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어쩌면





나는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다. 매일 같이 거리를 두며 과도한 배려들을 베푸는 아이들이 부담스러웠다. 또 한편으로는 우울했다. 어째서 나는 또래들과 섞여 웃고 떠들지 못하는 지에 대해 밤을 새며 고민했다. 붙임성이 없는걸까?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나누고 말을 붙이려고도 해봤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아이들의 알 수없는 웃음들과 손에 쥐어진 빳빳한 지폐들이었다. 내게서 떨어지지 않는 돈냄새가 미웠다. 그저 난 친구를 사귀고 싶을 뿐인데도 항상 쥐게 되는 것은 내게 있어서 가치없는 종이들이었다.

그렇게 고등학교에 올라왔다. 학교는 소란스러웠지만 내 주위는 조용했다. 아이들은 내가 지나가는 길을 터주며 날 힐끔거렸다. 그런 시선들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재빨리 발을 놀릴때였다. 강당 옆 복도에 아이들이 모여 한 포스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난 호기심에 무거운 발걸음을 하나씩 옮겨 그 앞으로 걸어갔다.

바닥을 기어가는 개미를 찍고 있는 한 남자의 사진이었다. 남자는 그냥 그저 위에서 아래로 찍고 있는 것이 아니였다. 몸을 바닥에 바짝 붙이고서 진지히 눈을 빛내는 남자의 사진이었다. 포스터의 아래쪽에는 그 남자가 찍은 사진인지 개미가 바닥을 기어가는 사진과 함께 '사진동아리에서 신입부원 모집!'이라는 문구가 새겨져있었다. 진지한 사진과는 달리 발랄하게 휘갈긴 듯한 문구에 난 시선을 빼앗겼다.

처음에는 호기심이었다. 두번째는 두려움이였고, 세번째는 들끓어오르는 행복감이었다. 호기심에 다가간 포스터에 난 빠졌고, 결국 그 동아리에 신청서를 넣어, 난 첫 친구를 사귀었다.

"진성아, 나 안 이상해?"

신발을 갈아신으며 난 넌지시 진성이에게 물었다. 내 주위의 아이들이 내게 거리를 두는 것을 보며 진성이는 어떻게 생각할까? 난 내 물음에 날 돌아보는 진성이의 까만눈을 보며 속을 태웠다. 날 가만히 바라만보던 진성이가 신발장을 닫으며 말했다.

"넌 걱정이 너무 많아."

난 그 말에 입을 꾹 다물었다. 걱정이 많다라, 맞는 말이었다. 난 고개를 까딱이며 애써 웃으려 노력했다. 그렇구나, 하며 말을 내뱉으려했다. 일렁거리는 내 얼굴을 누른 것은 진성이의 커다란 손바닥이었다.

"머리도 작은게."

"으아아아"

내 얼굴을 누르던 진성이의 손바닥이 이내 내 머리를 흔들었다. 짤짤 흔들리는 머리에 난 과장된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금방이라도 가슴을 텁텁하게 만들었던 과거의 순간들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아프지만 즐거워 입가에 대롱대롱 미소를 달때였다.

"이럴땐 하지말라고 해야지, 웃으면 어떡하냐?"

내 얼굴 위에서 손이 떨어져나가자 선선히 웃으며 내게 말해오는 진성이가 보였다. 만약 사진 속 주제가 행복이였다면, 난 당장이라도 이 순간을 수십장 찍어 남기고 싶었다.

"멍때리지 말고 빨리와."

어느새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 진성이에 나는 빠르게 달음박질 쳤다. 이렇게 간단한데도, 왜 다들 내게 거리를 두었을까? 크게 목소리를 내어 불러봐도 돌아봐주지 않던 아이들을 생각하며 난 기쁘게 웃었다. 지금이라면 무엇이든지 즐겁게만 느껴질 것 같았다.



나는 거리를 환하게 비추는 네온사인들을 보며 발걸음을 옮겼다. 진성이와는 학교 앞 버스 정류장에서 헤어진 뒤였다. 시선을 내리니 내 상체를 감싸는 진성이의 자켓에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자켓을 돌려주려 하자 "밖에 춥잖아, 내일 돌려줘."하며 자상히 말해온 진성이었다. 히히, 난 자꾸만 씰룩씰룩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했다.

날라갈 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에 도착한 나는 다른때보다 더욱 밝은 모습으로 돌아와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질문 공세를 받아야했다. 원래는 학교에서의 일을 잘 말하지 않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첫 친구를 사귄, 그것도 짱짱 멋진 친구를 사귄 오늘 난 당당히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털어놓기시작했다.

"사실은 학교에서 첫 친구를 사귀었어."

"첫 친구라니?"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뜬채 물어오는 아버지에 난 이때까지의 일들을 차근차근 털어놓았다.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야기들이었지만, 어머니와 아버지는 날 부둥켜안고는 펑펑 눈물을 지으셨다. 나는 그런 부모님의 등을 도닥이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

"···괜찮아, 나 이제 친구 사겼잖아. 이진성이라고, 엄청 착한 애야."

"아이고, 아이고... 엄마가 미안해, 미안해 돈복아...."

연신 내 등을 감싸며 눈물을 지으시는 어머니와 아버지에 나는 살포시 눈을 감았다. 어릴때부터 변치않는 따뜻한 부모님의 품은 언제나 날 구해주는 것이었다. 그날 밤, 나는 부모님의 품에서 잠이 들었다.




···나는 진성이의 자켓과 천원짜리 지폐 한장을 챙기고서 학교로 향했다. 집을 나서기 전 어제의 이야기들 때문인지 안절부절 못하시는 부모님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환하게 웃고나왔지만 조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나 걱정하실 줄 알았으면, 이야기를 하지 않는 편이 좋았을까하는 생각. 한편으로는 개운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먹먹한 느낌에 난 걸음을 빨리했다.

정신없이 걷는 것에만 열중하다보니 어느새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탁, 탁, 탁···. 조용한 학교에는 내 발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렇게 이 곳을 울리는 발소리에 빠져있을 때였다. 탁, 계단을 올라가다 계단에 발이 부딪혔다. 난 몰려오는 고통에 잠시 멈춰서 있다 다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 학교의 계단은 조금 높은 것 같다. 생각없이 오르다보면 계단에 발이 턱턱 걸려버린다. 난 방금 전 계단에 치인 발등의 찌릿함을 느끼며 신중히 계단을 올랐다.

사물함에서 오늘 배울 교과서를 한두권 빼어 손에 든 나는 서둘러 반으로 향했다. 어제는 진성이가 나보다 빨리 도착해있었으니, 오늘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설렘에서 말이다.

드르륵-, 문이 열리고 보인 것은 텅빈 교실이었다. 진성이의 책상 위에는 가방하나가 놓여져있었다. 화장실이라도 갔나? 나는 내 책상위에 책과 가방을 올려두고 문 밖을 나섰다. 고요한 복도에는 조금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난 조심스레 발을 옮기며 화장실로 향하려 했다.

"······!"

화장실 옆 복도 쪽에서 누군가 싸우고 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웅얼거리듯 작은 목소리들이었지만 워낙 주위가 조용해 좀 더 크게 들려왔다. 누군가의 싸움을 훔쳐보는 것은 마음이 꺼려졌지만 혹시나, 혹시나하는 마음에 나는 그 곳으로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미친 새끼!"

점점 가까워지자 웅얼거리듯 들려왔던 목소리가 선명히 들려왔다. 난 그 익숙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했다. 차마 꺽여들어간 복도쪽을 들여다보진 못하고 난 화장실 옆 벽에 바짝 붙어 숨을 죽였다.

"조용히 해, 목소리가 울리잖아."

"하, 그러라고 한거야."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들, 난 머리 속에 떠오르는 두 사람에 눈을 깜빡였다. 진성이와 부장선배님. 형제끼리 싸움이라도 하는 걸까? 나는 다시 발소리를 죽이며 교실로 돌아갔다. 아무래도 심각한 내용같아, 계속 들으면 안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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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2-27 13:46 | 조회 : 1,434 목록
작가의 말
nic23075521

하루애한편식올리려구햇눈대이제눈개학이내요우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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