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시라세미] Irregular (1)


* 약 오메가버스 AU입니다.
* 취향 타시는 분들은 뒤로가기 :)


-


뉘엿이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고 있는 시간이었다. 남자는 사무실에 앉아 책상 위의 작은 시계를 보았다. 다섯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상담의는 퇴근 할 시간이다. 평소라면 진작 서류가방을 챙겨 사무실을 나섰겠지만, 오후에 걸려온 전화 한 통 때문에 세미는 사무실에서 조금 더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하지만 오후 업무도 끝났고, 그냥 시간을 보내기엔 무료해서 세미는 앉아있던 의자에서 일어나 커피포트를 빼들었다. 달짝지근한 홍차라도 끓인다면 사무실 안에 향기도 은은히 퍼질테고, 나도 심심함을 달랠 수 있고.


세미는 유리로 만들어진 포트에 물을 반쯤 올려놓고 전원을 켰다. 그리고 찻잔도 한 세트 내려서 탁자 위에 올려놨다. 바닥을 보이는 하얀 각설탕을 담은 유리병에 다시금 각설탕을 채워넣고, 홍차가 들어있는 병에서 잎을 꺼내 포트 앞에 준비해놓았다. 그리고 세미는 벽에 기대 서 사무실 안의 적막감을 느꼈다. 물이 끓는 소리와 저 멀리 밖에서 들려오는 전철이 지나다니는 소리, 차의 경적소리를 제외하면 방해가 없는 이 공간 안은 묘한 안정감까지 가져다 주었다.


자고로 상담의의 사무실이란 환자에게 안락감과 평안을 줘야 하는 곳이기에 세미는 만족했다. 곧 포트의 물이 다 끓어가자 세미는 잎을 넣어 차를 우려내고는 시계를 봤다. 곧 올시간이 됬는데.. 그런 세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건너편에서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때 맞춰 포트의 차도 다 끓어 전원이 꺼졌다. 세미는 상냥한 목소리로 노크에 대답했다.


"들어오세요."



-



세미는 제 앞에 앉아있는 약간 까칠한 표정의 소년에게 갓 내린 홍차를 내어주며 웃음을 지어보였다. 소년은 하교 하자 마자 바로 상담실을 찾은 건지 교복을 입고 있었고 전화로 먼저 연락해 이곳으로 온 것 치고는 뭔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렇다고 오늘 찾아온 이유에 대해 물어보지 않으면 답해줄 것 같지도 않았다. 세미는 여전히 웃음을 지으며 소년에게 물었다.


"오늘은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보이네요?"

"...네."

"무슨 일 있었어요?"

"...글쎄요."


정적과 단답형의 대답이 적절히 어우러진 대화법은 소년의 것이었다. 그는 종종 다음 대화를 이어가기 어렵게 대답하곤 했는데, 오늘이라고 예외는 없었다. 그래도 처음 먼저 만나러 오겠다 해서 뭔가 다른게 있을 줄 알았는데. 세미는 그의 행동을 살폈다. 제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것 말고는 특별한 것을 찾아 볼 수 없었다. 평소 소년이 좋아하던 홍차도 오늘은 각설탕만 하나 담궜을 뿐, 입도 대지 않아서 세미는 소년이 평소 상담실을 찾는 이유에 대해 물어보기로 했다.


"요즘은, 나아진게 있나요?"

"아니요."

"흐음, 이상하다. 지난번에 처방해준 향은 제가 특별히 아는 박사님께 부탁드린 거였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었어요."


그렇군요. 무덤덤한 소년의 대답에 세미는 턱을 짚었다. 이번에 처방해준 향 마저 듣지 않으면 어떡하나 싶었다. 왠만한 심리치료와 물리치료는 다 해봤지만 다른 환자들에 비해 치료 속도가 열등한 환자인 소년은 다시금 제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벗어두었던 교복 마이를 들고 일어났다. 그에 세미의 시선이 소년의 동선을 따라 함께 움직였다.


"벌써 가게요?"

"네. 원래 오늘은 예정 상담일도 아니었으니까요."

"더 있다 가도 되는데."

"선생님도 퇴근하셔야죠. 제가 시간 뺏은거 아니에요?"


괜찮은데... 세미는 말 끝을 흐렸다. 차가 식지도 않았는데 일어난다니. 여러모로 평소와는 다른 소년의 행동에 세미는 차트기록을 다시 해야하나, 라 생각하며 떠나려는 소년을 배웅하려 함께 일어섰다. 소년은 그런 세미에게 간단히 목례했다.


"그럼 다음주에 뵐게요."

"그래요. 조심히 들어가요, 시라부 학생."





-


시라부 켄지로는 명문 시라토리자와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었다. 성적도 상위권이고, 활동적인 배구부에도 들어가 사교성도 꽤나 괜찮은 것으로 보이는 시라부는 이 병원 환자 중에서도 특별 케이스였다. 그의 집안은 알파가 아닌 다른 베타나 오메가를 찾아 볼 수 없었으며 오로지 알파와의 교제만 허락했다. 가족 관계를 증명해놓은 서류를 보면 지위가 꽤나 높은 사람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다소 평범하지만 알파로서의 권위를 내세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가족 구성원의 전원이 우성 인자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타고나길 알파다. 외동이라 부모님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고 그 기대를 재능으로, 때로는 노력으로 채워가는 시라부다. 그는 완벽에 가까운 아들이었다. 한 가지만 제외하면.


시라부가 처음 자신을 찾아왔을때는 아직 그가 중학교에 재학 할 때였다. 화가 많이 난 상태로, 노크도 없이 문을 벌컥 열었을 때가 아직 기억난다. 그는 아직 사춘기가 다 지나가지 않은 소년이었고 병원에 있는 상담실에 왔다는 것이 무척 자존심 상한 듯 했다. 그는 아직 조금은 앳된, 그러나 격양된 목소리로 제게 물었었다.


"당신이 세미 에이타입니까?"


대답을 하려는 찰나 전화가 울렸다. 부병원장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무례한 아이에게 검지 손가락을 들어 잠시 기다리란 신호를 보낸 후, 수신음이 들리는 전화를 들었다.


"세미입니다."

[아, 세미군. 조금 있다가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소년이 자네 사무실에 찾아 갈걸세. 그 아이가 온다면 잘 좀 달래 주게나.]

"네.. 벌써 도착 했네요."

[그래? 무튼, 그 아이 기분 상하게 하지 말고. 걔네 외할아버지가 병원 협회 높으신 분이야. 또 자네가 그 분야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있다고 일러뒀으니, 실망 시키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네, 네."


친히 전화까지 해 신신당부를 하는 부병원장에 제 앞에서 마구 표정을 구겨뜨리는 소년이 우리 병원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사람이란걸 알게 되었다. 그걸 아는건지, 아니면 원래 저렇게 안하무인인건지. 앉으란 소리 하나 없었건만 이미 제 앞에 자리한 상담용 의자에 앉아 빨리 내 문제점이 뭔지 알아내 보라는 듯, 소년은 눈빛으로 저를 쏘아보고 있었다.


"페로몬 전문상담의 세미 에이타 입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나는 알파에요."

"네."

"나는, 알파라구요."

"서류에도 그렇게 나와있네요."


어디보자... 시라부 켄지로, 나이 15세, 부모 전부 알파, 본인도 알파. 세미는 서류를 한번 눈으로 훑으며 제가 본 것을 입으로 말했다. 자신에 비해 오히려 너무 평온한 세미의 반응에 시라부는 오히려 당황한건지 처음보다는 다소 누그러진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시작은 한숨이었다.


"학교에서 체육수업을 했어요. 야외에서, 그런데 같이 수업하던 애 중 하나가 갑자기 히트사이클이 온거에요."

"요즘은 알파와 오메가를 각각 분반하지 않나요?"

"네, 그렇죠. 근데 합반수업이었어요. 저희 반은 수학시간이었는데, 수학 선생님이 결근을 하시는 바람에..."

"그랬군요."

"...보통은 발정기가 온 오메가 옆에 있는 알파는 페로몬의 영향을 받잖아요."

"그렇죠."

"근데 저는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네?"

"발정기가 온... 오메가의 페로몬 향기를 맡았는데도 전혀 반응이 없었다고요."


소년은 생각보다 무덤덤하게 이야기했다. 자신의 문제점에 대해 말할때 인정하고 싶지 않아하고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걸 보면 나잇대에 비해 굉장히 어른스러운 행동이라 할 수 있었다. 아니면 그냥 화가나는걸 그저 인내로 누르는 것 뿐일수도 있지만. 과연 상위층의 자식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례적인 상황에 세미는 말문이 막혔다. 오메가의 페로몬 향이 전혀 들지 않는 알파라니. 일말의 데이터도, 한 장의 논문도 없는 이례적인 상황에 당황함과 동시에 황당해서 세미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아 꽤 곤욕을 치뤘었다. 시라부는 세미의 앞에서 그의 소견을 기다리고 있었고, 고민하고 고민하다 결국 한 말이라고는 인자검사를 해보자, 였다.


인자 검사란 자신의 성별에 얼마나 많은 우성 인자가, 또 열성 인자가 있는지를 퍼센트로 알아보는 검사로 대부분 태어났을때 말고는 검사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마저도 그저 막 태어난 아이가 우성인지 열성인지만 간단히 검사하지, 정밀히 퍼센트로 그 수치를 나타내 주진 않았다.


시라부는 썩 내켜하진 않았지만 별 말 없이 검사를 잘 따라와 주었다. 간단한 채혈과 몇가지 테스트로 이루어진 검사를 마치고 시라부를 돌려보내면서 세미는 예의 웃음을 지어보였다.


"검사 결과는 2-3일 내로 나올거에요. 연락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시라부는 그 말을 끝으로 돌아가다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세미에게 질문을 던졌다.


"근데 선생님은 알파인가요?"

"아뇨. 저는 베타에요."


그렇군요. 시라부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곤 목례를 마지막으로 상담실에서 나갔다. 그가 빠져나가자 세미는 제 몸을 감싸고 있던 알 수 없는 긴장감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세미 에이타 의사인생에서 조금 별나고, 특별한 환자를 만난 날이었다.


0
이번 화 신고 2017-02-23 22:52 | 조회 : 2,869 목록
작가의 말
단제

시라세미... 그것은 마이너의 시작... 오메가버스 AU치고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죠..? 그거슨ㄴ 노림수..!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