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서로 상관없는

전부 받아들이는 것은 상당히 스트레스 받는 일로 생각되기도 하지만.
정말로 전부 다 받아들이면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다.

그냥 그러니까 그런가 보다.

그런 식으로 모든 일을 처리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런 식의 사고방식이 아무 의문도 가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런 식으로 처리하다보면 사고방식의 모순이 생긴다. 원래 세상 일이란 건 전부 다 '그냥 그러니까 그렇다'고 처리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하는 수 없이 의문을 떠올리게 된다.
어째서 그렇기 때문에 그런 건데? 하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질문의 대답은 대체로 '원래 그러니까 그런 거야'라는 정도 뿐이다. 같은 사고방식으로 되돌아와 납득할 수밖에 없다.
답을 구하려는 기대는 결국 대답에 깎여 사라진다.

소녀가 남자를 이해하는 방식은 그런 것이다.

-
"에엑, 휴교 풀렸어?"

"내일부터 정상등교에요. 휴일이 아깝게도 끝났네요."

"으음...선생님 한명 더 죽이러 갈까?"

새로 얻어낸 나이프를 한손으로 갖고 놀며 진지하게 말하는 남자의 말에 소녀는 한숨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열감지 카메라를 극복할 스텔스 능력이라도 얻으셨어요?"

"어...그럼 먼저 길에서 학생이나 선생 중 아무나 하나 먼저 죽인 뒤에, 체온이 없어지기 전에 교란용으로 써먹어서 쓱싹."

"...벌써 하나 죽였네요."

"앗, 길에서 매복하고 있으면 되잖아! 아가씨네 학교 학생을 슬쩍해서 연속으로 대량학살하면 다시 휴교하겠지!"

"휴교는 커녕 폐교할걸요."

뭐야아-하는 늘어지는 소리를 내며 남자는 부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가로등 불빛 밖, 소녀의 인식 밖에 있는 바닥에 뒹굴어진 누군가의 시체를 새로운 나이프의 시험대로서 해체하는 것을 계속하며 그는 투덜거렸다.

"휴일 하고 싶었던 거 아니었어-? 놀고 싶잖아-? 학교 가기 싫잖아-? 모든 학생들의 공통 바람은 학교를 안 가는 거 아니야-?"

"뭐, 그렇긴 하지만요."

"그럼 폐교하는 편이 오히려 좋은 거 아니야?"

"몇시간이고 있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달 사정으로 3시간 정도밖에 안 있는 학교에 가나 안 가나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달빛이 가장 밝은 오전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그 평범한 인간에게 있어 그나마 가장 큰 안전이 보호된 시간까지만이 대부분의 공공기관의 활동시간이었다. 학교 또한 학생과 선생의 안전을 위해 딱 그정도밖에는 수업을 하지 않았다.
마치, 하루에 단 3시간만 해가 뜨는 것처럼.

덧붙이며 소녀는 말했다.

"그리고 휴교시키는데 몇명이나 죽일 생각이에요?"

"뭐 어때? 어차피 인간은 이익을 취할 때는 누군가를 죽여야만 하잖아."

"...그런 이야기하고는 다르다고 생각하지만요."

"다를 것도 없어."

그는 어둠 속에서 씨익 웃었다.

"직접 손을 대느냐, 안 대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야."

"흐-응."

"아니, 정말이라니까? 봐봐, 아가씨가 매일 먹는 식사. 아가씨가 아가씨 분을 가져갔기 때문에 못 먹는 사람은 이 세상 어딘가에 분명 있어. 그럼 아가씨는 간접적으로 그 누군가를 아사시킨게 되는 거지."

뚜두둑, 하고 해체한 시체의 안에서 하얀 뼈를 발라내며 그는 즐거운 듯이 말했다. 이미 뿜어낼 피조차도 남아있지 않은 고깃덩어리에서 나온 뼈는 무척이나 하얗고 매끄러웠다.

"그럼 아가씨가 식사를 얻지 못했을 경우. 아가씨는 아가씨 분의 식사를 가져와야만 하지. 아가씨는 그래서 아가씨 분의 식사를 가진 누군가에게서 빼앗았어. 자, 빼앗긴 누군가는 식사를 하지 못해 아사하지. 그럼 아가씨는 직접적으로 그 누군가를 아사시킨거야."

"...꽤나 장렬한 식사쟁탈전이네요."

"아가씨가 식사라는 이익을 취하기 위한 두 경우. 둘 다 아가씨는 누군가를 희생시키지. 거기에는 간접적이냐, 직접적이냐의 차이. 가지고 있는가, 쟁취해내는 가의 차이. 뭐, 아가씨의 휴교에 대한 건 가지고 있는 게 아니야, 직접 죽여 쟁취하는 수밖에 없지."

그는 마치 지휘봉처럼 길고 하얀 뼈를 휘두르고 있었다. 보이지 않지만 소녀는 눈을 살짝 가늘게 떴다.

"결국 이익을 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누군가를 죽이게 되어 있는 법이야. 많이 죽이면 죽인 만큼 더 큰 이익을 취할 수 있지. 그만큼 목숨의 가치도 늘어나는 법이고."

"그럼 당신이 죽이는 건 무슨 이익을 위해서에요?"

"내 인생의 재미."

그는 어둠 속에서 가늘게 웃었다. 소녀가 있는 가로등 불빛 아래로 난도질된 고깃덩이가 점착질의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소녀는 관찰이라도 하듯이 그것을 쳐다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아마 남자가 있을 방향으로.

"...제가 왜 사람을 죽이지 않는지 알아요?"

"아니-"

그가 시체에서 뜯어낸 두개의 뼈를 교차시켜 X자 모양을 표시하는 것을 지긋이 쳐다보며 소녀는 말했다.
자기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는 자신까지만 죽일 수 있으니까요."

"...거기까지 죽여서 아가씨는 뭘 얻는데?"

소녀는 아마 남자와 만나서 처음으로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포기를."

남자는 아마 소녀와 만나서 처음으로 찡그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난 잘 모르겠어."

"상관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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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08-31 00:56 | 조회 : 1,751 목록
작가의 말
양야

뭐라도 상관없으니 전격적으로 이 세계에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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