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야근

괴물이 꿈꾸는 것을 인간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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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이 자료 말인데요."

그는 책상 위에 늘어놓아진 지금까지의 연쇄 살인의 증거나 사진, 통계 자료들에게서 겨우 피곤한 눈을 돌렸다. B급 호러영화의 연출 같은 시체 더미의 사진에서부터 그 피해자의 세세한 신상정보나 사건 현장의 흔적 등 죽인 수가 워낙 많은 만큼 자료도 방대했다.

"뭐야, 난 바쁘다."

선배가 컴퓨터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퉁명스럽게 말했다.
사건이란 것은 이것 한 건만 있는 게 아니고, 회색 눈도 이 사건의 범인 한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이미 서로 진작에 업무 시간 초과였다.
언제 침대에 등 편히 붙이고 잤던가. 계속 딱딱한 간이 침대나 의자 위에서 쪽잠을 자는 게 전부였다. 침대가 지독히 그리웠다.
짙은 커피의 카페인 기운을 빌어 그는 침대에 대한 상념을 떨쳐냈다.

"진짜 무차별이네요. 이거. 연관성도 없고."

"그래, 없지. 의도하지 않아서 더 짜증나."

"길가는 사람 마구잡이로 잡아 온 꼴이네요."

가끔 공통점이 보이는 이유는 단순히 그 근처의 지나가는 사람을 끌고 왔기 때문.
학생이 많았던 곳은 사건 현장 근처에 학교가 위치하고 있었고, 같은 동네 사람들인 건 그 근처에서 집으로 귀가하던 사람들을 끌고 왔기 때문이었다.
지독할 정도로 가는대로 손 댔다-라는 식이었다.
같은 구역 내라면 모를까 구역이 달라지면 전의 사건의 피해자들과의 연관성 따위 없는 거나 마찬가지. 정말로 무작위에 무차별이었다.

"근데요, 선배. 최근의 2건은 확실히 뭔가 목적이 있는 것 같지 않아요?"

"뭐, 무슨 목적."

시큰둥해하는 선배에게 그는 사진과 서류를 들이밀었다. 이 구역에서 살해당한 피해자들의 사진과 신상정보였다.

"이것 봐요."

그는 사진들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피해자가 대부분 여성이잖아요. 남성의 숫자가 묘하게 적어요."

"뭐? 두번 다 여자가 많이 지나갔었을 수도 있잖아."

"....그 정도로 이 동네가 성비불균형이라는 생각은 안 드는데요. 그, 확률론적으로요."

"시끄럽다. 난 통계파야. 통계론적으로 말해."

"아니..."

그는 뭔가 따지려고 생각했지만 그만두고 다른 2장의 사진을 꺼냈다.

"그럼 이거요."

"이 미친 시체인형이 왜."

두 장의 사진은 사건 현장의 중심에 만들어져 있던 시체를 엮은 '인형'이었다.

"두개 다 머리를 단발로 자르고, 눈을 뽑았고, 내장도 전부 빼 놓고 뼈로 대체했어요. 연관성이 보이지 않아요?"

"전에도 공통된 조형물은 있었어. 너 준 자료 제대로 봤냐?"

"아니...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잖아요. 그때랑 다를지 어떻게 알아요?"

선배는 인상을 쓰며 그제야 모니터에서 시선을 뗐다. 그는 끈질기게 말했다.

"여기서 특히 오래 체재하는 것 같고, 특히 사건 사이의 잠복기도 길었어요. 게다가 피해자가 여성으로 편중되어 있고. 조형물은 단발머리 여자를 나타내는 것 같이 되어 있고. 딱 촉이 오잖아요!"

"오긴 뭐가 와."

콱하고 선배가 그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그 놈이 그런 식으로 연관성 제시하다가 우릴 엿먹인 게 몇번인 줄 알아? 그만하고 자료나 다시 보고 와. 나도 가뜩이나 바빠 죽겠구만."

선배는 투덜거리며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학교의 교무실에서 선생 하나가 살해당해 한창 온 관공서나 학교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사건이었다. 대체 누가, 왜, 어떻게, 아이들이 지내는 곳인 만큼 방비가 삼엄한 학교에 침입해 선생 하나만을 죽였을까.
가정 유력한 가설은 '회색 눈'인 누군가가 선생에게 원한을 가진게 아니냐고는 하지만, 그 가설을 포함해 다른 수많은 가설을 대조해도 지금까지 범인에 대한 실마리는 하나도 없었다.
증거라고는 그 선생을 묶은 청테이프와 목이 무참히 잘린 선생의 시체 뿐.
귀신도 아니고 감시카메라나 센서에도 하나 잡힌 게 없고, 경비원조차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마침 선배는 보고서에 증거사진을 기재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는 그것을 멍하니 보다가 문득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아직 근처에 놓여 있는 사진들을 급히 뒤졌다.
사진이 넘겨지는 팔락거리는 소리가 신경쓰여 선배가 고개를 돌려 짜증을 내려는 순간 그가 사진들을 보며 황망히 말했다.

"선배, 그거..."

"뭐가?"

"그 시체의 상처요! 이거랑 비슷하지 않아요?"

그가 든 사진의 수많은 시체를 배경으로 찍힌 어떤 남자의 시체는 목이 절반 가량 베여있었다. 숨통을 끊기만 하기엔 불필요할 정도로 깊은 상처였다.
선배는 급히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막 첨부하려던 사체의 사진 또한 마찬가지였음이 눈에 들어왔다. 목이 절반 가량 깊게 베여져 있었다.
증거는 모자랐다. 하지만 그 모자란 증거야말로 증거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이유도 없이 무차별 대량 살인을 행하던 누군가가, 처음으로 단 한 사람만을 죽였다.

"그것 봐요."

그가 피곤으로 굳은 얼굴 근육을 억지로 움직여 의기양양히 말했다.

"역시 이번엔 뭔가 목적이 있는 것 같다고 했죠."

선배는 말보다는 먼저 전화기를 들었다.


-
"이 밤중에 무슨 일이에요."

"아가씨, 항상 밤중인데 새삼스럽게 왜 그래? 놀러가자, 응?"

"잘 건데요."

"에엥"

소녀는 남자의 얼굴을 창문 밖으로 밀어냈다.

"잘 거에요."

"그럼 같이 자자. 나 심심해."

"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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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09-04 00:57 | 조회 : 1,674 목록
작가의 말
양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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