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정의는 없습니다


세상에 정의의 사도 따위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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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또 한판 벌여 놨구만...!"

골목 한복판에 한가득 사람의 시체가 널려 있었다. 칼에 난자당하거나, 쓸데없이 살이 조각되어 있거나, 몇몇 시체가 뒤섞여 기괴한 조형물을 만들어내고 있거나 했다.
내장을 쓸데없이 끄집어 내 바닥에 흘려놓은 것은 마치 그곳을 늪이나 웅덩이로 만들고 싶었던 의도가 있는 듯 보였다.

가운데에 놓은 하나의 조형물을 위해.

그것은 예술작품을 만들었다기보다는 그저 어린아이가 장난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그린 것 같은 느낌의 물건이었다.
더 이상 시체나 사람이라고 표현할 수 없었다.
그 시체로 이루어진 작은 늪의 가운데에 있는 것은 누구의 것인지도 알 수 없게 된 조각들을 모아 만들어놓은 '인형'이었다. 머리를 단발로 엉성하게 자르고, 눈을 파내고, 얼굴과는 맞지 않는 다른 여자의 몸뚱이와 뼈로 살을 찔러 이어붙여, 안에 있는 내장을 모조리 파내어 대신 다른 시체들의 뼈로 가득 채워 그 원형을 유지시키고 있었다.

"으......몇번 보니 그나마 익숙해져 오네요..."

"뭐냐 신참. 또 토하고 왔냐? 그러다 살빠진 시체꼴 난다?"

이제는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져 농담까지 할 수 있는 상사의 정신력에 속으로 감탄하며 그는 아직도 넘어오려는 신물을 도로 목 뒤로 넘겼다.
아아, 어째서 경찰이 된 걸까. 그는 이제와서지만 새삼스럽게 생각했다.
그가 철이 들었을 때는 이미 세상에서는 해가 없어진 때였고, '회색 눈'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던 때였다. 이래저래 부조리한 사건소식을 주위에서 듣거나, 자신의 친척이 '회색 눈'에게 죽임당한다거나 하는 일을 겪고서 젊은 치기와 어릴적 동경하던 정의라는 것 때문에 경찰에 지원했다.
그때, 그런 이야기를 대충 늘어놓았다가 감독관이 엄청나게 폭소했었지...하고 그는 먼 눈으로 회상했다.

요즘 시대의 경찰이란 것은 고위험군 직업으로, 군인과 비교해 사망률이 월등히 높다. 하지만 사람 수는 부족한 반면 위험하다보니 지원자가 없어서 곤란을 겪는 직업이다.
그렇다고 아무나 할 수는 없는 법. 위험한 만큼 그에 상응해서 대처할 수 있는 정도의 실력과 재능을 가졌다는 조건이 붙다 보니 이제와선 가장 희귀한 직업이 되어가고 있었다.
덕분에 적은 수로 점점 늘어만 가는 '회색 눈'에 대처하기 위해선 훈련생을 신참으로 막 끌어다 써야 하는 형편이었다.

그 또한 아직 훈련생의 신분이었지만 최근 터지는 대량살인으로 인해 현장으로 끌려나오는 신세가 되었다.

"이거라도 마셔라."

"아, 감사합니다."

그는 건네진 커피를 조심스럽게 받아들었다. 코가 비뚤어질 정도로 심한 피비린내와 상한 고기 냄새가 진한 커피향에 조금은 사그라들었다.

"어쩌겠냐, 이 새끼가 우리 구역으로 넘어와서 자리깔 줄은 몰랐지. 니 출신구역을 원망해. 할 수 없어. 나도 지금 상부에 총들고 찾아갈까 심각하게 고민중이니까."

"선배님... 그러다가 형사처벌 받으면 종신감이에요..."

"....야 솔직히 생각해 봐."

그의 선배는 진지한 얼굴로 커피를 한모금 마시고는 말했다.

"이 꼴 볼 바엔 차라리 감옥에 쳐박혀 있는 게 나을 것 같지 않냐?"

"회색 눈이 드글드글 할 텐데요."

"미안 취소. 방금 없던 걸로."

선배는 앞머리를 신경질적으로 쓸어넘기며 담배 끝을 이빨로 짓이기듯 씹었다.
그는 아직도 울렁이는 속을 잠재우기 위해 커피를 연신 들이켰다.

최근 들어 이 구역에서 일어나는 대량 연속 살인은 최근에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이전부터 다른 구역들에 걸쳐 이러한 대량 연속 살인은 일어나고 있었다. 시체를 죽여 무언가의 '인형'을 만들거나 항상 목을 먼저 벤 뒤 급소를 찔러 숨통을 끊는 방식, 항상 심장을 파헤치고, 피해자의 금품을 모조리 빼앗아간다는 공통점.
내려진 결론은 한 사람의 소행이었다.
물론 다른 '회색 눈' 중에서도 그러는 이들이 없잖아 있지만 이쪽은 질이 더 나빴다.
무엇보다 아무 연관도 없는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고르는 것도 있지만, 실마리가 잡히지 않는 것이다. 이 정도로 죽였으면 어딘가에서 한번쯤 걸릴 법도 한데 교묘하게 걸리지를 않는 것이었다. 심지어 유유자적, 구역을 돌아다니며 잡을 테면 잡아보라는 듯한 식이었다.

"아 짜증나!! 왜 하필! 내 담당구역!! 다른 놈 구역으로 갈 것이지!"

"선배, 속마음이 줄줄 흘러나오고 있는데요."

"들으라 그래!"

선배의 히스테리를 그러려니 하고 들으며 그는 속이 진정되었음을 느끼고 다시 사건현장을 천천히 살폈다. 절대 가까이는 가지 않고.
시체들을 일일히 뒤지던 감식반 사람들 중에서는 익숙해진 나머지 내장을 나란히 늘어놓고 얼마나 난자당했는지를 비교하는 사람도 있었다.
괜히 봤다. 그는 다시 사고를 환기시키기 위해 오만상을 쓰며 수첩에 사건을 정리해나가는 선배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선배, 이 구역에서 제일 오래 있는 것 같죠."

"그래. 그래서 내가 골치가 아파! 이 사신 녀석 좀 가주지 않으려나! 다른 구역은 길어봤자 2-3주더니 하필 내 구역에서는 2개월째야. 다른 놈들 2-3주 뛰어다니고 말았을 때 난 2개월을 뛰어다니고 있지!"

"으음..."

"아-집에 가고 싶다. 가서 시원한 맥주 마시고 자고 싶다. 아-"

"선배...아무리 그래도 사건이니까 해결은-"

그가 말을 다 끝내기 전에 선배가 그에게 수첩을 휙하니 던졌다. 얼떨결에 수첩을 받아 든 그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보자 선배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야, 경찰이 뭐하는 직업인 줄 아냐?"

"네? 그야...범죄자 잡고, 질서유지하고...치안이라던가...이런 사건 해결이라던가..."

"틀렸어, 멍청아."

선배는 다 핀 담배를 바닥에 뱉어 버리고는 말했다.

"우린 그냥 '회색 눈'을 감옥에 쳐 넣을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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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09-03 01:58 | 조회 : 1,667 목록
작가의 말
양야

신캐 등장이네요. 드디어. 진짜 드디어...(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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