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상한 사람이 꼬여




정신이 이불에 녹아드는 듯 하니 나도 모르게 잠에 든 것 같았다. 위로 난 창문에서 빛이 쏟아져 내렸다. 난 눈을 찌르는 빛에 미간을 좁히며 상체를 일으켰다. 그렇게 한동안 이불위에 앉아만 있다가 시선을 내리니 반쯤 몸을 덮는 담요가 보였다. 아마 어머니께서 덮어주신 거겠지?

난 천천히 벽에 붙은 전자시계에 눈을 돌렸다. 나른함에 무거워진 눈꺼풀을 열심히 들어올리며 깜빡이는 전자시계를 찬찬히 훑었다. 8시... 43분.... 그것도 오전 8시 43분이였다. 잠깐, 동아리 9시까지랬는데! 난 파르륵 몸을 떨며 눈을 크게떴다. 전자시계는 [AM 8:43]을 띄우고서 깜빡이고 있었다. 허망한 마음에 난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사진동아리, 자신이 학교에서 든 동아리였다. 오늘은 동아리내에서 모여 신입생 환영회를 하는 날이였다.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는 도보로 20분은 걸렸다. 버스를 타도 애매한 거리이기도 하고 택시를 타기엔···. 난 초조한 손길로 모자를 주워들며 생각했다. 힐끔힐끔, 떨리는 눈동자는 자꾸만 정직히 흘러만가는 시계에게로 향했다. 잠결에 부스스해진 머리를 모자에 욱여넣으며 생각했다. 어쩔수 없지, 오늘 하루 죽을 것처럼 뛰자. 난 그렇게 굳게 마음을 먹고는 급히 신발을 신으며 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돈복아? 어디가니?"

상을 닦고 계시던 어머니가 급하게 신을 신으며 뛰쳐나온 날 보며 말해왔다. 뭘 그리 급히 나서냐는 듯 바라보는 어머니의 시선에 꺾어 신은 신발 뒤를 바로 피며 뻘쭘히 대답했다.

"동아리요. 오늘 신입생 환영회가 있어서···."

"아, 그 사진동아리."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시던 어머니가 유리문을 열고 나서려는 날 보며 말했다.

"돈복아 아침은 안먹고 가니?"

"밖에서 먹을게요,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잘다녀오렴."

난 서둘러 뛰기 시작했다. 사람들 사이로 뛰는 날 바라보는 시선들이 많아 얼굴을 붉혀야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신입생인 내가 환영회에 늦으면 다가올 시선들과 말들이 더 무서웠다.


···그렇게 죽자살자 달려온 탓에 난 신입생 환영회에 늦지 않을 수 있었다. 다만 숨을 헐떡이며 부실문을 열고 들어온 터라 선배님들과 아이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다. 난 속으로 눈물을 한바가지 흘리며 나와 같은 1학년 아이들이 앉아있는 테이블에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서 제일 늦게 온 사람이 나인 듯했다. 1학년 테이블에 놓인 텅 빈 의자는 한자리밖에 없었다.

"그럼 다 온거 맞지?"

앞 테이블에서 부장으로 보이는 선배님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해왔다.

"다 온것 같네. 일단 내 이름은 이진호고 사진동아리 부장을 맡고 있어. 아마 아는 애들도 몇명있을거라 생각하는 데···"

난 의자에 앉은 뒤 쭉 테이블에 숙이고만 있던 고개를 들어올렸다. 들려오는 목소리에 숙인 고개를 번뜩 들어올리자 말을 하시던 부장선배님과 눈이 딱 마주쳐버렸다. 왠지 부끄러워 시선을 살짝 돌리자 이번엔 부장 옆에 앉아 날 바라보는 선배님과···. 뭐지...고개를 들수가 없어... 난 다시 눈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그럼 왼쪽부터 자기소개 좀 해줄래?"

"아, 1학년 4반 류현지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부장선배님의 말에 왼쪽끝의 아이를 선두주자로 아이들은 간단한 자기소개들을 시작했다. 왼쪽부터 한명, 두명, 세명···. 짧고 간단한 소개들에 어느새 내 차례는 빠르게 다가왔다. 까맣게 속이 타오르는 듯 했지만 다른 아이들은 다한 소개를 내가 안할 수 는 없는 노릇이였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뻣뻣히 고개를 들고서 입을 뗐다.

"1학년 9반 김, 돈복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름을 말할 때에 잠시 혀가 꼬이긴 했지만 목소리는 떨리지 않은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고개를 숙이며 소개를 끝마치자 선배님들이 옅게 웃는게 보였다. 덕분에 바짝 달아올라있었던 긴장감이 스르르 풀어졌다. 나를 끝으로 모든 1학년들의 자기소개가 끝나자 다시 부장선배님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우리들에게 말했다.

"자기소개도 다 끝난 것 같고, 우리 기념사진이나 한방찍을까?"

"이야~ 우리동아리 전통이지 기념사진 찍는거"

"작년 선배들도 이건 빠지지않고 해야한다고 했었잖아"

부장선배님의 말에 앞테이블에 앉은 선배님들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오늘은 급하게 나오느라 머리도 정리못했는데... 난 손을 들어 모자챙을 잡으며 생각했다.

"일단 애들아 이거 뽑아"

부장선배님은 바닥에서 작은박스 두 개를 집어 오시더니 이렇게 말했다

"1학년은 왼쪽, 2학년은 오른쪽을 뽑으면 돼"

상자 안에는 접힌 종이들이 들어 있었다. 우린 선배님의 말에 속속히 일어나 상자 안의 종이를 한개씩 빼내어 펼쳤다. 난 거친 감촉의 종이를 문지르며 그 안에 적힌 숫자를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종이 위로는 굵직히 1이라고 그어져 있었다.

"다들 종이 뽑았지? 이제 우린 1학년 두명, 2학년 두명 이렇게 총 4명씩 3쌍의 팀을 짤거야. 각자 똑같은 번호끼리 붙어봐."

부장선배님의 말이 끝나자마자 하나의 테이블을 중심으로 여러개의 목소리들이 섞여들어갔다.

"3번인 후배님들 이리로 와!"

"1번 뽑은 님들은 여기로 오세요~"

"2번은 여기야 애들아-!"

선배님들은 한 손에 번호가 적힌 종이를 흔들고서 우리들을 인도하셨다. 난 곧장 1번이 적힌 종이를 흔들며 부르짖는 선배님의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선배님의 앞으로 다가간 나는 펼친 종이를 내밀며 말했다.

"저 1번···."

그에 고개를 돌리며 날 바라본 선배님이 환히 웃음을 매달고서 내 팔을 잡아끌었다.

"1번 다 모였다!"

선배님이 이끈 테이블에는 부장선배님과 또래로 보이는 까만머리의 남자애가 앉아있었다. 여기에 앉으라며 남자애의 옆자리에 날 앉힌 선배님이 곧장 테이블을 탕탕치며 말했다.

"우린 이제 다른 팀한테 지지 않도록 컨셉을 정해야 돼!"

컨셉을 정해야한다며 다들 좋은 생각있으면 말해달라는 선배님의 말에 나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무슨 컨셉? 기념사진에도 컨셉이 있던가?

"...컨셉?"

"이를테면 막 백설공주같은거?"

작은 목소리로 고민하던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부장선배님이 내게 눈을 맞춰오며 말했다. 백설공주? 난 그 뜬금없는 대답에 여전히 떨떠름한 기분을 지우지 못한 채 눈을 깜빡였다.

"그러니까···. 이런거."

"올~ 우리부장 대단해~"

부장선배님은 걸치고 있던 잠바를 벗어 허리에 묶고선 그 것을 드레스 마냥 살짝 들어올려 보였다. 테이블을 긁으며 컨셉을 생각하시던 선배님이 백설공주를 재현하는 부장선배님을 보며 마구 칭찬을 날리더니 이렇게 외치셨다.

"맞아! 솔선수범해서 우리부장이 보여줬네. 기념사진은 이런식으로 찍으면 돼, 너무 딱딱하게 찍으면 재미없잖아?"

"야, 우리 빨리정해야돼"

방긋방긋 웃으며 말해오는 선배님의 말을 막는 것은 부장선배님의 단호한 한마디였다. 그러고보니 주위에는 이미 컨셉을 잡고 포즈를 취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였다. 난 최대한 머리를 굴렸다. 하나라도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 좋지않을까? 하며.

"파··· 파워레인저같은···."

건 어떨까요.... 난 입을 열자마자 닿아오는 시선에 뒷말을 채 이어하지 못했다. 막상 말을 꺼내보니 좀 아닌가 싶었다. 그래도 생각나는 것이 그 것밖에 없었는 데 어떡하겠는가. 난 입을 우물거리며 눈을 굴렸다. 이, 이상한가.

"오, 좋은데! 우리 그럼 그걸로 할까?"

내 말에 감탄사를 내지르며 말을 해오는 선배님에 화들짝 놀라 난 입을 살짝벌려야했다. 아니, 이상하면 안해도 괜찮은데요... 두손을 살살 흔들며 그렇게 말을 하려던 찰나였다.

"난 레드."

"전 옐로우할게요."

앞에 앉은 부장선배와 내 옆의 까만머리 또래아이가 역할을 정해왔다. 난 자연스레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덤덤히 역할을 정하며 포즈를 연습하는 그들은 너무나도 진지해보였다. 난 그저 바라만보며 두 뺨을 손으로 꾹꾹눌러야만 했다. 솔직히 내가 낸 아이디어였지만 포즈가 너무 부끄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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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2-21 18:29 | 조회 : 1,252 목록
작가의 말
nic23075521

난 핑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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