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세계의 이유


떠올려 보자.
만일 세계의 인구가 너무나도 넘쳐나서 더 이상 누구도 살지 못하게 되었을 언젠가의 순간을. 그때가 되면 과연 인간은 스스로를 없애서 수를 줄여, 가장 효율적인 생존방법을 고르게 될까?
아마 정답은 '아니오'일 것이다.
그런식으로 요령 좋게 살아가는 법을 택할 정도로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다.
온갖 윤리와, 법과, 도덕, 질서 등이라는 스스로가 만든 모든 이유들을 들먹이며 인류는 모두 공존해야 하며 결코 누구 하나 함부로 희생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으로 지배될 것이다.
그 누구라도 죽고 싶지는 않으니까.
결국은 세계니 뭐니 해도 각 개인의 이기심에 따라 모든 것은 결정된다.

세계가 존속해야 하는 이유?
그런 것은 간단하다.
'나는 살고 싶으니까'

물론 인간은 그 주장을 끝까지 지킬 정도로 합리적이지 않다.
머지 않아 그것만으로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해지면 '내가 살아남고 싶으니까 너는 죽어'라는 주장이 성립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인류는 어떤 세계라도 존속해 보일 것이다.

모든 이유는 이기적이고 불합리한 개인의 이유로 충분하다.

그리고 그 끝에.
세계에는 '낮'이 사라졌습니다.

그 누구도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 누구도 과학적으로 입증하지 못했다. 온갖 종교적, 초능력적 가설들이 난무했다.
'태양'이 더 이상 하늘에 보이지 않음에도 빛나는 달이 그 자리를 차지해 영원한 밤이 찾아온 그 '이유'를 아무도 알지 못했다.

"어째서 아무도 그 이유를 모르는지가 나는 더 의문이야."

그는 턱을 괸 채 오늘도 무의미한 뉴스를 내보내는 TV를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소녀는 필요 이상으로 지루하다는 얼굴을 한 채 진작에 싫증이 난 과자를 깨작거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좋잖아요. 그런 건."

"뭐 나도 모르니까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지만."

"노 리스크 하이 리턴으로 '취미생활'을 즐기게 되었으니까 세계한테 감사해야 되는 입장 아닌가요?"

"그건 아니야, 아가씨!"

나른하게 소파에 늘어져 있던 남자가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갑작스런 큰 목소리에 소녀가 희미하게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는 마이페이스로 개의치 앉았다.

"나의 취미생활은 어디까지나 하이 리스크! 노 리턴! 이게 핵심이야! 원래 리스크를 즐기는 거라고."

"...자, 밥벌이는 뭘로 하고 있죠?"

"취미생활에서 겸사겸사 얻은 생판 모르는 남의 지갑으로?"

"노 리턴은 무슨."

완전히 무시하듯 소녀는 다시 TV의 화면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남자는 그런 소녀의 과자봉지를 홱하니 뺏어버리며 다시 소파로 털썩 드러누워버렸다.
과자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자마자 그는 툭 내뱉었다.

"아 이거 맛없어."

"경계했어야 하는데. 과자는 먹고 싶고 수중의 돈은 적고 반값 세일이라고 되어 있어서."

"3단 트랩에 걸렸군."

남자는 혀를 가볍게 차고는 과자를 한움큼 집은 뒤 봉지를 다시 돌려주었다. 소녀는 보지도 않고 한손으로 봉지를 받아들었다. 무표정한 얼굴에 희미하게 서려 있는 짜증이 얼마나 억지로 과자를 먹고 있는지를 증명하고 있었다.
TV의 뉴스는 계속되고 있었다. 커다란 스크린 앞에 앉은 아나운서가 바쁘게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제작년 제정되었던 '그믐달 통행 규제법'이 강화되었습니다. 이제부터 그믐달에는 모든 회사, 학교 등이 휴업하는 것이 의무화되었습니다. 또한 전등의 보급을 더욱 확장하여-]

"그래봤자지."

"저거 의미 있어요?"

소녀는 억지로 꾸역꾸역 먹던 과자를 드디어 그냥 통째로 버리기로 결정했는지 봉지째 구겨서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남자는 그 모습을 보고는 피식 웃고는 대답했다.

"없지. 뭘 알면서 물어?"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소녀를 쳐다봤다. 소녀는 아직도 맛없는 과자의 잔맛이 입안에 남았는지 약간 불편한 표정이었다. 그의 말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모습이었다.
살짝 심통이 난 듯이, 그는 말을 덧붙였다.

"그 맛없는 과자를 꾸역꾸역 먹은 의미만큼이나 없어."

"뼈아픈 소리를."

"그리고 왜 밤만 남아있는가에 대해 가설을 세우거나 토론을 하는 의미만큼이나 없지."

어딘가의 토론장을 비추고 있는 TV화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그가 히죽거렸다. 소녀는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화면에서 비추고 있는 글자를 가만히 읽었다. '--박사의 새로운 가설, 가장 유력'이라는 커다란 하얀 문구였다.
남자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면서 말했다.

"조만간 저 가설도 퇴짜맞겠지. 다 엉터리야. 왜 다들 모르는지에 대한 이유를 모르겠어. 어이없음의 선두주자인 이 나라도 어이가 없을 지경이라니까."

"...그럼 이유를 알아요?"

소녀가 무미건조한 시선으로 돌아보며 묻자 남자는 씨익 웃었다. 그건 무척 장난스럽고 가벼운 웃음이었다.

"간단해."

그는 소파 위에서 몸을 소녀 쪽으로 굴리며 가볍게 말했다.

"결국 세계가 존속하는 이유도 한 개인의 이기적인 '나는 살고 싶다'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거라면 어때?"

필요 이상으로 가까이 다가온 남자를 소녀가 발 끝으로 밀어버리며 말했다.

"뭐, 그럼 세계의 반이 없어진 건 반 정도가 죽고 싶었나 보네요."

"그런 거지."

소녀의 발길질에 차여 거실 바닥에 떨어진 채 남자는 허허롭게 웃으며 대답했다.
소녀는 바닥에 굴러 떨어진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진짜 쓸데없는 말 밖에 안 들어주는 신(세계)이네요."

"원래부터 재수없는데다 밥맛이었어, 그 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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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08-27 01:32 | 조회 : 1,562 목록
작가의 말
양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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