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상한 사람이 꼬여





난 집이 있는 골목으로 뛰며 힐끔 뒤를 돌아봤다. 다행히도 그 남자는 뒤쫓아오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잠시 멈춰서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들었다. 학교에서 금방나선터라 집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었다. 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주린 배를 채울 곳을 모색했다. 햄버거, 파스타, 카페···. 딱히 끌리지 않는 것들이였다. 배는 고프지만 먹고 싶은 게 없어 한동안 고민하다 눈에 들어온 것은 어느 하얀 간판이였다.

눈길을 빼앗는 하얀 간판에는 주홍색으로 낭만빵집이라고 적혀있었다. 투명한 유리창 사이로는 적지않은 사람들이 빵을 고르고 있었다. 난 한동안 유리창 너머를 힐끔거리다 결국은 빵집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섰다. 빵집을 가득채운 고소한 빵냄새가 코끝에 스며들었다. 난 진열되어있는 빵바구니들을 바라보며 다리를 움직였다.

'초코소라빵.'

바구니에 달린 명찰에는 그렇게 써져있었다. 폭신폭신한 빵 안에 채워진 달고 부드러운 초코크림, 생각만해도 입에 침이 고이는 것 같았다. 바구니 안에는 비닐포장되어있는 초코소라빵들이 여러개 들어있었다. 난 얼른 그 바구니 속으로 손을 뻗었다.

"어? 블랙?"

난 바구니에서 초코소라빵의 봉지를 살짝 들어올린 채 고개를 돌렸다. 그 곳에는 같은 1번팀이였던 까만머리의 또래아이가 빵집게와 쟁반을 들고서 가만히 날 바라보고있었다. 블랙이라니, 난 부실에서 취했던 우스꽝스러운 포즈들을 떠올리며 귀를 붉혔다.

"안녕···."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자 손에 쥔 빵집게를 탁탁, 맞부닥치며 다가오던 까만머리가 그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게 말해왔다.

"너 초코 좋아해?"

"음, 그럭저럭?"

"....그래?"

아마 내 손에 들린 초코소라빵때문에 그런가 싶었다. 하지만 이건 초코를 좋아한다기보단 이 소라빵을 좋아하는 거니까. 난 손에 들린 초코소라빵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러자 그렇냐며 내 옆으로 다가온 그 아이는 내 주위에 진열되어있는 빵들을 몇 개 집어 쟁반 위에 올리더니 이렇게 물어왔다.

"혹시 괜찮으면 여기서 같이 먹다 갈래?"

난 아랫입술을 깨물고서 고개를 까딱였다. 또래아이가, 나랑 빵을 같이 먹자고 권하다니. 그것도 밖에서! 난 떨려오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댔다. 호, 혹시 친구가 될 수 있을지 몰라.

"그럼 저기 앉아있어, 이건 내가 내 거 계산할때 같이 할게."

그 아이는 내 손에 들려있던 초코소라빵을 낚아채듯 가지고 가더니 턱으로 빵진열장 뒤 테이블을 가리켰다. 난 어느새 텅비어진 손을 얼떨떨히 바라보다 아이가 가리킨 테이블로 향해야했다. 네모난 테이블에는 의자가 2개 놓여져있었다. 난 의자에 앉아 허벅지 위로 손바닥을 문지르며 초조히 그 아이를 기다렸다.

"많이 기다렸어?"

"아, 아니...."

테이블 위로 쟁반을 놓으며 물어오는 아이의 말에 난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많이는 무슨, 고작 5분 채 될까. 난 좌우로 고개를 흔들며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아이는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띄우더니 내게 말했다.

"다행이다."

안심한 듯 가벼운 한숨을 포옥 쉬는 그 아이의 모습에 난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쟁반 위를 바라보았다. 쟁반 위에는 온통 초코로 가득했다. 초코 머핀과 초코 슈크림, 초코 도넛···등등. 아무래도 빵 진열대 앞에서 물어보았던 그 질문은 단지 내가 초코소라빵을 들고 있어서가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이 아이의 초코사랑을 깨달으며 쟁반 오른쪽 귀퉁이에 올려진 초코소라빵을 향해 손을 뻗을때였다. 탁, 돌연 아이가 빵을 쥐려던 내 손을 잡아내렸다. 뭐지? 지금 먹으면 안된다는 건가? 잔뜩 물음표를 그리고 있을때에 아이가 내 손등 위를 누르며 살포시 말해왔다.

"저기 있잖아."

"응?"

"부장선배랑 무슨 이야기했어?"

난 그 뜬금없는 소리에 눈을 크게뜨고 그 아이를 바라봤다. 그 아이는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띄운 채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냥··· 우리가 찍은 기념사진 이야기를···."

"그 것만 이야기한거야?"

떨떠름히 내뱉은 내 말에 아이가 눈을 번뜩이며 물었다. ...왜 이런걸 묻는거지? 난 자꾸만 날 바라보며 대답을 추궁하는 아이의 말에 살짝 눈을 내리깔며 읊조리듯 말을 이었다.

"으음, 그리고 내가 어디서 사는지···"

"너가... 어디서, 사는지를 물었다고?"

내 말을 가로막고서 차갑게 되물어오는 그 아이에 난 입을 꾹 다물었다. 그 아이의 손에 잡힌 내 손은 빠져나오지 못한 채 바들바들 떨리고만 있었다. 왜지, ...분명 손이 잡아채이기 전엔 정말 좋았던 것 같은데···. 다들 내 손만 잡으면 이상해지는 게, 설마 내 손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액땜을 해야될지도...

"···그래?"

빠드득, 내 앞으로 들려오는 살벌한 이갈리는 소리에 난 급히 고개를 숙였다.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게 좋을 듯 싶었다.

"돈복아, 고개 들어봐."

그렇게 하얀 테이블을 바라보고 있던 내게 날카로운 목소리가 닿았다. 모르는 줄만 알았던 내 이름을 불러오는 아이의 말에 난 퍼뜩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들자 상냥히 웃음을 짓는 아이의 얼굴이 보여왔다.

"다음부터 선배님이 너한테 뭘 물어오면, 나한테 먼저 얘기해줘야 돼. 알겠지?"

"응."

그렇게 묻는 아이의 말과 함께 잡혀있던 내 손에 압박이 가해졌다. 난 두려움에 서둘러 대답을 내놓았다. 그러자 눈을 사르르 접으며 고맙다고 말해온 그 아이가 문득 잡혀있던 내 손을 풀어주더니 옆에 있던 초코소라빵을 집어주었다.

"빵이나 먹을까?"

난 아무 말 없이 그것을 받아들고서 천천히 비닐포장을 뜯어냈다. 내 앞에 앉은 또래아이와 친구가 될 수 있지않을까하며 생각하던 머리는 이미 텅텅 비어있었다. 반 쯤 멍한기분으로 난 폭신한 빵을 손으로 뜯어 입으로 집어넣었다. 혀 위를 달콤한 초코크림이 가로질렀다. 난 입 안으로 느긋히 퍼져나가는 단맛에 입을 열심히 움직였다.

"....."

어느새 두 손에 쥐고 있었던 소라빵은 사라져있었다. 난 혀를 내밀어 초코가 묻은 입술위를 쓸었다. 왠지 아쉬운 끝맛이였다. 그렇게 입을 다시며 고개를 들어올리자 날 빤히 바라보는 아이가 있었다. 너무 열심히 먹었나. 난 뻘쭘히 텅 빈 비닐을 만지작 거리며 말했다.

"....왜?"

왜 바라보냐며 건넨 말에 그 아이는 고개를 저으며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아니, 너가 너무 맛있게 먹길래."

나는 그 말에 "그, 그렇구나···." 하며 고개를 까딱였다. 난 어색함에 눈을 굴려 쟁반 위를 바라보았다. 쟁반 위에는 내가 먹은 초코소라빵을 제외하고 처음 보았던 그대로 놓여져있었다. 왜 먹질 않지?

"넌 빵 안먹어?"

내가 쟁반 위의 빵들을 바라보며 말하자 그제야 제 앞에 놓인 초코슈크림을 하나 들어올린 아이가 입을 우물거리며 말했다.

"···너도 먹을래?"

난 그 말에 괜찮다며 손을 흔들었다. 고개를 들자 벽에 걸린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시침은 어느새 4를 넘어가고 있었다. 난 아직 입을 우물거리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 이제 가야할 것 같아...."

"벌써?"

"응. 우리집 음식점하거든, 좀 도와줘야 할 것같아서···."

곧 있으면 저녁이라 손님들이 몰려들 것이었다. 어제는 잠에 들어 도와주지 못했으니, 오늘은 하나라도 일을 거들고 싶었다. 난 만지작거리던 초코소라빵 봉지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그리고 이건 내일 갚아도 될까? 지금은 만원짜리 밖에 없어서..."

"응, 괜찮아. 그럼 내일 봐-"

난 테이블 밑 쓰레기통에 비닐을 떨구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날 보며 아이는 손을 설레설레 흔들며 말했다. 나도 그에 맞춰 손을 흔들며 빵집을 나섰다.


난 주위를 둘러보며 잠자코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사건사고가 많은 날이었다. 특히 이 손. 나는 문제의 손을 보며 펼쳤다 쥐었다를 반복했다. 분명 모두들 내 손을 잡고서 이상한 말을 해왔다. 설마, 만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내 손에 무슨 신기한 능력이 있다던가...?

그렇게 나는 음식점 문을 열고 카운터에 들어서 손님을 맞을때까지 내 손의 숨겨진 힘에 대해 고민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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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2-23 13:46 | 조회 : 1,178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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