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상한 사람이 꼬여




난 부장선배님이 내민 스마트폰의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화면에는 사진동아리의 모두가 우스꽝스러운 포즈를 취한채 즐겁다는 듯 웃고 있었다. 파워레인저 포즈를 취하고 있는 우리팀을 중심으로 2번팀의 현기증이 일어난 신데렐라와 3번팀의 라푼젤이 보였다. 제일 눈길을 끄는 것은 3번팀의 라푼젤이였다. 여자선배들이 머리카락을 늘어뜨린채 겹쳐있었는 데 번뜩번뜩 머리를 뚫고 보이는 눈빛에 소름이 돋았다.

"잘 찍혔지? 사진 보내줄까?"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내게 부장선배님이 말해왔다. 난 부장선배님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내 앞으로 번호자판을 띄운 스마트폰을 건넨 부장선배님이 뭘 그정도가지고 그러냐며 하하 웃었다. 난 스마트폰을 받아들고는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제가 핸드폰이 없어서···, 혹시 어머니번호로 보내주실 수 있을까요?"

"아, 상관없어. 그럼 그 번호가 어머니번호셔?"

"네...."

"지금 보내도 괜찮아?"

눈을 크게 뜨고서 손을 저으며 상관없다 말한 부장선배님이 재차 물어왔다. 아마 괜찮을 것이다. 몇번 일이 있을 때마다 통신망이 되어준 어머니의 번호였다.

"네."

난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의사를 내보였다. 내 말에 부장선배님은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사진을 보내는 듯 스마트폰의 화면을 꾹꾹누르다 문득 날 돌아보았다.

"그럼 연락은 어떻게 하는 거야?"

"그···."

궁금하다는 듯 날 바라보는 선배님에 난 당황하며 콩알만큼 작아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딱히 연락을 주고받지 않아서요..."

그렇다. 나와 연락을 주고받는 사람이라곤 부모님과 학교선생님들 밖에 없었다. 내게 용돈을 쥐어주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친구라는 두터운 관계는 없었던 것이다. 중학교 시절도 그랬다. 내가 아무리 용기를 내어 또래무리에게로 다가가도 아이들은 그저 날 보면서 알 수 없는 미소를 걸친채 내 손에 용돈을 쥐어주는 것이다. 그런 일이 반복, 반복, 반복이 되고나니 난 대망의 친구만들기를 포기해버렸다. 자꾸만 눈꺼풀이 아래로 축축 쳐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아,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날 챙겨주는 아이들은 많았던 것 같다. 수업시간때마다 조는 날 깨워준다던가, 급식에서 나오는 콩반찬을 내 숟가락위로 올려준다던가···. 어라? 뭔가 좀 이상하지 않나? 그렇게 회상에 젖어있을때에 부장선배님이 내게 말해왔다.

"음, 그럼 집이 어디야? 다른건 아니고 아침에 너 뛰어왔잖아. 집이 많이 먼가해서."

"아침에는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서둘러오느라··· 사실 별로 멀진 않아요. 여기 근처에 돈복이네냠냠이라는 음식점에서 살···."

"어? 잠시만!"

갑자기 내 말을 끊은 부장선배님이 내 어깨를 붙들더니 재차 물어왔다.

"돈복이네냠냠?"

"네? 네."

차근차근 음식점이름을 되뇌이던 부장선배님이 왼손에 쥔 스마트폰을 다시 들어올렸다. 화면을 열심히 두들기던 선배님이 문득 시선을 맞춰오며 내 얼굴 옆으로 스마트폰을 가져다 대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명물···."

".....?"

난 자꾸만 무언갈 중얼거리며 스마트폰과 날 번갈아 바라보는 선배님을 보며 모자챙을 살짝 위로 들어올렸다. 몇시간동안 앞머리를 누르던 모자챙이 조금 거슬렸다. 난 챙을 들어올리자 넓어진 시야를 느끼며 입을 삐죽거렸다. 진작에 들어올릴걸.

"너...."

"네?"

앞에서 날 부르는 부장선배님의 목소리에 난 고개를 살짝 들어올렸다. 말꼬리를 늘리며 입을 떨던 부장선배님이 문득 손바닥을 내밀었다. 악수를 하자는 건가? 난 이 뜻모를 부장선배님의 손바닥에 내 손바닥을 겹쳤다. 그러자 잠시 움찔거리던 부장선배님의 엄지손가락이 내 손등 위를 부드럽게 쓸어내리기 시작했다. ...뭐지? 악수하자는 의미가 아니였나? 난 살짝 멍해보이는 선배님의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

"저기...."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자 부장선배님의 초점이 돌아오는 듯 했다. 난 악수하듯 잡힌 손을 살살 위아래로 흔들었다. 그에 부장선배님은 어깨를 파드득 떨더니 재빨리 내 손을 뿌리치듯 놓았다. 아무래도 그 손은 악수의 의미가 아니였나보다.

"아... 미,미안!"

잘못 이해한 것은 나인데 왜 선배님이 사과하시는 거지? 난 영문도 모른채 고개를 갸웃거리며 부장선배님을 바라보았다. 부장선배님은 내 눈을 피하며 머리를 휙휙돌렸다. 설마, 나 그렇게나 큰 실수를 한건가? 눈을 피할정도로···. 난 살짝 위로 들어올렸던 모자챙을 다시 잡아 내리며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

"야 부장, 빨리 정리해야지."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시선을 피하던 부장선배님과 내 사이로 한 선배님이 다가오며 말했다. 덕분에 이 어색한 공기는 끝이 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비록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 맞다···."

부장선배님은 곧장 큼큼, 목을 가다듬더니 목소리를 키우며 말했다.

"애들아 오늘 재미있었고 내일 학교에서 보자!"

큰 목소리로 안녕을 고하는 부장선배님의 말에 아이들은 하나둘씩 인사를 건네며 부실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나 또한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작게 인사를 건네고서 도망치듯 부실을 빠져나왔다.


난 학교 밖으로 발을 옮기며 푹푹 한숨을 내리쉬었다. 자꾸만 시선을 피하던 부장선배님이 떠올랐다. 내 실수에 화가 난 듯 잔뜩 얼굴을 붉히고서 시선을 피하던 부장선배님···. 난 발 끝에 채이는 돌맹이를 차며 생각했다. 역시 사과하는 것이 좋았을까?

"돈복씨?"

돌맹이를 차며 걷고있던 내 앞으로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가 닿았다. 날 부르는 호칭과 저 목소리는 마치 어제 그 남자를 떠오르게 만들었다. 난 모른척 다리를 움직였다. 얼굴도 모자로 가리고 있겠다. 저 남자가 잘못 보았다고 지나치면 그만이였다. 그렇게 생각한 내가 살짝 고개를 숙이며 능청스레 그의 옆을 지나치려 할때였다.

"어라, 맞았네요. 돈복씨."

"....."

"왜 모른척 했어요?"

불쑥 내 앞에 튀어나와 길을 막던 하얀손이 이윽고 모자챙을 가볍게 들어올렸다. 얼굴을 가려주던 모자챙이 사라지자 금세 내 눈은 그와 마주칠 수 밖에 없었다. 난 속으로 대체 다들 나한테 왜그러냐며 울고 싶을 지경이였다. 부장선배님도 그렇고 길에서 만난 이 이상한 남자까지. 오늘이 무슨 날인가? 난 고개를 최대한 늘어뜨렸다.

"나 돈복씨 만날려고 계속 기다렸는데···."

"그...."

"네?"

"죄, 죄송합니다...."

바닥에 시선을 둔 채 사과의 인사를 전한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었다. 어찌됬든 이 남자를 피한 것은 맞으니 말이다. 난 고개를 늘어뜨리고서 그가 내 사과를 받아주길 기다렸다. 하지만 내게 돌아온 것은 모자위로 닿아오는 남자의 손바닥이였다.

"오늘은, 용돈 안필요해요?"

톡톡, 내 모자위를 가볍게 두들기는 남자의 손이 느껴졌다. 마치 아빠가 내 머릴 쓰다듬을 때의 느낌이였다. 난 그의 말에 고개를 까딱였다. 그러자 남자의 손이 모자 위에서 떨어지더니 밑에서 꼬물거리던 내 손을 감싸올렸다.

"에이, 필요하잖아요? 아침도 안 먹었으면서···."

그러고 보니 아침을 먹지 않았었다. 아까부터 쓰린 속이 그때문이였나. 그런데 왜 이 남자가 그걸 알고있지? 난 몰려드는 께림칙함에 한발자국, 두발자국 뒷걸음질을 쳤다. 남자의 손에 쥐인 손도 내빼려 애썼지만 굳게 잡힌 내 손은 꿈쩍하지 않았다. 난 내 손을 잡고서 미동도 않는 남자에게 간절히 말했다.

"···손, 손 좀 놔주실래요?"

"....."

그와 동시에 탁소리를 내며 떨어진 남자의 손은 왜인지 그와의 첫만남을 연상케 만들었다. 어제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난 데자뷰를 느끼며 어째서인지 굳어서 움직이지않는 남자를 슬쩍 보고는 재빨리 그 곳을 벗어나 집으로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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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2-23 13:44 | 조회 : 1,231 목록
작가의 말
nic23075521

올리는거 까먹엇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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