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단순한 산책이 아니야

"여..영정님..."



언럭키는 중앙으로 돌아온 후부터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어렴풋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던 마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영정을 응시하고 있었다. 중앙으로 돌아온 다음 이상해진 건 언럭키 뿐만 아니라, 영정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영정을 몰라? 이 나를? 어째서? 그럴 수가 있나? 애초에 뉴스는 보는 거?"

"영정님 저 그만.."



보다 못한 마고가 처리해야 할 서류뭉치를 들어 그녀에게 가져다 주자, 그제서야 정신이 돌아온 듯한 영정은 펜을 들어 서류들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A 지역에 경찰 배치한거, 취소하세요. 직접 가야겠어요. 인력낭비일 뿐입니다."



경찰을 더 투입하여 지원했음에도 별로 나아지지 않는 A구역의 범죄 차트를 유심히 살피던 영정이 마고에게 알렸다. 마고는 고개를 끄덕이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언럭키는 멍하니 있지 말고요. 당분간은 경호 임무 맡지 말고 쉬어요. 가끔 기분 전환 같은 것도 해야지."

"ㄴ..네.."



남자가 그리 소심해서야...
혀를 차며, 그녀는 서류에 다시 시선을 두었다. 조금 찜찜하면서도 잘 된 일이라 생각하며, 안심한 영정의 표정은 한결 풀려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일에만 몰두한 지 어느덧 일주일이 다 되어갔다.





* * *







"오늘은 좀 밖에 나갔다 올게요."

"아..! 어디.."

"산책, 이랄까."



베일에 가려진 얼굴이 방긋 웃는 것이 느껴져왔다. 듄이 고개를 끄덕이며 남아있던 서류들을 정리해 차곡차곡 쌓아놓았고, 그것을 질린다는 듯 처다보던 영정이 금새 날아올랐다.

흥미로워라. 익숙한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영정이 인터넷에서 본 동영상을 떠올렸다. 거대한 게와 한 히어로의 대치상황이 고스란히 담긴 영상이었다. 그것이 업로드 된 시각은 약 2분 전.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일 것이 분명했다.



"ㅡ!!!!"



목소리로 충격파를 쏘는 고양이 혼혈의 히어로 스텔이 현장에 투입된 모양인지 그 소리와 충격이 진동으로 느껴지자, 영정은 마침내 장소를 찾아냈다.



"이런, 위험한 상황이네요?"



거대한 게가 집게발을 공중으로 크게 휘둘러 스텔을 뭉개놓으려 하는 순간, 그녀는 그 앞을 가로막고서 게의 발을 처냈다.



"영정님... 여긴 어떻게 오신 거에요?"



황당하게 쳐다보는 시선에, 영정이 그들을 향해 빙글 몸을 돌렸다. 뒤에 방해물이 있든 말든, 공격하든 말든, 그녀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 것처럼 평범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 스푼에 잠시 볼일이 있고... 저번에 만났던 그 친구랑 이야기를 좀 더 해보고 싶은 마음에."



나가가 살짝 몸을 떠는 것을 놓치지 않은 영정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돌아간 이후로 자신에 대해 좀 더 알아봤기를 바라며, 영정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거대한 게를 통째로 공중으로 들어올렸다.

게가 다리를 버둥거리며 저항했지만, 그것을 성가시게 여긴 영정은 게의 발들을 구속한 후 그대로 저 멀리 바다 쪽으로 던져 버렸다. 10초 만에 생긴 일이었다.



"또 만나네요? 나가 군이었죠?"



확실히. 내게 굴욕을 준 친구죠.

유독 세게 잡아오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 나가가 그냥 단순한 느낌이겠지, 하며 넘어가자, 영정의 얼굴이 다시 한번 구겨졌다.



'..나가... 저 눈새..'



옆에서 구경하는 사사는 죽을 것 같았다. 두 초능력자의 대치 아닌 대치가, 그냥 격렬하게 싸워주었으면 하고 바란 것은 이번에 두 번째였다. (첫번째는 서장님과 초짜 간부)



"스푼으로 데려다 드릴까요?"



베시시 웃음을 지은 나가가 텔레포트라는 특기를 과시하며 영정에게 물었다. 나가를 잠시간 성가시다는 눈초리로 바라보던 영정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들은 눈 깜짝할 사이 스푼의 건물 앞에 도착해있었다.





* * *






"저기 아저씨, 아저씨 맞지?"

"...? ..응.."



보라색 머리에 무심한 눈동자. 랩터가 이호를 앞에 앉혀두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역시, 백모래 그자식과 연관되면 언제나 흥분한단 말이야. 본인도 모르는 사이 굳어진 습관은 무서웠다.



"난 백모래에게 가족도 친구도 잃었어. 그놈은 지금도 번번히 내 인생을 방해해."

"미안..."

"어 그래. 미안할 걸 알면 그러지 말았어야지. 우리 자기는 백모래 잡느라 손에 구멍까지 났는데 그쪽 때문에 수포로 돌아갔잖아. 이 신체적 정신적 손해는 이자까지 쳐서 갚아줘야 해."



백모래를 탈옥시키기 위해 노력한 것도 모자라, 본인의 목숨을 가지고 스푼의 히어로인 나가를 협박한 사람. 그것이 이호가 처한 상황이었다. 안절부절 못하던 이호가 이내 수갑을 찬 손을 내밀며 물었다.



"펜 좀 줄래?"

"펜은 뾰족해서 안돼겠고."



랩터가 건넨 크레파스로 종이에 계좌번호를 쓴 이호가 고개를 떨구었다. 그제서야 랩터는 만족했다는 듯 방긋 미소를 띄었다.

헤이즈라는 애인을 두면 영향을 크게 받는 모양이다.

그러나, 몇번의 대화 끝에 소용 없음을 알아버린 랩터는 잔뜩 흥분한 채 귀를 바짝 세웠다. 날이 선 목소리가 취조실 안에 가득 메워졌다.



"알았다고 말해. 버리라고... 알았다고 말하라고. 안그러면 죽..."



거듭해서 사과하는 이호에 답답함을 감추지 못한 랩터가 죽인다 라는 말을 꺼내기 직전, 누군가의 손이 그녀의 어깨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히어로가 그런 협박을 하면 안돼잖아요, 랩터 양."

"...아...여..영정님!!? 아니 그게 이건..! 그게 아니라!!"

"풋."



피곤해 보이면서도 영롱한 눈빛을 띄는 나가를 곁에 대동한 채, 작게 웃음을 터뜨리는 여인은 세기의 히어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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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9-24 22:56 | 조회 : 1,677 목록
작가의 말
씨시 매그놀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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