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이미 받아들인 문제거든요

"... 반성하세요."

"하지만 그 아이는..!"

"내 앞길에 방해되고 말고는 내가 결정할 문젭니다, 송하. 언제까지 어린애처럼 굴 거에요?"



영정의 표정이 성가시다는 듯 굳어졌다. 고고한 그녀 앞에 선 자는 초록 머리의 소나무 혼혈. 영정은 혀를 한번 차며, 아모르를 바라보았다.

흥미로운 눈으로 영정과 송하를 번갈아 쳐다보던 아모르는 이내 활짝 웃었다. 티없는 맑은 웃음이 그 둘을 향하자, 영정은 이내 풋 하고 작게 웃음을 터뜨리고는 아모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자, 그럼 이야기 끝나신 건가요?"

"글쎄요. 난 송하에게 확답을 받아야겠군요. 기다려줄래요, 아모르?"

"네."



전에 오셨을 때보다 밝아진 분위기라 저도 기쁜걸요.

아모르는 뒷말을 씹어삼켰다. 이제 겨우 단념하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은 영정에게, 고마워하지는 못할망정 다시 곱씹게 해 괴롭게 하기보다는 나았다.



"송하가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면 나는 송하를 더 이상 인정하지 않을 거에요. 난, 송하가 무척이나 소중한 인재니까 험하게 다루고 싶지는 않답니다."

"..그 아이는 위험합니다"

"끝까지."



영정이 한탄섞인 한숨을 내뱉었다. 이내 그녀의 눈동자가 험악하게 번뜩였다. 위협적으로 넘실거리는 검은 빛에 송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 내가, 그런 어린애에게, 질 것 같은가 보죠?"

"아닙니다! 물론..!"

"그럼 입닥치고 조용히 있어줘요."



조곤조곤 분노를 담아 끊어 말한 보람이 있었다. 송하는 깨달았다. 이 이상, 그녀에게 필요 이상으로 간섭하고 깊이 알려들면 버림받게 될 거라고. 그녀가 자신에게 질려버리고 말 거라고.



"알겠습니다."

"좋아요."



흡족하게 미소지은 영정이 송하의 등을 두번 톡톡 두드려주었다. 그녀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어린 송하를 구할 때부터, 그 두 뺨을 빨갛게 물들이고 나를 바라보던 그 어린 아이. 귀여웠다.

그녀는 아모르 쪽으로 몸을 돌렸다. 송하는 그렇게 가만히 서 있다가, 이내 깊이 고개를 숙이고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조금 더 있다가는 의심을 살 것이 분명했다. 백모래가 부탁했던 고양이 사료를 품에 안은 채, 송하는 자신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매정하시네요, 영정님."

"원래대로라면 애 손으로 죽였어야 할 운명이었어요. 그 정도 자비를 베푸신 신께 감사드려야 할 따름이죠."



이것으로 다 잘 된 것이야.

영정이 옅게 미소를 띄었다. 아모르는 그런 그녀를 한참이나 응시하다가, 이내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그래도 다행이에요."

"네?"

"이제 미련 없는 거 같아서."



아모르의 말에, 영정은 왈칵 쏟아지려는 울분을 참고 입술을 깨물었다. 핏방울이 흘러내려 길게 선을 만들어냈다.



"미련... 없을 거 같아요? 정말?"

"...아니군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점점 망가져가고 피폐해져 가며, 서로를 물어뜯는 광경을 보는 건 괴로운 일이에요."

"영정님은, ... 그런 모습 보지 않아도 돼요."



아. 그랬었지.
아모르가 미안하다는 듯 착잡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예상 외로, 영정은 조금은 편한 듯 웃고 있었다.



"...당신은 괴롭겠네요."

"영정님은, 그렇게 죽어도 좋아요?"



잠시간 침묵이 이어졌다.


...



...네.


이미 받아들인 문제거든요.



"그러니까, 전 괜찮아요."



살풋 웃어보이는 그녀의 투명하리만치 하얀 피부. 그 모습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와 같아서,아모르는 순간 눈을 깜박일 수밖에 없었다.



"신께서 당신을 도울 거에요. 죽음이, 끝이 아니랍니다."



아모르의 눈동자에 가득 희망이 채워지는 것을 보고, 영정은 고개를 돌려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정말, 신이 있다면, 이리 매정하진 않으리라.

그녀는 작게 기도했다.



'이 생에서의 인연 그대로, 다음까지 이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라고.







* * *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영정은 여전히 스푼 사원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적당하게 거리를 두면서, 가끔씩은 친근하게 다가갔다. 그녀를 롤모델로 삼는 히어로들은 영정에게 말을 붙이기위해 노력했지만, 영정은 가장 큰 공을 세운 히어로들밖에 만나주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각 부서마다 경쟁 아닌 경쟁이 일어났다.

하지만 정작 영정 본인은 하루도 마음 편히 잘 수가 없었다.

히어로를 은퇴하고 본격적으로 나가와의 싸움에 전력을 다하기 위해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죽을 각오를 해야 하는 만큼 한계치를 끌어올렸다. 자신이 죽은 후에 익숙해져야 하는 히어로들을 위해 점점 히어로 활동을 줄이고 있었다.

그래야만, 자신의 공백이 메꿔질 것이다. 그녀는 다나라는 사람을 믿었다.



"영정님."



"말해줘요. 괜찮답니다. 말해줘야지, 내 귀로 직접 들어야지, 신께서 원하시는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나는, 세계에서 몇위?

방긋 웃으며 물어오는 그녀에게, 아모르는 잠시 머뭇거리다 답했다.



"가급적이면 말씀드리지 않으려 했어요."



당신은, 나가 군 바로 다음이랍니다.

말도 안돼는 소리.
영정의 붉은 입술이 파르르 떨였다. 본인이 나가보다 약하다는 것은 물론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놀란 점은 그것이 아니었다.



"나는, 분명, 더... 약해야 했어요."



그녀가 알기를, 본인의 힘을 뛰어넘는 사람은 나가뿐만이 아니었다. 나가의 사촌동생 나쟈는 원작에서 영정을 뛰어넘는 힘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충격받은 듯 비틀거리는 영정에게, 아모르는 모든 것을 설명해주었다.

다른 세계의 영혼을 영정이라는 인물로 환생하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본질이라는 것이 있기에. 본래의 영정이라면 나가의 사촌 동생인 나쟈보다 힘이 약해야 했다. 하지만, 영정 으로 환생한 영혼에게는 그 영혼만의 힘이 존재했다.

영정의 비현실적인 능력. 적어도 100헥타르 밖의 적까지 광범위하게 전멸시킬 수 있는 힘. 신호흡하면 바다도 무리없이 가를 힘. 그 힘에, 새로운 영혼의 고유 능력이 혼합되어 염력의 범위는 늘어났다.

즉, 원래 바다를 가르는 데 총량의 10분의 3을 쓴 그녀가 이제는 10분의 1이라는 힘밖에 쓰지 않게 된다. (나가는 15분의 1, 나쟈는 10분의 2, 즉 5분의 1)

이러한 사실은, 영정에게 큰 충격을 줄수밖에 없었다. 무언가가 많이 어긋나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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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9-24 23:03 | 조회 : 1,282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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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시 매그놀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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