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먼지가 풍기는 교실의 구석자리를 피해서 나는 창가 옆에 가방을 던져놓았다. 원래는 구석자리가 좋지만서도, 주말동안 무슨일이 있었는지 먼지가 다닥붙은 구석자리에 있는 다는 것은 정말 고약한 일인 것 같았다.

내 옆으로는 힘찬 빗줄기들이 창을 뚫을듯 세차게 두드리고 있었다.
아마 소나기겠지.
이런 비는 대부분 소나기였다. 내리는 것도 빠르고, 그치는 것도 빠른.

덜걱, 탁...덜걱, 탁... 곰팡내 누긋한 교실 안에는 진성이의 레버를 당기고 푸는 소리와 빗소리가 얽혀 작은 리듬감을 만들어냈다. 나는 고요한 리듬감에 빠져 살포시 눈을 감았다.

이진성을 처음만났을 때에도 이렇게 비가 퍼붓고 있었다. 그 때에도 마냥 소나기였지. 나는 차근차근 기억을 더듬어 갔다.

"우산이 없나?"
그래, 처음은 그 말이였던것 같다. 특별반에 새로 편입된 아이가 있다하여, 다른 날보다 훨씬 일찍 집을 나선 날이었다. 내가 먼저 그 편입생을 맞이하고 싶었다. 그 성의없는 교실을 보고 일을 치르지 않도록, 나는 최대한 편입생에게 즐거운 하루를 심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집에서 나온지 몇분 채도 안되어 울상을 짓게 만들었다. 소나기, 가랑비라면 모를까. 내 머리와 어깨를 치고 나가는 그 빗줄기들에 점점 힘이 빠지고 있었다. 내게 비란 그런 것이었다. 내 원동력을 쉴새없이 뭉그러뜨리는.

난 어쩔 방도도 없이 쫄딱젖은 모양새로 특별반의 뒷문을 열었다. 그때에는 뒷문이 잠겨있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뚝뚝, 머리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바닥에 아주작은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허둥지둥 나오느라 머리를 감싸줄 교복마이또한 잊고 있었으니까.

뒷문을 열었을때, 누군가의 회색빛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른쪽 벽 뒤로 보이는 회색의 무언가는 다름아닌 휠체어였다. 나는 머리에서 물기를 짜내며 그 곳으로 다가갔다.
그때였다.
"우산이 없나?" 앳된 소년의 목소리가 그 곳에서 부터 울려왔다. 생소한 목소리를 보아하니 편입생인듯 싶었다. 오늘 온다던 편입생도 조금은 특이한 면이 있나봐, 하며 속으로 조아렸다. 학교에 빨리 오고 싶어하는 아이는 몇 안되니까 말이다.

"이건 내 징크스니까."
"우산이?"
"아니, 비가."
아, 어쩌면 이때부터 각본은 짜여져 있었는지 모르겠다. 우리 특별반의 학생들은 하나같이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것을 좋아하니까.
나는 까만머리를 죽죽 입까지 길러 휠체어에 앉아있는 아이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 아이는 대체 눈과 다리, 둘 중 무엇이 보이지 않으며 움직이지 않는걸까, 하면서 말이다.

"너는 어때?"
"뭐가."
"징크스말이야. 넌 징크스가 있니?"
내 물음에 아이는 휠체어 바퀴에 달린 레버손잡이를 만지작거리며 고민하듯 고개를 달각거렸다. 그렇게 고민하던 아이가 답을 내놓은 것은 창을 치는 빗소리가 더욱 잦아들었을 때였다.

"이야."
"어, 이빨말이야?"
"아니, 숫자 이."
아이는 그 말에 작게 덧붙이듯 말했다. "아마 그게 내 징크스일거야." 애매한 말이었다. 아마라니, 그렇게까지 모호한 말이 있을까. 적당히나, 아무거나 처럼 그런 애매모호한 말들은 언제나 날 흔든다. 그런 말들 가운데 결정을 내리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니까 말이다.
"아마라니. 너무 애매해."
"그러게."
아이는 심드렁하게 레버를 풀었다, 당겼다를 반복했다. 나는 그런 아이에게 더욱 말을 붙였다. 내 일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 알고 나서야 시작된다.

"그거, 재밌어?" 나는 부러 관심있다는 듯 말을 걸었다.
"그다지."
"근데 왜 하는 거야?"
"리듬을 맞추는 거야."
"리듬?"
"빗소리랑, 이 소리랑, 잘 어울리잖아."
나는 그 말에 귀를 열어 소리들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창에 부딪히며 존재를 밝혀오는 빗소리와 그 틈새로 들려오는 웅성웅성, 등교하는 아이들의 목소리와 발소리. 그리고 가까이서 들리는 아이의 휠체어 레버를 풀고, 당기는 소리가 한데 묶여 삽삽한 리듬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고요하네."
어느 틈엔가 그렇게 말을 내뱉고 있었다.
"그렇지?"
"응, 소리는 모두 다르고, 움직이는데...."
나는 말꼬리를 늘렸다. 그 뒤를 잇는 것은 아이의 웃음 섥힌 한마디. "잘 어울리잖아."

우리는 한동안 누긋히 내려 앉은 교실 안에서 눈을 감으며 소리에 집중했다.
어쩌면, 아이가 눈을 감춘 것이 이 때문이 아닐까.
눈은 언제나 자신만만해서, 뜨고 있으면 자꾸만 의지하게 된다. 귀도 같았지만 무언가가 달랐다. 눈을 감고 귀에 의지하면 들리는 것이 생소하게도 수십가지를 달했다.

한동안 이 아이를 따라 눈을 감고 있다, 우리반 아이들 몇명이 뒷문을 열고 들어올때서야 눈을 떴다.
따가웠다.
계속 눈을 감다 뜨니, 파레트의 선명한 물 위를 주홍색물든 붓으로 살짝 건든 것 마냥 따갑고 색이 바래있었다.

나는 문을 열고 들어온 반아이들에게 경쾌히 인사 몇마디를 주고 받고나서, 다시 그 아이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 아이가 눈을 떴는지, 감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입까지 내려온 그 아이의 까만머리는 조금의 틈조차 보여주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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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3-26 07:29 | 조회 : 1,165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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