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시라세미] Irregular (2)



팩스로 받아본 검사결과는 별다르게 특별한 것이 없었다. 물론 시라부의 프로필에 수정해야 할 부분은 보였지만.. 이걸 뭐라고 설명 해줘야 할까. 세미는 시라부가 다녀간 다음날 자신을 찾아왔던 그의 어머니를 떠올렸다.


"당신이 우수한 선생이라 들었어요. 필요한 만큼 돈은 얼마든지 드릴테니 내 아들에게 하자, 고쳐놔요."


그녀가 자리에 앉아 말한 첫 마디는 세미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무리 그래도 자기 배 아파서 낳은 자식에게 하자라니. 아들에게 정이 없는걸까. 세미는 대답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손에 쥐고있던 서류를 눈으로 훑었다. 그러다 그는 자신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사실을 캐치했다. 서류에 잘못 기재되어 있는걸까, 그는 잠시 고민했다.


같은 베타끼리라면 몰라도 알파와 오메가는 이종간의 임신이 불가능하다. 헌데 서류에 적혀있는 시라부의 부모님 성별은 모두 알파, 기본적으로 성립되지 못한다.


물어보면 실례일수도 있겠지. 하지만 세미는 왜 둘의 성별이 모두 알파인지 알아야 겠다 싶어 그는 제 앞에서 담배를 태우는 시라부의 어머니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입을 떼었다.


"실례지만.. 두 분의 성별이 모두 알파로 기재되어있는데, 이건 오류인건가요?"

"오류 아니고 맞아요. 내가 새엄마인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알파끼리는..."

"그 쯤 해두시는게 어떨까요."


불쾌한데. 그녀가 담배 연기를 내쉬며 명백한 거부의사를 보였다. 묻지 말라고 온 신경으로 말하고 있는 것 같아서 세미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심기를 건드릴 생각은 없다. 그래서 그는 시라부가 가진 반 이상의 열성 인자에 대해 이야기 했다.


"...지금 제가 말씀 드릴 수 있는건 여기까지네요."


세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드님은 제가 힘 닿는대로 도와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어느새 담배 두개피를 다 태운 그녀가 흠,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 애 잘 좀 부탁드릴게요."


필요하신 금액은 비서 쪽으로 보내시고요.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덧붙였다. 세미는 여러모로 기가 빠져나가 하하, 약간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배웅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세미를 위 아래로 한번 훑어보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의 상담실에서 나갔다.



시라부의 어머니가 휩쓸고 간 상담실에 홀로 남은 세미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녀는 떠나기 전 자신이 이곳에 온 사실을 시라부에겐 알리지 말라 했는데, 그편이 더 수상해 보이잖아. 세미는 입을 비죽이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곤 내일 올 시라부에게 어떤 질문을 해야 할까를 정리 하는것이 도움이 되겠단 생각을 하고, 그는 메모 작성을 시작했다.




-


시라부는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오늘 또 다시 세민가 뭐시긴가 하는 상담의의 사무실로 가야 했기 때문이다. 평소보다는 이른 종례덕에 이른 하교였지만 그 발걸음은 전혀 즐겁지 않았다. 의사가 유능해 보이지 않을 뿐더러 자신이 병원에 드나든다는 사실 자체가 유쾌하지 않았다.


"자존심 상해."


세미가 있을 병원 건물을 올려다 보며 시라부가 중얼거린 한마디였다. 병원 앞까지 온 지금도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래서는 아버지한테 혼날테니 마음대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시라부는 그 주위를 서너번 돌다가 마침내 안으로 들어가 상담실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11층으로 데려다줄 버튼에 붉은 빛이 들어온 것이 썩 보기싫었다. 게다가 그 속도는 얼마나 빠른지. 눈 몇번 깜박이지 않았는데 순식간에 11층이라 더욱 싫었다. 왜 쓸데없이 성능은 좋아서. 시라부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리고 시라부는 세미의 상담실 앞에서 잠시 망설이다, 노크를 했다. 곧 안에서 방문을 허락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고 시라부는 문을 열어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남자를 마주했다. 이왕 들어온거 빨리 나가야지, 하며 시라부는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어서와요, 시라부 학생."


컴퓨터 화면을 보며 차를 홀짝이던 세미가 시라부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세미는 이리와 앉으라고 제 앞 의자를 가리켰고 시라부는 열렸던 문을 닫고 그가 가리키는 의자에 가 앉았다. 그 사이 세미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직 따뜻한 차가 들어있는 포트를 들고 물었다.


"홍차 좋아해요?"

"...아무거나 마셔요."


시라부는 빙긋 웃으며 찻잔에 차를 따르는 세미를 봤다. 안 어울리게 홍차는. 그렇게 속으로 빈정대고는 그의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처음 방문했던 때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크게는 벽에 붙어있는 각종 수상기록과, 그것을 증명하는 상장과 표창장. 따뜻한 느낌의 베이지 색 계열의 인테리어들과 작게는 곰돌이 유리 옷을 입은 초까지.


귀여운 쪽이 취향인가.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보고 있는 사이 세미가 그에게 뜨겁지 않은 홍차를 내주었다. 김이 살짝 나는게 마시기 딱 적당할 것 같았다. 진하게 내리진 않았어요, 하고 세미는 자리에제 자리에 가 앉았다.


"오늘은, 특별한 일 있었어요?"


세미가 웃으며 물었다. 검사결과 알려준다고 오라고 하더니 웬 안부인사. 시라부가 제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홍차를 홀짝이며 고개를 내저었다. 진하게 내리지 않았다더니 마시기 딱 좋은 차였다.


시라부는 세미와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다. 세미는 데이지 않게 차를 마시는 시라부를 보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저번에 했던 인자 검사 결과가 나왔어요."

"..."

"성별 증명서엔 우성 알파라고 적혀 있던데.. 수정이 조금 필요 할 것 같아요."


그제야 시라부가 세미의 눈을 바라봤다. 그 눈이 왜, 라고 묻는 것 같아서 세미는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시라부 학생은 열성 인자가.. 열성 인자가 반을 넘거든요."


세미는 중간에 말을 반복했다. 이야기를 듣던 시라부의 표정이 살짝 굳어지는 것을 캐치했기 때문이다. 세미는 시라부의 반응을 살피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래서.. 제가 볼 땐 시라부 학생이 오메가의 페로몬에 반응 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다고 생각합니다."

"..."


그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충격이겠지. 우성 알파인줄 알고 15년을 살아왔더니 사실은 열성 알파라니. 홍차가 마음에 든 건지 여전히 차만 홀짝이는 시라부를 보며 세미가 이 질문을 해도 될까, 라고 고민 할 때 즈음 시라부가 말문을 열었다.


"제 눈치 보지 않으셔도 되요."

"네?"

"궁금한게 있으시면 물어보시라고요."


보통 상담의들은 질문을 멈추지 않던데. 시라부가 덧붙였다. 순간 세미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벙쪘다. 환자가 언질할 정도로 눈치보는게 티가 났단 말인가. 그는 속으로 자책했다. 그러길 잠시, 세미는 곧 정신을 차리고 시라부에게 물었다. 자신은 의사로써의 책임을 다 해야 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요. 시라부 학생, 당신을 낳아준 쪽은 부와 모 중 어느쪽인가요?"

"어머니요."

"시라부 학생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별이 모두 알파이던데.. 이건 오류인가요?"

"아, 그거구나."


시라부가 알겠다는듯 고개를 끄덕이며 들고있던 찻잔을 내려두었다. 짐작가는 부분이 있는 모양의 행동에 세미는 온 신경을 그에게 집중했다.


"왜 내 부모님이 양쪽 다 알파인지, 그게 궁금하신거죠?"

"..맞아요."

"두분 다 알파 맞아요. 한쪽은 알파로 만들어졌지만."

"..."

"어머니는 원래 오메가였어요. 아버지와 서로에게 존속 될 것을 약속하고, 결혼하고, 나를 임신했죠."


시라부는 무덤덤하게 이야기 했다.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 그의 말에는 막힘이 없었다.


"임신 3개월쯤 됬으려나, 아버지는 어머니를 병원에 데려가셨어요. 그리곤 알파 호르몬 주사를 투여하신거죠."

"왜..?"

"저는 알파로 태어나야만 했으니까요."


그러곤 시라부는 남은 홍차를 다시 홀짝였다. 그의 느긋한 태도에 속이 타는 것은 당연 세미쪽이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우리 집에 알파 이외의 성별은 없어요. 전부 오메가였던 누군가가, 다음 세대를 알파로 낳기 위해 임신중에 강제로 성 전환을 당한거지."

"..."

"어머니도 예외는 아니었어요. 임신중에 부작용도 있었다고 하고. 그래도 제가 죽지 않은게 최고의 수확이었다고, 아버지가 말씀하시더군요."

"그런.. 어떻게..."

"그러니 두 분 사이에 사랑이 있을 리 있나. 저희 집안에 대해 안다고 하시는 분들도 이건 몰라요. 선생님이 처음이네요."


동시에 시라부의 입술에 살짝 미소가 걸쳐졌다. 이건 알려지면 안되는 사실이잖아. 성 전환은 법적으로 엄연히 금지되어있다. 더군다나 상대방의 의사를 무시한 범법행위라면, 처벌받아야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도 이 일이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다는건...


"아실거라 생각하지만 어디가서 말 하면 안돼요. 선생님을 위한거에요."


아마 내 진짜 가족 관계 증명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람 몇 안될걸요. 밖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서류는 조작된 거니까. 시라부가 덧붙였다. 세미는 잠시 굳은 얼굴로 서류와 시라부의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이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리고 세미는 왜 시라부가 열성 알파인지, 왜 페로몬 향기에 반응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짐작했다.


시라부 또한 강제적으로 성별이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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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2-24 13:34 | 조회 : 2,548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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