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러고보니 징크스가 2라고 했었지. 왜 그런거야?"
나는 그렇게 말문을 열고도 창 밖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창가를 내리치던 빗줄기가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느려져가는 빗줄기와는 다르게 휠체어 바퀴의 레버소리는 일정한 리듬을 만들어내고 있다.

"갑자기 그건 왜?"
"이제는 알려줘도 괜찮지 않아?"
달각달각, 문득 진성이의 레버를 놓는 소리가 빨라졌다.
"벌써 3년인데 말이야." 나는 콧바람을 훙훙불며 말을 덧붙였다. "지겹기도 지겨웠지."

지겨운 곳, 정겨운 곳, 고요한 마침표를 찍는 곳같은, 나는 창밖에서 웅성거리며 정문을 넘나드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저리 항상을 똑같을까.
진성이의 대답을 꼭 바라지는 않았다. 난 그저 머리 속에 작게 남은 응어리를 풀어헤치고 싶을 뿐이었다.

"..징크스, 그게 뭐더라." 몇번의 달각거림 뒤에 비밀을 알려주듯 속삭여오는 진성이의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달각거림이 심해졌다.
"아, 맞아." 징크스란 것의 의미를 이제야 기억을 낸 것일까. 진성이의 목소리가 흐느낌처럼 누긋한 이 공간에 젖어들었다.


나는 태어날 적부터 다리를 움직이지 못했다. 하지만 내 뒤를 이끌어주고 지탱해주는 가족들에, 할 수 있어야 할 것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 그렇게 나쁘게만은 느껴지지 않았다.

사건은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 2학년을 맞았을 때였다. 학교서 수학을 배우고 있을때에, 조심스레 반 문을 열고서 나를 찾는 선생님의 부름이 있었다. 난 그런 부름에 주위 아이들의 시선을 온몸으로 받으며 휠체어의 바퀴 레버를 풀어 달그락달그락, 소리를 내며 열린 앞문을 통해 복도로 나갔다.

선생님은 내가 복도로 나오자 살살 앞문을 닫고는 휠체어 뒤를 끌어주며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진성아."
"네?"
부드럽게 복도를 가르지르는 휠체어에 탄 나와 선생님 사이로 어둑한 공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그닥 어둑하진 않았나,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그랬을 터였다.

"힘이 들면, 선생님한테 말해주렴."
"네? 어, 네."
이상한 말이었다. 몇마디 나눠본적도 없는 선생님이었다. 갑자기 힘이 들면 말해달라니, 혹시 내가 왕따라도 당하는 줄 아는 게 아닐까.

그런 영문 모를 말이였지만,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앞에서 말했듯이, 선생님과 날 둘러싼 공기는 무서울 정도로 어둑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몇마디를 나누고 나니 금세 말은 없어졌다. 나는 움직이는 휠체어에 흔들리는 몸을 느끼며 가만히 앉아있을 뿐이었다.

선생님이 향한 곳은 학교의 후문주차장이었다. 아빠와 어린 남동생이 익숙한 회색 차 안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차문을 열고 내게로 다가온 아버지에게 안겨 차 시트 위로 이동했다. 내 옆에서는 아기전용시트에 묶여 손을 꼬무락거리며 손장난을 치는 데에 정신이 팔린 동생 민성이가 있었다.

"아빠, 어디 가는거야?" 통통하게 올라온 민성이의 볼을 살짝살짝 눌러보며 아빠에게 물었다.
운전석에 앉은 아빠는 곧이어 시동을 걸더니 칙칙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했다.
"병원."
목을 긁는 소리였다. 마치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꾹 누르는 것처럼. 난 그 소리에 고개를 돌려 아빠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왜?"
"엄마가 다쳤대."
"많이?"
"많이."
일그러진 미소, 조금 주름진 눈가에는 아갈한 방울들이 맺혀있었다.


"엄마가 죽었어."
난 창가에 팔을 걸치고 뭉슬한 미소를 짓고 있는 희선에게 말했다. 희선이란 그 아이는 내가 보아온 아이들중에 제일로 궁금증이 많은 아이였다. 아마 내 대답에 또 다른 물음을 꼬집지 않을까 생각하며, 나는 레버를 풀었다.

"왜?"
역시나.
나는 레버를 풀고 당기는 일에 집중하며 별 것도 아닌 일이었다는 어조로 말했다.
"교통사고. 엄마가 운전하고 있었는데, 큰 트럭이 앞에서 돌진해왔대."
창가에서 눈을 떼고는 날 바라보는 희선의 갈망어린 눈빛에 레버를 느긋히 잡아 당겼다. 그렇게 탁, 소리가 나자 그것이 신호인 마냥 말을 덧붙였다.
"더 이상한 건 뭔줄알아?"
덜걱, 다시 레버를 풀었다. "그 길에는 트럭과 엄마의 차만이 지나가고 있었대, 그런데 그 크고 한적한 길에서 트럭은 엄마차를 뭉갤듯이 달려든거야. 뭔가 이상하지 않아?"
창을 두드리던 빗줄기 소리가 홀연히 사라졌다. 고요한 리듬이 사라지자 공간안에는 소란스러운 소리들이 창 틈을 타고 흘러들었다. 나는 레버를 감싸고 있던 손을 들고, 입까지 내려온 앞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이상한걸."
내 앞으로 동공조차 보이지 않는 새카만 희선의 눈동자가 내 앞머리를 가르고 달려들고 있었다. 나는 그 시선을 가까스로 피하고는 앞머리를 다듬는 일에 집중했다.

"왜 그 넓은 길에서 너네 엄마차를 들이박은걸까?" 앞머리를 손톱으로 촘촘히 긁어내리며 다듬던 내게 희선은 시원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혹시 주위에 다른 차들이 없었나?"
앞머리를 다듬어내리던 손을 멈췄다. 고개를 들어 희선의 까만 눈에 시선을 옮겼다.
"무슨 소리야?"
"달려들었다며? 그런건 보통 강아지들이 많이 하던데."
"그러니까 그게 무슨소리냐고." 어딘가 핀트가 어긋나 있었다. 쟤가 주제에서 벗어나는, 그것도 한참을 벗어난 얘기를 하다니. 뭔가 이상했다. 3년동안 겪어본 것이지만, 신희선은 이 특별반의 아이들 중 눈치가 제일로 빠르며 이야기를 잘 이끌어내는 아이였다.

"차에 뭐라도 달려있었어? 그게 아니라면 좋은 냄새라도 났었나."
내 물음에도 꿋꿋이 제 할말만 하는 희선에 난 어이없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돌연 퍼붓던 소나기나, 핀트가 묘하게 어긋난 쟤나, 제멋대로이긴 제멋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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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3-27 21:28 | 조회 : 992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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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23075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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