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어쩌면





내게 미소를 지어준 채 곧장 시선을 돌리는 진성이에 난 불안감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혹시 내가 이상하게 웃었나...? 난 재빨리 얼굴 위로 퍼져 있었던 웃음을 지우며 몸을 굳혔다. 좀 전까지 쿵떡대며 폭죽을 터뜨리던 마음 속은 언제인가 뜨거운 불안감으로 가득채워지는 듯 했다. 난 진성이가 빌려준 자켓을 바라보며 살짝 주먹을 쥐었다. 물어보자.

"진···."

쾅! 뒤에서 들려온 굉음에 나는 헛숨을 들이키며 뒤를 돌아봤다. 그 곳에는 뛰어온 듯 세차게 숨을 몰아쉬며 부실 안으로 들어오는 부장선배님이 보여왔다. 난 숨을 가다듬으며 천천히 테이블로 다가오는 부장선배님을 바라보다 문득 진성이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진성이는 무언가 불편한지 미간을 좁히고서 부장선배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야, 그러다 문짝 떨어져!"

"미안미안."

진성이의 시선을 따라 눈길을 옮기니 저 건너 화를 내며 말해오는 선배님의 말에 작게 사과의 말을 내뱉는 부장선배님의 뒷모습이 보여왔다. 나는 그런 부장선배님의 뒷모습을 한번, 진성이의 찌푸려진 미간에 한번 눈동자를 옮기다 깨닫고 말았다. 저 눈빛은 우리 어머니가 잘못을 저지른 아버지를 바라볼때의 눈빛이었다. 설마 어제 그 낭만빵집에서 그런 뜬금없는 질문을 한 이유가···! 난 뚫어져라 부장선배님을 쳐다보는 진성이의 등을 톡톡, 쳤다. 방금 전 내게 타올랐던 불안감은 어느새 사라져있었다.

"···왜?"

진성이는 자신에게 닿은 내 의문의 부름에 당황하며 나를 돌아보았다. 역시나···. 나는 그런 진성이의 눈을 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왜 불렀어?"

내 돌발적인 고개의 주억거림에도 불구하고 진성이는 내게 상냥히 물어왔다. 난 다시금 느끼는 친구라는 두터운 관계에 대해 떠올리며 진성이의 앞에 주먹을 쥐어보였다. 그리고 비장하게 말을 내뱉었다.

"진성아, 난 널 응원할게."

"....무슨소리야?"

"걱정하지마... 나 그, 그런 거에 차별없어."

내 말에 당황하며 재차 물어오는 진성이를 보며 난 고개를 살살 저었다. 그리고 두 손으로 입가를 가린채 작게 말을 전했다. 뉴스에서 본 적이 있어. 동성끼리도 사랑이 가능하다고···. 설마 마이프렌드 진성이가 그런 쪽일줄은 상상도 못했지만.

"야, 김돈복."

"응?"

막상 말을 내뱉고 나니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것 같았다. 괜한 간섭이였을까? 나는 내 이름을 부르며 내 주먹 위를 감싸오는 진성이의 손을 바라봤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진성이를 마주보는 순간 느껴지는 살벌함에 철렁, 하고 심장이 내려앉는 듯했다. 진성이는 날 차갑게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그, 너 좋아하는 거 아니였어?"

"누구를?"

말투는 상냥하지만 눈빛은 더할나위 없이 차가운 진성이에게 나는 작게 입모양을 만들었다. "부장선배님" 진성이는 그런 내 입모양을 보더니 입가를 씰룩이며 썩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나는 그런 진성이의 미소가 단지 친구에게 들켜 부끄러워하는 것인 줄 만 알았다. 내 주먹 위를 죄이는 엄청난 힘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돈복아, 너가 지금 내가 누굴··· 하."

나는 기가 막힌 듯 한숨을 내뱉는 진성이를 보며 무언가 잘 못 되었음을 알았다. ...아무래도 내 생각이 틀린 것 같지? 난 자신의 착각과 부끄러움에 휩싸여 얼굴을 붉혔다. 내 주먹을 점점 죄여오는 진성이의 손에 나는 고개를 푹 숙여 말했다.

"미안, 나는 너가 계속 이상한 눈빛으로 부장선배님을 쳐다보고 있길래···."

"이상한 눈빛?"

내 잘못된 단어의 선택에 화가 난듯 살살 눈웃음을 쳐오는 진성이에게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한쪽 손을 필사적으로 흔들었다.

"아니,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돈복이 너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

"부장선배님이랑 나, 형제야. 가족이라고."

한쪽 입꼬리만을 실쭉 올린 채 이를 바득바득 갈며 작게 말해오는 진성이를 보며 난 화들짝 놀라 눈을 크게 키워야했다. 나는 진성이의 얼굴을 찬찬히 훑어내렸다. 그러고보니 조금 닮은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왜 선배님이라고 불러?"

생각해보니 진성이가 부장선배님을 항상 선배님이나 부장선배, 부장선배님이라고만 불러온 것 같다. 형제라면 좀 더 친근하게 부르지 않나?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진성이는 더욱 미간을 좁히며 기분나쁘다는 듯 중얼거렸다.

"···착한 척 연기하는 게 같잖아서···."

난 작게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진성이를 보며 눈을 굴렸다. 진성이의 목소리가 너무 작아 잘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데룩데룩 눈을 굴리며 진성이의 목소리를 해석하기 위해 집중하고 있을 때였다. 진성이가 내 주먹 위에서 손을 떼며 재차 말해왔다.

"그냥, 별로 사이가 안 좋아."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하는 진성이에 나는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각자의 사정이 있는 거겠지? 그리고 난 가족이랑 그렇고 그런 사이냐고 물어본거고···. 난 타들어가는 속에 입을 오물거리다 찌그러진 진성이의 미간에 힐끔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내가 너무 일방적으로만 생각한 것 같아, 진짜 미안해."

"후배님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해?"

헉, 난 숨을 삼켰다. 갑작스레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부장선배님의 것이었다. 난 고개를 삐걱거리며 옆으로 돌렸다. 그 곳에는 한 손에 유인물을 든 채 사람좋은 미소를 뿜어내고 있는 부장선배님이 우리들을 바라보며 서계셨다. 그렇게 딱딱하게 굳은 나 대신 부장선배님의 물음에 대답한 것은 진성이었다.

"그냥 오늘 점심 맛있었냐고 물어보고 있었어요."

"...그래? 난 또 심각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길래, 자 이거."

그런 진성이의 말에 고개를 두어번 끄덕인 부장선배님은 손에 들고 있던 유인물을 몇장 빼더니 우리들에게 건넸다. 하얀 종이 위에는 사진 몇장이 인쇄되어 있었다. 엄마 품에 기대어 졸고 있는 아이사진, 포도밭 가운데에서 저글링을 하는 한 남자의 사진등등. 흔히 볼 수 있는 사진들도 있었고 보기 드문 상황을 연출하는 사진들도 있었다. 나는 한동안 그 사진들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내가 나눠준 종이에는 다양한 사진들이 실려있을거야, 그렇지?"

"네──"

테이블에 앉은 아이들과 나는 종이를 팔락거리며 물어오는 부장선배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작게 대답을 했다. 그에 부장선배님은 남은 종이들을 테이블 위로 올려두며 우리들에게 말했다.

"그 사진들은 작년에 우리가 찍은 사진들이야, 그리고 이제부터 너희들도 해야할 것들이지."

부장선배님은 눈을 빛내며 귀를 기울이는 우리들을 보며 살짝 웃음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번씩 주제를 정하는 데, 그 주제에 맞춰서 사진을 3장 찍어오면 돼. 폰으로 찍든 카메라로 찍든 상관없어."

테이블은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다들 옆에 앉은 친구들과 어떤 사진을 찍을 거냐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난 그에 진성이를 바라보며 들뜬 마음으로 물었다.

"진성이 넌 어떤 사진을 제일 찍고 싶어?"

내 말에 진성이는 종이에 향해있던 눈을 내게로 돌리며 말했다.

"초코"

단호하게 말해오는 진성이에 나는 눈을 깜빡이며 어제 일을 떠올렸다. 쟁반 위에 올려져있던 갖가지 종류의 초코빵들···. 아, 그러고보니 초코소라빵의 돈을 아직 갚지 못했네. 오늘 갚는다고 했는데... 난 텅 빈 바지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며 진성이에게 말했다.

"지금 생각나서 그러는데, 오늘 갚는다고 했던 빵값 내일 갚으면 안될까? 돈가져오는 걸 까먹었어..."

"괜찮아, 어차피 나도 까먹고 있었는데 뭐."

난 이 친절한 내 친구 진성이에 마음 따듯한 감동을 느끼며 두 손을 그러모았다. 천사다 천사. 그렇게 믿지도 않는 신에게 기도를 올리고 있을 때였다. 어느 순간에 자리에서 일어난 진성이가 내 머리 위에서 뭐하냐는 듯 날 불러왔다.

"야, 종쳤어. 집가야지."

난 진성이의 말에 반대편 벽에 걸린 시계로 고개를 돌렸다. 8시 20분, 어느새 동아리가 끝나고 야자를 하지 않는 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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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2-26 14:26 | 조회 : 1,104 목록
작가의 말
nic23075521

욱액 본푠이애요 이런맛대가리도업눈소설을바주시다니감사합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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