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목숨값

소녀는 언젠가 죽어가는 길고양이를 본 적이 있다.
아직 미처 다 크지 못한 새끼고양이는 차에 치여서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 위를, 차들은 주저없이 지나갔다.

소녀는 그저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5번째로 차가 지나가고, 고양이가 몸부림치는 것을 멈추고, 손을 비닐로 감싸고 나서야 소녀는 차도에 있는 고양이를 구해냈다.
구해냈다기보다는 주웠다.
근처에 고양이를 치료할 수 있는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결국 어딘가의 화단 위에 고양이를 눕혀놓고는, 소녀는 고양이에게 자그마한 목소리로 사과했다.

전혀 불쌍하다고 생각할 수 없어서 미안하다고.
점심시간이 지나면 깜빡 잊어버릴 만큼 아무것도 아니어서 미안하다고.

그리고 소녀는,
그 고양이를 잊어버리지 않았다.

-
"아가씨는 목숨이 소중해?"

좀처럼 휴교상태가 풀리지 않아 소녀가 계속 집에 있게 되자, 마찬가지로 남자도 소녀의 집에 계속 있는 상태가 되었다.
슬슬 돌아가주지 않으려나 이 사람.
휴대용 게임기의 버튼을 이리저리 바쁘게 누르고 있는 남자의 질문에 소녀는 TV를 보며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글쎄요."

"안 소중해?"

"이 게임 과금해야지 부활석 살 수 있으니까 죽으면 안 돼...라는 정도로 소중해요."

"...과금하면 아무 의미도 없는 소중함이구나."

마침 소녀의 대답과 거의 동시에 그의 게임 캐릭터가 사망해서인지, 그의 대답은 어딘가 허탈했다.

"그럼 현질하면 어떻게 되는 거야?"

"그럼 안 죽어요. 부활석 생겼잖아요."

"흐음. 현질하면 오히려 안 죽는거구나."

그는 시작한지 얼마 안 되서 또 적군 캐릭터에게 사살당한 게임 화면을 보면서 투덜거렸다.

"이상하네, 현질했는데 오히려 죽고 있어."

"확장팩으로 업데이트 된 에너미가 쏟아져 나오는 필드에 들어가 놓고 무슨 소리에요. 당연히 죽죠."

"어떡하지 아가씨...! 나 이대로라면 이 스테이지를 클리어할 수 없어...!"

"에에이, 확장팩인 만큼 아이템도 업그레이드 된 게 많을 거 아니에요. 먼저 아이템부터 좀 주워먹고 들어가라고요 그 스테이지."

"다량생산되는 노말 에너미 주제에 보스보다 더 아픈 놈들이 즐비해! 밸런스 패치는 확장팩과 엿바꿔 먹었나봐 이 게임!"

3번째의 시도에서 곱게도 찔려 죽은 캐릭터의 사망 화면을 보며 그는 게임기를 소파 위로 있는 힘껏 던져버리며 바닥에 늘어졌다.
소녀는 그런 모습을 의자에 앉아 내려다보며 양 손을 펼친 채 말했다.

"어차피 이 세계에 밸런스 패치따위 없습니다."

"아-지금 들으니까 뼈아픈 말이네."

"밸런스 패치를 받고 싶다면 과금하거라 어리석은 중생들아."

소녀가 무표정한 얼굴로 일부러 어색하게 엄숙한 척을 하는 모습에 남자는 널브러진 채로 낄낄 웃어댔다.
그는 장난스럽게 입을 쭉 내민 채 툴툴거리는 투로 말했다.

"그럼 과금할테니까 밸런스 패치 해 주세여-"

"태도가 마음에 안 드니까 안 해."

"우와, 치사하다."

"세계라는 것은 그런 겁니다."

가벼운 한숨과 함께 소녀는 그렇게 딱 잘라 대답했다. 그는 의자에 앉은 소녀의 옷자락을 손으로 쭉 잡아당기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세계가 밸런스 패치 안 하면 곤란한 건 아가씨 쪽이잖아?"

"그다지 곤란할 것도 없어요."

"왜? '회색 눈'하고 동등해지면 모든 일반인들은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텐데."

"정신질환 현상까지 비슷해져버리면 세계는 대 카오스 상태가 되어 머지않아 인류 멸망 루트를 타게 될 걸요. 그런 밸런스 패치는 필요없어."

소녀는 진심으로 어이없다는 듯이 그렇게 말하고는, 테이블 위에 턱을 괴며 말했다.

"무엇보다, 그런 밸런스 패치 해 봤자 제 목숨의 가치에 변동은 없습니다."

"아-과금해야 되니까 죽으면 안된다는 그 가치? 대체로 모바일의 경우 200원에서 300원 정도 하는 그 부활석 말이지. 어딘가에서는 무료로 막 주는 그 부활석 말이지."

"뭔가 뼈아픈 소리네요."

"그럼 어떻게 하면 아가씨의 목숨의 가치는 비싸지는 거야?"

어딘지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함이 느껴지는 질문이었다. 소녀는 잠시 그의 회색 눈동자를 빤히 쳐다보다가 미소 비슷한 것을 지으려다 실패한 것 같은 애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고정값이에요."

"곤란해! 경매에 올렸는데 값이 전혀 오르지 않는 미묘한 기분이잖아!"

"애초에 왜 제 목숨의 가치가 비싸져야 되는 건데요?"

그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평소처럼 장난스럽고 아이같은 웃음이었다.

"그야, 아가씨니까."

"...그럼 과금해주세요."

소녀가 시큰둥하게 손을 내밀었다.
그는 그 손을 잡고는 씨익 웃었다.

"벌써 잔뜩 과금하고 있잖아."

"과금한도가 있습니다-"

"확장팩 사지 뭐."

그는 바닥에 누운 채로 웃으며 말했다.
그것은 전혀 답지 않은 다정한 말이었다.

"아가씨의 목숨은 소중해."

"...그럼 당신의 목숨은요?"

"인생을 한창 신나게 구가하고 있는 중인 이상 소중하지. 거래 불가 중이야."

"그럼 재미없어지면?"

그는 뭘 당연한 것을 묻느냐는 듯이 되물었다.

"그런 인생에 애초에 값을 매길 가치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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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08-30 00:41 | 조회 : 1,653 목록
작가의 말
양야

메이플2는 낙사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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