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사회성


이론이나 생각 따위 엉망인 채로 좋다.
이치나 상식에 전혀 맞지 않아도 상관없다.
사고방식이 망가져 있거나 오류 투성이어도 괜찮다.

그걸로 충분하다.

오답으로 충분하다.

이해를 구하는 것도, 지적을 바라는 것도 아니니까.
오답은 오답인 걸로 인정해주면 족하다.

단 한 사람만.

-
"야 이 망할 놈아!!"

들어서자마자 새된 목소리와 함께 그의 머리에 유리잔이 날아들었다. 아직까지 문 손잡이를 잡고 있던 그는 피하거나 잡지 못하고 그대로 맞았다. 생각보다 묵직한 충격음과 뇌가 뒤흔들리는 감각이 덮쳐들었다.
운이 없구나-하는 차에, 막을 내리려던 시야에서 그 유리잔을 던진 누군가가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제 2격이 올거라는 것은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급하게 넘어지는 몸을 회피동작으로 연결지어, 바닥을 굴러 안전거리를 확보하고 나서야 그는 겨우 말을 꺼낼 수 있었다.

"아, 왜, 뭐야, 왜 그래?!"

"니가 그걸 몰라서 물어!?"

살짝 혀가 꼬인 듯한, 술에 취한게 명백한 고함소리에 그는 귀를 틀어막았다. 원래도 항상 빽빽거리는 게 심한 사람이지만 술에 취하면 이길 도리가 없음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콱! 하고 나무로 된 바닥을 빨간 하이힐이 사정없이 짓밟았다.

"네놈 주제를 알래, 아니면 지금 당장 독배를 마실래!!"

그건 그런 비유가 아닐 텐데. 그는 뻘하게 속으로 생각했다. 언제 그 빨간 하이힐로 걷어차일지 모르기 때문에 경계를 풀지 않은 채, 그는 되도록 친근한 투로 말했다.

"으음, 베티. 너와 나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던 걸까?"

"너와 나 사이 좋아하시네. 닥쳐라 타인놈아."

그녀-베티는 씹어뱉듯이 그렇게 말하고는 한손으로 흘러내린 곱슬머리를 뒤로 쓸어넘겼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다른 한 손에 든 커피 빛의 칵테일을 기분에 취해 원샷하고 빈 잔을 그에게 집어던졌다. 상당히 취했는지, 던진다기보다는 내팽겨쳤다.

"아 정말 그만 좀 던져!"

"뭐!"

"그리고 벌써 취했는데 술은 왜 자꾸 마셔?"

"하아?! 너 때문에 장사 망쳐서잖아!!"

한층 더 발음이 뭄개졌지만 아직까지 또박또박 말하고는 있었다. 그는 베티가 비틀거리며 날린 발차기를 피해 카운터 앞까지 도주했다.
이 난리에도 바텐더는 한가롭게 유리잔을 닦고 있었다. 쓸데없을 정도로 태평스러운 표정의 바텐더에게 그는 쏘아붙이듯 물었다.

"대체 쟤한테 뭘 먹인 거야?"

"응? 뭐, 나야 주문한대로 만들 뿐인데. 그것보다도 유리잔 던지는 것좀 그만두라고 말해주지 않을래? 저거 하나에 꽤 비싸다고."

"아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이야기를 안 듣잖아!"

"뭐어, 네가 잘못한 거 아냐? 그것보다 나는 네가 뭐가 문제이고 아닌지를 분별하는 사고능력이 있단 사실이 매우 놀라운데. 갓파더 마실래?"

"아니 나 그런 낡은 것같은 건 싫어."

바텐더는 어깨를 으쓱해보이고는 셰이커를 들었다. 베티가 잔뜩 성질이 난 발걸음으로 하이힐로 바닥을 콱콱 찍으며 카운터로 돌아오고 있었지만 그는 더 이상 신경쓰지 않았다.
다행히도, 베티는 더 이상의 폭력을 휘두르는 일 없이 카운터의 의자에 털썩 앉았다. 잘 빠진 몸매에 딱 맞던 붉은 칵테일 드레스는 재질의 허용량을 넘은 움직임 때문에 끝이 뜯어져 있었다.
카운터에 엎어지듯이 엎드린 그녀에게 바텐더가 노란 빛의 칵테일을 내주었다.

"자자, 아가씨. 12시에 마법이 풀리는 신데렐라 같이 술 좀 깨 봐요."

꾸물꾸물, 베티의 손이 힘없이 칵테일이 든 유리잔을 잡았다.
그는 그 칵테일을 빤히 보면서 문득 떠오른 것을 말했다.

"저런 거라면 아가씨도 마실 수 있으려나?"

"뭐, 칵테일이라기보단 그냥 주스니까. 누구라도 마실 수 있지. 그래서 너는 뭐 마실래? 요즘 계속 사람을 죽여대는 너에게의 추천은 블러디 메리."

"난 토마토 싫어."

"싫어하니까 추천했다, 이 웬수야."

"에엥,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래?"

바텐더는 한숨을 쉬며 쾅하고 카운터에 칵테일을 내려놓았다. 새빨간 색의 칵테일, 토마토 주스가 들어간 블러디 메리였다
에엑, 하는 표정의 그에게 바텐더는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너를 위한 특별 레시피로 도수를 최고로 올려뒀지. 마시고 너 죽으면 네가 노래를 불러대는 그 아가씨도 평화로운 인생을 살 수 있을거야."

"너무해..."

바텐더는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바텐더의 살짝 쳐진 회색 눈은 여전히 평온한 분위기였다.

"내 가게에서 친절한 추천 칵테일을 마시고 싶다면 사람 죽이는 걸 자제해. 너 때문에 물건의 반입출이 힘들어져서 새 술이랑 재료를 들이는데 애먹고 있다는 건 알아?"

"아니."

"특히 '회색 눈'이든 아니든 가리지 않고 죽이는 너 때문에 이 구역에 주요 고객층인 '회색 눈'들이 잘 안 와서 저 아가씨와 내 재정상태가 매우 심란해지고 있다는 건?"

"몰라. 아, 그것때문에 베티가 그렇게 화를 냈나."

"그래. 모르면 지금부터 알아둬."

"으음."

그는 도수를 높여놨다는 칵테일을 조금씩 홀짝거렸다. 도수는 그렇다치고 토마토 맛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인상을 쓴 채였다. 바텐더는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더니, 다른 잔을 그에게 내밀었다.
옅은 노란빛을 띈 칵테일이었다.

"네 취미생활에 대해 뭐라고 할 마음은 딱히 없지만. 부디 내 장사에 악영향은 삼가해 줘. 동지끼리 피해주기 있기 없기?"

태평스런 얼굴로 양 손에 브이자를 만들어보이는 바텐더를 완전히 무시한 채, 그는 칵테일을 원샷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베티가 마신 분과 자신이 마신 칵테일 값을 적당히 계산해 카운터 위에 올려놓으며 그는 웃었다.

"내 알 바 아닌데?"

"...뭐, 네놈은 원래 그런 놈이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씁쓸히 웃으며 바텐더는 손을 흔들었다.
그가 문을 열고 나가기 전에 바텐더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을 말하듯이 무심히 유리잔을 닦으며 물었다.

"원한이라도 있냐?"

"아니? 그다지 아무것도 없어. 그냥 재미야. 들키지 않는 리스크는 언제나 흥미로운 법이니까."

"거짓말이구만. 네 아가씨는 뭐라냐?"

"안 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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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09-01 01:49 | 조회 : 1,639 목록
작가의 말
양야

남자는 원래 사회성이 좋은 인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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