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아아,
영정님.

당신은 너무나 좋은 사람이에요.

히어로로써도, 하나의 인격체로써도.

당신은 다정한 사람이죠.

많은 사람을 구원했고, 앞으로도 그럴거에요.

.
.

그런데.

안타까워요.

당신을 이렇게나 신뢰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도,

당신은 너무 외로워 보여요.



-'아모르의 예언록' 에서 발췌-

* * *



"영정님."



호랑이가 다가와 그의 손에 얼굴을 부볐다. 비비적거리는 호랑이가 귀찮을만도 하건만, 아모르의 표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사랑스러워하는 듯한 표정.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대하는 자세가 영정의 신임을 얻게 만들었다.



"네."

"그러지 말아요."

"뭘요..?"



모른다는 듯, 감이 안잡힌다는 듯. 그녀의 표정은 완벽히 아모르의 감을 부정하고 있었다. 대배우로써의 세월은 결코 무시할 게 되지 않았다.

아모르는 그런 그녀를 보며 방긋 웃어주었다.

낭패다.

아모르가 웃는 모습을 보면 모든 것을 꿰뚫리는 듯한 감각을 느낀다. 영정 역시 내심 알고 있었다. 신의 사자는, 속일 수 없다는 것을.



"바꾸려 하지 말아요."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영정 그녀가 하려는 일은 모두를 위해서는 너무 좋은 일이었다. 죽음을 최소화한다. 운명을 바꿔 모두가 행복할 수 있게 한다.

아모르가 사랑하는 생명체들의 죽음을 막을 수 있는 계획이었다. 영정은 아모르가 그녀에게 당연히 협력해주리라 믿었다.

그리고 그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후. 나는, 당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려 하는 것 뿐이에요. 이대로 내버려두면 나는 물론, 더 많은 생명들이 희생당해요."



아모르의 표정이 순간 착잡해졌다.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 했다. 그 대단한 능력. 어찌 감히 무시하겠는가.



"그래도, 바꾸면 안돼요."



어느새 죄책감이 가득 묻어나오는 목소리에, 영정의 손이 살짝 떨렸다.



"내버려 두세요. 그냥 흘러가도록. 당신도, 당신의 역할을 제대로 해 주세요."

"잔인해라."

"모든 것은 신의 뜻이에요."



인간의 힘으로 신을 거역하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깨우쳐주듯, 아모르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사뭇 비장해보이기까지 하는 그의 얼굴에는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본인도 괴로울 것이 분명했다. 모두를 사랑하는데, 사랑하는 생명체들이 죽어가는 것을 알면서도 어찌 할 수 없다는 것은 괴로운 일일 것이다.



"이대로 운명을 받아들이라는 거군요? 그럼 나는 시한부인가?"



언젠가 백모래에게 죽어야 할 이 목숨, 전전긍긍하며 이어가고 싶은 생각 추호도 없었다.

그녀가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목에 걸린 완벽 목걸이가 찬란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하, 내가, 애초에 그 사람을 죽이지 않았더라면, 뭔가 달라질 게 있었던 걸까?"



아모르는 살짝 몸을 비틀었다. 그 이상 영정의 얼굴을 볼 자신이 생기지 않았다. 그 아름다운 얼굴이 절망과 분노, 경악에 잠기는 모습은 섬뜩할 것이다.



"....영정님께서는 잘 해주셨어요. 신께서도 만족하실 거에요.."

"아니, 나는 잘하지 못했답니다. 내가 아끼는 세상의 평화도 지키지 못하는 주제에."



답답해.

영정이 얼굴을 가리고 있던 베일을 벗었다. 그 안에 숨겨진 얼굴은 몹시 아름다웠다. 완벽이라는 이름의 보석이 유지시켜준 젊음이 영정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후.."



단념한 듯한 신호흡에, 아모르는 죄책감이 밀려오는 듯한 고통을 받았다.

미안해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해서는 안돼요.

영정에게 내려진 잔인한 판결. 그녀는 결국, 원작의 전철을 밟기로 했다.

죽어도 싫었는데.
그녀의 표정은 갑갑함이 어려 있었다.




* * *





"요즘 좀 빡세지 않아?"

"노동법 위반이야 이거.."

"뭐 추가수당만 준다면 4일 정도는 안자도.."

"난 싫어."



잠도 못자고 하루종일 일만 하러 다니는 스푼의 히어로들이 불만을 표출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울려오는 경보와 테러, 범죄사건의 계속됨에 히어로들은 지쳐갔다. 정신적 신체적으로 하루하루 병들어가는 그들이었다.



"나이프가 사주라도 한 거 아니야?"

"그럴 가능성도 있긴 해요."



한 히어로가 카페인을 입에 물고 투덜대자, 다나의 붉은 눈이 순간 번뜩였다. 그녀는 요 근래 떠도는 수상한 소문들에 의해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사실 아직 추측이지만.."



히어로들의 눈이 다나에게 집중되었다.



"영정님이 이제 히어로 일에서 손을 떼실 거란 이야기가 있다."



은퇴는 이미 한참 전에 했지만 무보수로 히어로 일을 하던 영정은, 대단한 사람이었다. 초능력 컨트롤과 그 특유의 카리스마로 범죄율을 낮춰주던 영정이, 점점 히어로계에서 발을 떼자 이런 식으로 범죄자들이 활개를 친다는 이야기였다.



"우리들끼리 일하면 효율 떨어지는데..."

"마땅한 인재도 없구.."



고민하며 머리를 맞대는 히어로들에게, 다나가 툭, 말을 자르고 끼어들었다.



"있어. 인재."



그녀의 손짓에 사람들을 뚫고 나온 것은 꽃집, 그러니까 가짜나이프의 일원이자 힐러인 일호였다.



"잘 부탁해요."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인사하는 것은 처음인지 어색하게 앞으로 나온 일호가 한숨을 쉬었다. 이호, 그 빌어먹을 내장 덕후. 만나면 한 대 후려쳐줄 거다.



"그럼 우선 이호군에게.. 우리가 동행할 거에요."



스푼에게 협력하는 댓가로 이호를 만나는 조건. 일호는 굳게 마음을 다잡았다.

귀능과 다나가 일호를 데리고 스푼 안으로 이동하던 중이었다. 저 멀리서 익숙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서장님!!"



개 혼혈의 세쌍둥이. 그중 시각 이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었다.
다나의 표정이 순간 험악해졌다. 시각이 저럴 정도면 보통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다. 성가시다는 듯, 다나가 시각에게 자초지종을 묻자,



"이호씨가... 사라졌어요!!"



스푼이 발칵 뒤집어질 사건이 벌어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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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9-24 23:01 | 조회 : 1,512 목록
작가의 말
씨시 매그놀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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