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릴적 엄마가 신데렐라를 읽어주신 적이있다. 낭만적인이야기, 공주님은 왕자님과 만나 행복하게 살았다는 내게 있어서 꿈만 같은 이야기였다. 난 그때 책을 덮는 엄마를 향해 물었던 것 같다.

"엄마, 난 주인공이에요?" 엄마가 잠에 들기 전 읽어주던 동화책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긍정적이였으며, 마지막에 있어 행복해졌다. 그래, 나는 그런 설렘을 안고 엄마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또, 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엄마는 그때 그런 내게 뭐라고 대답을 해주었을까.


#1

학교로 가는 발걸음은 아주 가벼웠다. 오늘 아침은 그닥 좋지 않은 기분이었지만, 경쾌히 노래한곡 흥얼거리며 준비하다보니 기분은 금세 높아져만 갔다.

가볍고 기쁘고 경쾌한 리듬으로 길을 걷다보니 주위의 풍경또한 자잘하게 눈으로 들어오는 듯 했다. 나는 눈을 천천히 굴리며 주위를 살폈다. 내 왼쪽으로는 기다란 도로가, 오른쪽으로는 비료냄새를 느그적하게 풍기는 넓은 밭들의 행렬이 보여왔다. 나는 다시 앞으로 눈길을 돌렸다. 쭉 뻗은 보도는 주홍색 벽돌로도 이루어져있었고 드문드문 콘크리트로 덮여져있는 곳도 있었다.

절벅거리는 다리를 마음껏 휘저었다. 내 머리위를 컴컴한 구름이 그늘지게 만들었다. 분명 집 밖으로 나설때엔 이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서둘러 등 뒤로 메고 있던 가방을 앞으로 바꿔 메었다. 그리고 지퍼를 내리곤 안을 손으로 훑어내렸다.
역시나 우산은 없었다.
이런 일은 내게 있어 빈번한 것이었다. 비가 온다며 알려주는 뉴스의 기상캐스터의 말에도 덜렁대는 성격탓에 항상을 잊어버린다.

이 비가 만약 당장으로 쏟아내린다면 언제나와 같이 교복 마이를 벗어 얼굴을 감싸야 할것이다. 난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뿌듯한 미소라고 해도, 아마 빠듯한 미소인 것처럼 보이겠지만.
"씨.." 나는 그렇게 읇조리며 재빨리 뛰었다. 넉넉한 치마자락을 휘날리며 뛴다는 것은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였다.

주위를 둘러볼새도 없이 앞만 바라보며 뛰었다. 그렇게 숨이 목을 죄일 정도가 되자 겨우 학교 앞 횡단보도에 가까워져가는 것이다. 나는 건너편 횡단보도 신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망했다."초록불이었다. 심지어 깜빡이는 초록불이다.
이대로 뛴다고 해도 저 횡단보도의 신호는 빨갛게 바뀌어 건너지 못 할것이다. 난 아슬하게 바뀌어버린 신호에 눈을 깜빡거리며 횡단보도 앞에 섰다. 그리고 목 뒤로 느껴지는 무언가.

젠장. 겉으로는 태연한척 하고 있지만, 방금 전 목 뒤를 가격한 한줄기 빗방울에 속으로 욕 짓거리를 다분히 뱉어내고 있었다.

왜 하필 이럴때에 빗줄기가 쏟아붓는지, 나는 가방을 열고 미리준비해둔 교복마이를 꺼내들었다. 주위에서 느껴지는 여럿 동갑같은 아이들의 시선이 조금 무서웠지만 괴랄하게 쏟아내리는 이 빗줄기로 인해 하루를 축축한 머리로 지낼수는 없었다. 스타킹 위를 적시는 빗줄기들, 치마는 이미 비로 인해 색이 짙게 변해 달라붙었고, 셔츠는 말도 아니었다. 안에 까만티를 입은 것이 다행이다 생각하며, 나는 머리 위를 감싼 두툼한 교복마이를 굳게 휘어잡았다. 뭐, 옷은 갈아입으면 되니까 말이다.

"신희선?" 어색하면서도 익숙한 목소리가 탁탁이는 빗줄기를 뚫고 귓가에 스며들었다. 나는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어, 지민아."
"너 또 우산 안 챙겨온거야?"
내 위로 퍼붓던 빗줄기들이 잠잠하다. 고개를 들자 지민이의 까만 우산이 보였다. 나는 입을 가리며 눈물을 글썽이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역시 지민이. 고마워."

"으, 못말린다니까. 그렇게 비맞는게 싫으면 그냥 우산을 넣고 다니는게 어때?"
"시도는 해봤는데 말이지, 집에 가서 우산을 넣으려고 할때마다 자꾸 일이 터져서."
"일 끝내고 넣으면 되잖아."
"그걸 까먹어."
까먹는다는 내 말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얼굴에 뒤집어씌는 지민이를 보며, 나는 다시 자신없이 말을 덧붙였다. "종이에 써가도 까먹고, 메세지가 뜨는 알람을 설정해도 이상하게 안울려. 새 폰을 산지 한달밖에 안됬는데."

"분명 너가 알람을 잘 못 설정한거야. 하아, 내가 오늘 문자보낼테니까. 저번처럼 스팸으로 등록은 하지마."
"저번엔 미안, 자꾸 이상한 메세지가 날라오길래. 알겠어, 꼭 읽을께."
나는 한달전의 일을 떠올렸다. 무려 우산을 챙기지 못해 휴대폰을 하나 장만한 나는 개통하자마자 상태바에 뜨는 '29개의 메세지가 있습니다.'를 터치했다. 메세지 함에는 모두 다른 번호가 29개 찍혀있었는 데, 나는 그 중 맨 처음으로 날라온 메세지를 손으로 찍었다. 띡, 하고 화면을 차지한 메세지의 내용은 계속 웃음을 띄우던 내 마스크를 깨뜨렸다.

¤드림아파트 201동 607호.
내 집주소였다. 모르는 사람이 보내온 그 불안을 일으키는 메세지에 서둘러 그 번호를 스팸처리 했다. 그 뒤로 받은 메세지들도 몇개 터치해보았지만, '다음 내용은 계약 해지가 불능함을 알려 드립니다.' 라는 내용이 줄줄이 뜰 뿐이었다. 나는 그것들이 무서워 모두 스팸문자로 등록했다.

"누구야." 난 아무도 없는 집 안에 작게 소리쳤다. 누군가 날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까지 감정적이 되어본적이 없었던 내게 이런 상황은 처마끝에 매달린 고드름과 같았다. 차갑게 얼어붙은 몸이 자꾸만 아래로 떨어진다.

"엄마. 아빠." 돌아 오지 않을 사람의 이름을 연달아 부르며 나는 침대로 향했다. 차가운 침대보 위로 몸을 뉘이곤 코끝까지 이불을 들어올렸다. "무서워요." 오랜 밤을 보내며 무서운 것 따윈 다 없어진줄 알았는데, 아니였나보다. 난 아직 겁쟁이였다.


지민이의 우산 귀퉁이에 몸을 들이밀은 채 가만히 있으니, 곧 신호가 바뀌었다. 그제서야 난 지민이를 돌아보며 "우산 고마웠어. 잘가!" 이렇게 외쳤다.

"아, 잠깐만." 나는 뒤에서 들려오는 지민이의 작은 말을 가볍게 무시하며 재빨리 뛰었다. 절벅이는 운동화가 땅에 맞부닥치며 착착소리를 낸다.

비는 언제쯤 그칠까. 교사의 맨 오른쪽에 위치해있는 특별반으로 뛰며 그렇게 생각했다. 착착, 밑으로 감기는 물밟는 소리가 참 상쾌했다. 난 복도로 들어서 머리를 감싼 교복마이를 곧 머리에서 떨구었다. 투두둑, 마이를 힘껏 짜니 떨어지는 물이 장난이 아니다.

나는 치마와 마이를 털며 특별반의 앞문을 열었다. 눅눅한 교실 안에는 휠체어에 타 날 쳐다보고 있는 진성이가 있었다. 내가 두번째로 온건가. 아무리 빨리 출발해도 이진성을 이기기엔 역부족이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말이다. 난 싱거운 결말에 입술을 툴툴 털며 교실로 들어섰다.
"오늘도 또 우산이 없나?"
"어쩔수 없는걸. 징크스잖아."
"우산이?"
"아니, 비가."
휠체어에 탄채 바퀴에 달린 레버를 줄곧 풀었다, 잠궜다를 반복하던 진성이가 그렇게 물었다. 저 질문을 몇번이나 들었는 지 모르겠다. 난 익숙하게 그 질문에 대꾸했다. 수십번, 수백번 듣다보니 대본처럼 되어버린 대사들이었다.

특별반에는 여느 다른 교실처럼 책상이나 의자같은 것들이 없었다. 차가운 바닥과 칠판, 그뿐이다. 나는 그 성의없는 교실의 면모에 화를 냈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우리들같은 특정아이들에게는 익숙한 것들이었다. 무시당하고, 버림 받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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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3-25 15:02 | 조회 : 1,093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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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23075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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