "

" 네!!! "


* * * *


" 안. 나 머리카락이나 정리할까? "


긴 머리카락은 거의 귀족들의 전유물이나 다름이 없었고 그 머리카락의 상태가 좋으면 좋을수록 높은 귀족이라는 증거나 다름이 없었다.

나의 머리상태는 허리끝까지 올 정도의 긴 머리카락으로 높게 묶은 덕분에 허리 중간까지 오는 정도였다.

게다가 상당히 머리카락의 결 자체도 좋았으니 평민이라고 보기엔 상당히 어려웠다.


" 아가씨께서 원하신다면 제가 간단하게 정리나 해 드릴까요? "

" 뭐야? 그런 것도 할 수 있어? "

" 물론이죠. 어느 정도의 길이가 좋을까요? "


그가 상냥히 웃으며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자 나는 살짝 부끄러워 져 곧바로 그의 손을 쳐낸 다음 어깨보다 조금 더 아래 정도의 길이로 정리해 달라고 부탁했고 그러자 그는 단검을 꺼낸 후 내 머리카락을 가볍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몇 분 가량이 지나자 어깨보다 조금 더 아래 정도의 길이로 완벽하게 정리됐고, 그러자 나는 거울을 보면서 짧게 탄식을 내뱉었다.


" 우와. 머리 정리하는 솜씨 진짜 좋다. "

" 숲에서 수련할 때, 머리가 너무 불편해서 단검으로 자주 정리했거든요. "

" 그렇구나. 생각보다 재주가 많은걸? "


나는 싱긋 웃으며 안을 바라봤고, 그러자 안은 얼굴을 붉히며 날 멍하니 바라보았다. 안의 금안에 머리카락이 짧은 내 모습이 보였고 나는 순간 당황스러워 곧바로 뒤로 휙 돌렸다.

순간 짧은 머리카락을 가진 것에 대한 어색함과 동시에 금안이 너무 예뻐서 상당히 당황스러워서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 때 문 너머로 횃불을 들고 돌아다니는 근위기사들을 확인하자 곧바로 안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졌고 나는 눈에 힘을 집중해서 그들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기사들의 검에 새겨진 카르리안느 왕국의 상징인 푸른 매가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고, 그들은 왕 직속의 기사들이었다.

분명 하루 정도는 시간을 벌 수 있다고 스승님께서 호언장담 하셨는데 왜 이렇게 빨리 발각이 된 지 이해되지 않았다.


" 안. 어떻게 하지? 아직 테라 아카데미까지 가야 하는데... "

" 테라 산맥을 가로지르면 왕국의 경비를 무시하고 바로 갈 수 있을 겁니다. "

" 하지만... 그곳엔 몬스터들이 잔뜩 있잖아. 게다가 상급 몬스터까지 잔뜩 있는걸? "

" 후작님께서 주신 물건 중에서 테라 산맥에 위치한 상급 몬스터들의 영향권이 표시된 지도입니다. "

" 스승님께서 어떻게 이런 걸 알아? 이건 천금을 줘도 구하기 힘들잖아. "


지도를 완성하기 위해선 수 만 명의 인원이 필요할 정도로 상당히 많은 사람의 희생이 필요한 만큼 만드는 것 뿐만 아니라 그 가격 역시도 상당히 비쌌다.

하지만 상급 몬스터 영향권의 변하는 극히 적은 편이라 다시 만드는 기간이 긴 편이였지만 그래도 가격 하나만큼은 공작가에서도 부담이 갈 정도였다.

그런 걸 스승님이 가지고 있다니 상당히 놀라웠으며 동시에 왠만한 공작가보다도 더 많은 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후작가의 재력이 다시 한 번 놀라워졌다.

비록 후작가이긴 하지만, 공작위를 받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종종 말씀해 주셨다. 비록, 사촌 오라버니였던 파일런 공자의 죽음으로 작위 상승은 완전히 무리가 되었지만 말이다.

갑작스럽게 생각나는 파일런 오라버니의 생각에 나의 생각은 급격히 아래로 하락하는 듯 싶었고 곧바로 있는 힘껏 양 볼을 때렸다.

그러자 갑작스러운 내 행동이 당황스러운 것이었는지 안이 다가와서 날 꼼꼼히 살폈고 나는 그런 안을 향해서 미소지었다.


" 나나. 오늘까지만 쉬고 테라 아카데미로 향하죠. "

" 알았어. 난 씻고 나올테니까. "


여관에 간단하게 준비되어 있는 수건을 챙기고선 들어갔고 샤워기를 켰고 차가운 물이 온 몸을 적셔왔다.

뼈 속까지 차가워지는 느낌이 온 몸에 찾아왔고 나는 짧아진 백금발 머리카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레이디의 상징이나 다름 없는 머리카락을 자르다니 어머니가 아신다면 경악할지도 모르겠다.

어머니는 레이디 중의 레이디라고 불리울 정도로 레이디의 상 그 자체였고, 온화하고 아름다우셨다. 그래서인지 공주라서 어리광을 부려선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자주 어리광을 부렸고 그건 오라버니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한 백합과도 같은 어머니였는데 어째서 나는 그런 어머니보다는 처절하게 죽어가던 어머니를 더 많이 떠올렸는지 잘 모르겠다.

죽음의 비명은 너무나도 잔인하고 듣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워서 어머니와 오라버니의 피가 잔뜩 묻은 검을 들고선 날 죽이려 하는 그 모습이 아직도 머리 속에 선명해서 괴로웠다.

그 이후 살기 위해서 배운 검은 내게서 어머니가 바라던 레이디의 모습을 빼앗아 갔고, 나는 결국 어머니가 원하던 길과 정반대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 어머니는 무엇을 원하십니까... "


어머니가 이상적이라 여겼던 레이디가 되길 원하십니까... 아님 당신의 의지를 이을 기사가 필요하십니까...

적어도 전 두 가지 모두 양립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미 왕궁을 빠져나온 순간부터 나는 당신의 의지를 이을 기사이었으니까 이젠 그걸 가르는 것도 무의미하지만요.

이상하게도 어머니가 무척이나 그리워지는 밤이었다.


* * * *


" 공주마마께서 납치당하셨다니!!! 이게 무슨!!! "

" 공주마마의 호위를 맡았던 엠브란트란 기사가 납치했다는데 그 자가 평민의 망신 다 시키는 군. "


적어도 나는 평민들에겐 희망이나 다름 없는 존재였다.

미쳐버린 아버지를 등에 엎고 횡포를 저지르는 귀족들을 그나마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왕의 혈육. 그게 바로 평민들에게 위치한 나의 존재였다.


" 안한테 서둘러서 가 봐야 되겠다. "


이렇게 된다면 계획을 바꿔야 될지도 모르겠다. 내가 가출한 사실이 알려지면 대대적인 명예실추였기에 설마 대대적으로 알려질 거라곤 생각하지 못 했는데 설마 호위기사가 날 납치했다는 웃기지도 않는 연극을 꾸밀 줄이야 전혀 몰랐다.

만약 그렇다면 란트가 테라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건 거의 불가능이나 다름이 없었다.


" 나나. 여기서 무엇을 하고 계시는 겁니까? "

" 안. 나한테 계획이 하나 있으니까 빨리 여관으로 와. "

" 네? 그게 무슨...? "


이런 식으로 뻔뻔하게 나온다면 나도 방법이 따로 있었다.


* * * *


" 그래서 알아온 정보는? "

" 비완느 후작이 무사하다는 정보와 동시에 저에게 약 10만 골드의 현상금이 걸렸다는 정보입니다. "

" 미안해. 내 잘못이야. 왕은 명예를 실추하는 걸 제일 싫어하기에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대대적으로 알리지 않는 걸로 예상했는데 설마 납치라니 어이가 없네. "

" 그로 인해서 왕실 근위대의 신뢰도가 크게 하락했다고 합니다. 기사 한 명이 왕국의 고귀한 공주를 납치하는 데 막지 못 했다고요. "

" 후훗. 그럼 안은 왕실 근위대 모두를 따돌린 무도한 역도가 된거야? "

" 나나, 놀리지 마십시오. "


안의 안색이 급격히 창백해 지자 나는 후후 미소지었고 곧바로 안을 뚤어져라 바라보았다.

왕궁에서 빠져나올 때 가져온 아주 작은 블루 다이아몬드가 박힌 반지였고 거기엔 아주 강력한 폴리모프 마법이 걸려진 아주 귀한 비완느 후작가의 단 두 개 뿐인 아티팩트였다.

들려오는 전설로는 비안느 르 비완느 후작이 직접 드래곤에게 받은 아티팩트라는 전설과 함께 후작가의 가주에게 전해져 오는 보물로 왕실마저도 탐낸 보물이라 들렸다.


" 셋도 없는 보물이니까 잘 간직하고 있어야 해. "

" 이건 뭡니까? "

" 후작가의 보물. 상당히 흔한 형태라서 알아보는 이도 별로 없는데 아주 강력한 폴리모프 마법이 새겨진 아티팩트야. "

" 아... 그 엄청난 명성을 가진 그것이 이런 소소한 형태라니. 그나저나 비완느 후작가는 정말 후작가 맞습니까? "

" 왜? "

" 후작가 치고는 보물도 많고 명성이 대단하네요. 전 대륙에서도 명성있는 가문이니 당연한 것이겠지만. "


확실히 비완느 후작가는 후작가라는 이름보다는 공작가라는 이름이 더 잘 어울리는 거대한 규모의 가문이었다.

건국왕의 가신이었던만큼 카르리안트 왕국의 왕비도 자주 배출해냈고, 어머니에게 듣기로는 한때는 왕실마저 위협하던 아주 강력한 가문이라 말씀하셨다. 물론, 어머니께서 후작가 출신이었기에 더 후하게 평가하신 면이 없지 않았을 테지만 그래도 아예 거짓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 괜히 칭찬 받는 기분이라서 기쁘네. "

" 그나저나 테라 아카데미에 도착하려면 서둘러야 될 것 같습니다. "

" 알았어. 저기 안. "

" 무슨 일이에요. 나나. "


반지를 쓴 덕분에 바뀐 안의 녹안이 내 눈에 들어왔고 그러고 보니 앞으로 새롭게 시작할 안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갑작스레 떠올랐다.

비록 안과 란트는 동일인물이지만 안은 앞으로 나와 함께 할 [ 기사 ] 가 아닌 [ 친구 ] 였으니까 인사하는 게 옳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나는 싱긋 웃으며 [ 안 ] 에게 말했다.


" 앞으로 잘 부탁해. "

" 저야 말로. 나나. 앞으로 잘 부탁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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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5-31 16:41 | 조회 : 1,101 목록
작가의 말
유리아에덴

두 사람의 사이에서 오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서브 남주는 안 나왔는데!!! 서브 남주야 어디있니!?!? 참고로 안이란 가명은 렘브란트에서 란을 땄고 란이란 이름은 여성 같아서 안으로 바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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