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시라세미] Irregular (4)



"새롭게 알게 된게 있어서 선생님께 제일 먼저 알려드리러 왔어요."


그는 우산도 없이 왔는지 밖에서 내리는 비로 인해 흠뻑 젖은 채였다. 머리에서 빗물을 떨어뜨리고 교복은 물을 머금어 꽤나 몸이 무거울 터였다. 비스듬한 앞머리에서 떨어지는 물이 신경쓰였는지 머리를 두어번 흔들고 시라부는 세미를 제 눈동자에 고스란히 담았다. 자신의 갑작스런 방문이 당황스러웠는지 멍하니 현관을 지키고 서 있는 세미를 보고 있자니 그 모습이 썩 괜찮았다.


들여 보내줄줄 알았는데, 하지만 나가라 하지 않는 걸 보니 나쁜 상황은 아닌가보다. 시라부는 어깨를 으쓱이며 제멋대로 문을 닫고 집 안으로 완전히 들어섰다.


"새롭게 알게 된거요?"


세미가 떨떠름하게 물었다. 시라부는 세미에게 대답했다.


"알아낸 건 두가지가 있는데, 그 전에 재밌는거 보여줄까요."

"재밌는거요?"


도통 감을 못잡겠다는 얼굴로 세미는 시라부를 쳐다봤다. 그것도 보기에 썩 괜찮아서, 시라부는 씨익 웃었다.


그는 젖은 품속에서 익숙한 무언가를 꺼내 세미에게 들이밀었다. 그건 세미가 시라부에게 처방해준 오메가의 페로몬으로 만든 향수였는데, 시라부는 뚜껑을 열어 제 손목에 한번 뿌린 후 향을 맡고는 세미를 쳐다봤다. 달큰한 향이 현관에 퍼져나갔다.


"보시다시피 저한테 뿌려선 아무 효과가 없어요."

"..."

"그럼 이건 어떨까요."


시라부가 또 다른 것을 품 안의 주머니에서 꺼내들었다. 현관은 어두워 물건을 정확히 보여주진 않았지만 세미는 그게 뭔지 알 수 있었다. 제 사무실에 있는 가습용 작은 수건이었다. 없어졌다 했더니 저게 왜 시라부 손에 있는 걸까. 시라부가 집에 들이닥친 이후로 이해 할 수 없는 것 투성이였다.


"선생님의 수건이에요. 며칠 전 선생님 상담실에 갔을 때 가져왔죠."

"왜..."

"실험해보려구요. 이미 했고, 반은 성공적이에요."

"..무슨 실험 말인가요?"

"내 물건이 아니라 다른사람의 물건에 이걸 뿌려보면 어떨까, 하는."


그는 향수병을 흔들며 대답했다. 그래서 상담실에 있던 수건을 가져갔다는 건가. 납득이 되면서도 한편으론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에 세미는 좀 더 집중했다. 그래서, 실험에서 어떤 결과가 나왔길래 성공적이며 이 아이는 늦은 밤에 여기까지 와서 이러는걸까.


"이걸 선생님 물건에 뿌려봤는데..."


시라부는 직접 보여주려는 듯 세미의 손수건에 페로몬 향수를 뿌렸다. 그리곤 향을 맡더니, 세미의 손을 잡아 제 바짓춤 사이로 끌었다. 고등학생의 힘은 생각보다 단순하게 세서, 이내 정신이 든 세미가 급히 빼 보려 했지만 시라부가 저지했다.


"빼지 마세요. 잠깐만..."

"시라부 학생, 이게 뭐하는..."


세미는 말을 멈췄다. 강제로 손이 가져다 대어진 곳에 미미한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때요. 재밌죠?"

"대체..."

"첫번째는 이거에요... 난 선생님의 흔적이 남은 것에 반응한다는 것."


그럼 두번째는 뭘까요. 생각해보세요. 시라부가 세미에게 질문을 던지며 답을 요구했다. 민망하지도 않는지 그에게서 표정 변화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세미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다짜고짜 찾아와 이런 무식한 행동을 하면 어쩌란 말인가. 무례하기까지한 시라부의 행동에 세미는 짐짓 화를 내야할지, 아님 타일러야 할지, 애시당초 거기서부터 고민이 시작되어야 하는가에 대해까지 오만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두번째는 뭔데요?"


그래서 세미는 일단 시라부의 질문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가 지금 환자로써 자신을 찾았다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는 듯 하지만 자신은 지금 여기서 의사로써의 역할을 다 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라부는 세미의 질문에 향수병의 향수를 네다섯번 세미에게 뿌렸다. 잠시나마 이성을 되찾았던 세미가 다시금 미간을 찌푸리게끔 하는 행동이었다. 세미가 별로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시라부를 쳐다봤다. 하지만 입은 꾹 다문 채였다.


미미했던 변화가 크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베타에게는 흔히 일어나지만 알파나 오메가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현상에 세미는 이걸 기뻐해야하나 싶었다. 지금 이 행동도 치료라면 치료라 할 수 있을까.


"느껴지잖아요... 두번째가 뭔지."

"...시라부 학생."

"난 당신한테 반응해요, 선생님."


손에 힘을 풀어준 까닭도 있지만 어찌 되었든 계속해서 세미의 손을 잡고있던 시라부가 곧 그의 품으로 안겨들었다. 작은 맹수가 연약한 동물의 흉내를 내는 것 같아 그 모습이 조금 신선했다.


뭘 바라는지 알겠다. 그래서 그는 제 품에 안겨든 시라부를 떼어냈다. 세미는 시라부의 행동이 제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짐작했지만 이런 식으론 안되지. 그에게는 상황을 확실히 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시라부 학생은 또래에 비해 성숙한 편이죠."

"말 돌리시지 않으셨으면 하는데요."

"어휘능력도, 대처도 다른 고교생에 비해 어른스러워요."

"선생님."

"하지만 그렇다 해도 당신은 아직 어려요."

"..."


시라부가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래, 그런부분이 아직 어리다는 거다. 세미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렇지만 똑똑하죠. 내게 말 않고 혼자 그런 의문점에 도착해 반의 성공을 얻어냈으니까요."

"..."

"하지만 시라부 학생의 이런 행동을 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그건..."

"...나무라는건 아니에요. 그저 내 질문을 할 뿐."


대답을 강요하진 않겠어요. 세미가 덧붙였다.


"시라부 학생의 몸에 변화가 일어난 건 축하할 일이에요. 그렇지 않나요?"

"..."

"더 이상 나와 만날 일도 없어지겠죠."


시라부는 표정을 구겨뜨렸다. 말하고 싶은게 있는 듯 했지만 그는 제 입을 다무는 것으로 세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세미는 잠시 머뭇거렸다.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을 얘기해도 될까, 싶은거였다. 후회하지 않을수도 있지만 후회할 가능성이 더욱 많은 이 말을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소년에게 말해도 되는 걸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그는 다시 말문을 열었다.


"...시라부 학생."

"네."


감정을 다스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세미는 한번 숨을 고르고 말했다.


"당신이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세요."

"..?"

"당신은 틀리지 않았어요."


그리고 세미는 팔을 벌려 시라부를 향해 뻗었다. 그 의미를 알아차린 시라부가 세미를 껴안으며 입을 맞췄고, 세미는 자신의 셔츠도 함께 젖어가는 것을 느꼈다.


불규칙적이지만 간절한 입맞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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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2-27 12:41 | 조회 : 1,773 목록
작가의 말
단제

Irregular는 4화가 마지막입니다. 제 글을 봐주셔서 항상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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