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나, 영정이에요.

"여...여..여..영정님! 그런 거 아니에요!"

"어머, 농담. 농담이랍니다. 젊은 사람이 유머도 안통하긴.."



당황해서 횡설수설하는 랩터에게 장난스레 웃으며 핀잔하는 영정.

이호는 본인 앞에 펼쳐진 상황에 놀라 눈을 굴렸다. 방금 전까지도 저를 죽일 듯 노려보던 고양이 혼혈이 이 대선배라는 인물 앞에서 이렇게 순한 양 같이 굴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흐음... 잠깐 볼까요, 이호군?"

"나가 있을게요!"

"저..저도요.."



나가와 랩터가 취조실에서 나가는 것을 확실히 본 영정은 곧 염동력으로 방음막을 쳤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다나로써는 분통이 터질 뿐이었다. 대선배라 막 대할 수도 없을 뿐더러 영정의 힘은 대단했다. 머리를 짜증스레 쓸어올린 다나는 이내 신호흡을 했다. 참자.



"서..서장님, 왜요? 영정님이 뭐 잘못하신거라도 있어요..?"



영정을 만난지 몇일 되지도 않은 나가로써는 그녀를 마냥 대단하고 훌륭한 사람으로밖에 인식할 수 없었다. 마냥 훌륭한 것은 아니더라도 잘못한 거라니. 다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리가 없다. 설령 죄를 짓더라도 자백하실 만큼 깨끗하고 올곧은 분이니깐.



"그냥. 불안하잖냐. 몇십년의 세월을 사신 분이, 몸 좀 사리셔야지."



혀를 차는 다나를 보며 귀능이 웃어제끼자, 나가가 말릴 틈도 없이 귀능은 벌써 저 멀리 날아가 벽에 밖혀버리고 말았다.



"그러게 왜 대들어요, 대들긴."



랩터는 귀능을 쿡쿡 찌르며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존경하고 동경하는 분이라지만, 그분이 백모래를 돕는다면 결코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랩터의 눈이 차갑게 식어갔다.

아니야. 막을 거야. 영정님만은 백모래에게 내주지 않아.





* * *





취조실 안은 조용했다. 영정이 마련된 의자에 앉아 한참동안 이호를 바라보았다. 부담스럽기까지 하는 시선에 이호가 눈을 피하자, 영정은 방긋 웃었다.



"풋."

"...???"

"달리 할 말은 없고. 행운을 빌게요. Bye, bye~"

"저..저기?"



분명, 용건을 가지고 있지 않았나? 이럴거면 왜 방음막을 설치한 거지?
이호가 영정을 잡았다. 그녀의 검은 눈이 살짝 빛났다.



"용건은 없었어요. 그냥 백모래를 탈출시켰다는 사람이 누구였는지 보고 싶었을 뿐이죠."



그럼, 조만간 또 만나요.

그녀가 산뜻하게 인사하며 붙잡힌 팔을 떼어냈다. 나이에 걸맞지 않은 팔팔함, 생기.
영정의 말에 한동안 넋이 나간 듯, 일호는 멍하니 그녀가 나간 문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내쉬었다.





* * *





"흐음~ 이제 슬슬 들어갈까."



단순한 산책이 이렇게 오래 걸리면 아마 듄도 뭔가를 예측했을 것이다. 그녀가 한번 신호흡하고 그대로 상공으로 떴다. 몸이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기분은, 뭔가 이상했다.

처음 이 몸에 들어왔을 때에도 적응하지 못했던 감각이, 이렇게나 익숙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런 생각들이, 영정이 아닌 자신을 일깨워주는 데 한몫 했던 것 같다. 영정은 본인이 영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했다. 그래야만, 바꿀 수 있었다. 정해진 수례바퀴를 부수고, 고쳐나가야 했다.

설령 그것이 자신에게 불행을 가져다 주리라도.

히어로로써의 사명감, 책임감이 저를 이리도 바꿔 놓았다. 배우로 시작한 인생이 특기 하나로 이리 달라질 수 있을까.
영정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어. 불로불사, 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겠지."



한때 불로, 늙지 않는 힘을 갈망했던 영정으로써, 인간의 욕망을 이해 못할 리가 없었다. 그런 고로 이호의 종족은 굉장히 흥미로운 관심거리였고, 그것은 백모래도 마찬가지였다. 세균들을 정화한다. 인간을 병들지 않게 해줄 수 있는 힘이었다.



"원작, 따라 가야 할까."



그녀가 깊이 고민하는 사이, 짙게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 * *




"이번 건은 확실히 처단해야 합니다!"



꿱꿱 거리는 저 개돼지들. 본인들의 사리사욕만을 채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들은 역겨웠다. 영정의 완벽한 입술이 비뚜름하게 틀어졌다.

간부들 회의에 참석하는 족족, 저 인간들이 외치는 정의를 명분으로 한 욕망, 욕심.



"영정님! 어서 결정해주세요!"

"절때 곱게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
회의장에 감도는 적막함. 분위기는 영정에 의해 조성된다.

마치,
지금처럼.



"시끄러워요."



그녀가 공중으로 띄워서 가지고 놀던 물컵이 산산조각나며 사방으로 파편을 튕겨냈다.



"히..히익... 딸꾹."



잔뜩 겁을 먹고 의자에서 당장에라도 일어나고 싶은 듯한 간부들이 눈치를 보았다.

하여간, 눈치는 더럽게 빨라서.
혀를 찬 영정은 이내 원래의 페이스를 되찾은 채 차갑게 말했다.



"다들 내가 누군지 모르나 봐요?"



나, 영정이에요.

누가 감히 그 사실을 잊겠는가. 간부들이 벌벌 떠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즐거웠다. 이런 모습 보는 맛에 간부회의 참석한다니깐. 그녀가 혀로 입술을 축이고 말을 쉬었다.



"이번 사건은 스푼에게 맡기도록 할거에요. 백모래를 잡은 게 그들인 만큼, 그정도 보상은 줘야하지 않아요?"



말을 맺은 영정이 이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고고한 여왕님같은 걸음걸이로 회의장에서 나간 영정을 바라보던 간부들이 긴장을 풀고서 나지막이욕을 내뱉었다.

건방진 할망구가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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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9-24 23:00 | 조회 : 1,295 목록
작가의 말
씨시 매그놀리아

늬들은 노망난 노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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