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지금부터 그 생각을 고쳐주마

'콰앙-!!'



엄청난 굉음이 모래사막 안을 휘저었다. 영정이 반으로 걸라버린 그녀의 별장이 나가를 향해 떨어졌다. 겨우겨우 막아낸 나가가 숨을 돌릴 새도 없이, 다음 공격들이 그를 향해 쇄도해 왔다. 날카롭고 정교하며, 세밀하고도 섬세한 그녀의 공격에는 흠 하나 없었다.



"윽...!"



갑작스런 연속공격에 나가가 입술을 깨물고 물러섰다. 그런 그를 봐주지 않고, 영정은 곧장 날아들어 손바닥을 쫙 펼쳤다. 곧고 긴 손가락들의 지휘대로 보이지 않는 칼날들이 나가를 베어내려 요동쳤다.



"그만하세요!"

"행동이 소극적이구나. 날 봐주며 싸우기라도 하는 거니?"



너는 분명 내가 인정한 세계 최강이다.
하지만,



"90년 동안 현역이었던 이 할머니를 얕보면 안돼지!"



그녀의 목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그녀가 손을 한바퀴 돌렸다. 주변의 거대한 바위들이 가루가 되어 깔끔하게 흩날렸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나가의 눈은 착잡했다.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없다. 네 컨디션과 지리적 여건에 따라 누구는 구하고 누구는 내버려 둔다는 거니? 그런 안일한 마음을 가지고 뭘 하겠다는 거지?"



끝없이 대단한 공격을 내리치면서도 태연한 얼굴로 말하는 영정은 정말 소름끼쳐보였다.



"남을 돕고 사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남들보다 많이 누리고 있고, 미안하다는 생각도 든다구요... 하지만 역시, 제 인생을 전부 바치고 싶지는 않아요!"

"지금부터 그 생각을 고쳐주마."



염력에 온 신경을 집중할 모양인지, 나가는 안경을 벗고 눈을 떴다. 영정은 그런 나가를 보며 후련하다는 듯 방긋 미소지었다. 아름다운 미소와는 달리, 그녀는 조금도 봐주거나 힘을 조절해줄 생각은 없었다. 영정이 손가락을 뻗자, 다시한번 미친듯 공격이 쏟아져내렸다.

건물의 단면을 잘라내 버리고, 도망가거나 자신의 공격을 흘려보내는 나가를 향해 날카로운 공격을 보냈다. 나가는 확실히 힘겨워하는 기색이었다. 경험의 차이. 그것은 나가에게 필요한 것이자, 부족한 부분이었다.



"윽.."



둘은 한참이나 싸워댔다. 영정의 머리카락이 흩트려졌고, 드레스의 끝자락은 찢어졌다. 나가 역시 그동안 당한 상처들에 의해 아파하면서도, 한순간에 죽을 수 있다는 마음을 유지한 채 본인을 방어하며 공격을 감행했다.

영정이 마침내 거대한 바위를 통째로 들어올려 하늘로 날려보냈다. 나가가 의아해하는 순간, 영정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분명 그녀는 바위를 염동력으로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또다른 집중력으로 정교한 공격을 이어간다.

그녀는 대단했다. 전혀 힘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이것도 막아보렴, 아가."



그녀가 높은 상공으로 날아들며 나가를 내려다보았다. 순간, 내려친 눈부신 빛에 나가는 제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전 영정이 날려보낸 바위. 대기권까지 올라갔다 온듯한 그 바위가, 대기권의 열기에 불타며 엄청난 속도로 사막에 내리꽃히고 있었다. 이런 공격은 처음이었다.



"윽-!!"



유성을 막느라 방어에 허술해진 틈을 타 영정은 나가의 옆구리를 촤악 베어냈다. 붉은 색의 액체가 뿜어져나오자 나가가 신음을 내며 옆구리를 움켜쥐었고, 내리꽃히는 유성을 산산조각낸 영정은 이내 집중력을 잃어 바닥으로 떨어지는 나가를 안전하게 받아냈다.



"차라리.. 저말고 다른 적임자를 찾으세요-!"

"네가 아니면 안돼. 누구도 이길 수 없는 네가!
...
장담하건대, 목적이 없으면 인간은 나태해진다. 사명감이 없으면 타락한다. 힘만 있으면 이용당한다."

"나태해지는 건.. 그럴 수 있지만.. 다른건.."



반박하려는 나가에, 성가신 듯 영정이 입술을 깨물고 나가의 명치를 세게 때렸다.



"오직 네가 해야 한다. 언제나 자신의 사명을 피부로 느껴야 해."



영정은 나가의 눈을 피했다. 보면 안됀다. 마음이 약해져서, 곧 봐주게 되어버린다. 영정이 굳게 마음을 다지고 매정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저더러 뭘 어쩌라고요... 하루에 3시간 잤어요.. 다치고 깨지고 베여도, 그래도 참았어요..계속 돕겠다고도 말했잖아요.. 저더러 뭘 더 어쩌라고요-!!"

"..네 손으로 선택한 직업이야. 효율적이지 못한 건 그렇다 치고, 중요한 건 결과라고."



그렇게 말하는 영정은 괴로워보였다.



"저더러.. 다 버리라고요?"

"...익숙해질 거야. 너도."



과거를 회상하는 듯 그녀의 눈은 그리워보였지만, 동시에 씁쓸해보였다. 너무나도 슬퍼 보였다.



'쾅-!!'



이번에는 나가가 몰아쳐왔다. 아까와는 달라진 기색에 영정이 흠칫 놀랐지만, 이내 미소지으며 웃었다. 이제 곧. 끝나가고 있어.



'콰콰콰!!'



엄청난 양의 힘이 몰아쳐왔다. 본인을 방해하던 영정에게는 아직 많은 힘이 남아있었고, 충분히 이 상황을 뒤집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무서운 기색으로 몰아쳐오던 나가와 눈을 맞춘 그녀가 다정하게 웃어주었다.

그런후, 자신을 방어하던 힘을

없애버렸다.



'으득..! 뚜둑!!'



뼈가 부숴지는 듯한 느낌이 고통스럽게 몰려왔다. 분명 아파야 했지만, 오히려 후련했다. 이제, 끝이났다.

곧 놀란 듯한 나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정은 방긋 웃었다. 입과 눈에서 흐르는 피가 비릿한 향을 냈다.

힘을 거둬들인 나가에 의해 영정이 땅으로 서서히 내려왔다.



"여..영정님.. 어째서.."

"나는 봐주지 않았다. 네 승리야."

"하지만 분명..!"

"나는 졌고, 다쳤다. 그뿐이야."



영정이 딱 잘라 말하자, 나가의 표정이 굳어갔다. 그는 조금 화가 난 것도 같았고, 죄책감을 느끼는 것도 같았다.



".. 기다리세요."

"아니, 그냥 가라."

"네?"



나가가 이호를 데리고 가까이 다가서자, 영정은 아름답게 웃어보였다. 놀란 나가가 토끼눈을 뜨자, 그녀는 뒤를 돌아 하늘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상대의 동정으로 위기를 벗어나면 안돼. 온전히 자기가 떠안아야 한다."

"영정님!! 언제까지 이러실 거에요?!!"

"뭐?"



본래의 나가는 이러지 않았다. 이렇게 달라붙으며 영정을 챙기지 않았다.



"하아... 그럼 이렇게 하지."

"네?"

"다나를 데려와. 너와 함께 가지."



물론 그전에 백모래 도착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영정이 이 말을 삼키며 웃자, 나가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녀는 손을 흔들어주며 이호와 나가를 보냈다.

홀로 남은 그녀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까끌거리는 모래가 엉망이 된 드레스와 피가 엉겨붙은 손바닥에 달라붙었다.



'자박..자박..'



수분 없는 사막을 걷는 발자국 소리에, 영정이 단염한 채 고개를 들었다. 후련해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자신에게 다가온 남자를 바라보았다.



"왔구나, 백모래.

"안녕."



온통 새하얀 남자가 영정을 향해 맑게 웃어보였다. 왠지 모르게 위화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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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9-26 21:41 | 조회 : 1,219 목록
작가의 말
씨시 매그놀리아

사망에 이르고 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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