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상한 사람이 꼬여





난 꼬깃한 지폐를 곱게 접어 내 바지주머니 속에 쑤셔넣었다. 오늘만해도 받은 용돈이 10만원은 훌쩍 넘는 것 같았다. 나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또···.'

바닥의 타일을 밟아오는 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려왔다. 용돈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뒤로는 또 다른 누군가가 따라붙고 있었다. 그에 나는 지금 당장 바닥을 박차고 집으로 뛰쳐들어가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내게 그런 배짱따위는 한참 오래 전에 사라져버렸다.

사람들은 내가 아무리 도망쳐도 따라붙었다. 그것도 재밌다는 듯 하하호호웃음을 휘날리며 말이다. 그렇게 나만 슬픈 도주가 끝이 나면 사람들은 너무 맡아 이제는 정겨운 꼬릿한 냄새를 다시금 내 손에 쥐어 준다···. 바들바들 눈꼬리가 떨려왔다. 언제나 괴로운 회상은 눈꼬리를 떨리게 하는 법이다. 난 눈을 깜빡이며 떨리는 눈꼬리를 진정시키려 애썼다. 난 흐릿한 눈으로 그 사람이 내게 말을 걸기를 기다렸다.

"....?"

그렇게 걷기를 십여분, 어느새 돈복이네냠냠이라는 큼지막한 네온사인을 퍼뜨리는 우리 음식점에 가까워 지고 있었다.

'혹시 날 따라온 게 아닌가?'
'그저 우리 집에 밥먹으러 온 걸지도...'

난 진지하게 이 일에 대해 고찰했다. 내게 용돈을 주러온 사람이 아닌 정말 추리대로 그저 밥 먹으러 온 사람이라면···. 난 얼굴이 홧홧 타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내게 용돈을 주며 쫓아오니 알게모르게 자만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자괴감에 빠져있을 때였다. 뒤에서 날 부르는 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 돈복씨?"

"김돈복씨 맞으신가요?" 그 목소리는 내 이름을 재차 언급해왔다. 난 그에 살짝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다행히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구나, 하며 말이다.

"네..."

난 작게 긍정의 말을 내뱉으며 뒤를 돌았다. 그리고 난 혀를 깨물어야했다. 깔끔히 정돈된 옅은 황갈색의 머리와 비싸보이는 까만 정장을 단정히 차려입은 그 남자는 얼굴의 반을 가리는 선글라스를 얼굴에 걸친채 날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을 가리는 선글라스에도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미남의 기운에 한발짝 뒷걸음질친 나는 입을 달싹였다. 그런데 까만 정장이라니, 조금 무서운걸....

"호···, 대구의 명물이라더니 정말이군···."

왠지 듣지 말아야 할 말을 들은 것 같았다. ....내 착각이겠지? 난 애써 모른척 데굴데굴 눈을 굴렸다.

"김돈복씨, 용돈 줄까요?"

난 언제나 그랬듯이 열리지 않는 입술을 마주 겹친 채 고개를 까딱였다. 등 뒤로 식은 땀이 흐르는 듯 했다. 왜인지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라 더욱 입술은 굳게만 닫혀갔다.

"흐응-."

즐겁다는 듯 코웃음을 터뜨리던 그 남자는 이윽고 내 앞으로 손가락을 내밀었다. 대롱대롱 하얀 손가락사이로 고정된 지폐가 바람에 흔들렸다. 난 두손을 뻗어 그 지폐를 잡아들었다. 하지만 잡아들었을 뿐, 하얀 손가락에 고정된 지폐는 빠져나오지 않았다... 혹시 손에 힘을 주고있나요? 난 빠지지 않는 지폐에 한번, 그 남자에게 한번 시선을 옮겼다. 놀리시는 건가....

힐끗 눈을 그에게로 올리자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지폐가 내 손에 쥐어졌다. 순간 힘을 뺀 하얀 손가락에 의문을 표하던 찰나였다. 앞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난 깨달았다. 이 사람이 날 놀리고 있구나, 울적함에 축축 어깨가 쳐지고 있었다.

조물조물 두 손에 들린 지폐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개미만한 소리로 감사인사를 전한 나는 서둘러 몸을 돌렸다. 몇발자국만 더 가면 우리 집이였다. 난 손에 쥔 지폐를 주머니에 넣지도 못한 채 걸음을 빨리했다.

"아────."

뒤에서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하지만, 못들은 걸로···.


짤랑-.

유리문에 달린 종이 그 존재를 알려왔다.

"돈복이 왔니-?"

"어머, 대구의 명물아니야!"

"귀여워라~"

쟁반을 들고서 내게 달려오는 어머니로 시작해서 식사를 하고 계시던 우리 음식점 단골분들과 몇몇의 손님들이 반갑다며 웃어왔다. 난 그에 뻘쭘히 "안녕하세요..."하고 말할 뿐이였다.

"오늘도 용돈 많이 받았나보구나?"

내 왼손에는 아까 그 이상한 남자에게서 받은 지폐가 쥐어져있었다. 그걸 보았는 지 어머니는 손에 든 쟁반으로 슬쩍 입을 가리며 호호, 웃어왔다.

"네..."

오늘따라 많이 지치는 느낌이였다. 나는 눈꼬리를 늘어뜨리며 카운터의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카운터의 안쪽에 위치해있는 문은 방으로 가는 문이였다. 우리는 음식점 안에 작은 방을 만들어 그곳을 집으로 만들었다. 처음에는 음식점을 세우고 또 집을 구하는 것이 힘들어 그런 것이였지만, 음식점이 대성한 지금에야 그저 출근하기 편해서라는 단순한 이유가 붙어버렸다.


철컥, 카운터의 안쪽에 위치해 있는 문고리를 잡아돌리자 안락한 공간이 보여왔다. 여느 다른 집보다는 현저히 작은 방이지만, 난 이 곳이 좋았다. 특히 잠에 들기전 어머니와 아버지가 내 배를 도닥이는 것이며 눈을 감는 것은 정말 따뜻한 일이였다.

"흐아아──."

난 곧장 신발을 벗고는 방바닥에 깔린 이불 위로 늘어졌다. 폭신한 이불에 잠자코 몸을 맡기니 눈이 가물가물 닫혀오는 것 같았다.


.
.
.




"어머나, 여보! 우리 돈복이가 많이 피곤했나봐요."

저녁 10시, 간판의 네온사인을 끄고 유리문을 잠구던 김돈복의 아버지 김정돈은 방 안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놀라 하던 일을 놓고 방문을 열었다.

"돈복이가?"

열린 문 사이로 이불 위에 누워 새근새근 잠에 든 돈복이가 보였다. 얇은 담요를 끌어 돈복이의 몸 위로 얹던 김돈복의 어머니 정지유가 고개를 들어 방문을 연 그 이를 바라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숨을 쉴때마다 흔들리는 까만 머리카락과 속눈썹, 김돈복은 빚에 허덕이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부부에게 내려온 복덩이였다. 정지유와 김정돈, 팔불출 부부는 생각했다.


돈복이가 초등학교 3학년, 소풍을 떠났을때였다. 우리는 아이가 떠나기 전 만화캐릭터가 그려진 작은 동전지갑에 500원짜리들을 넣어주었다. 500원들은 우리 부부가 돈복이에게 주는 용돈이였다. 명색이 소풍인데, 맛난 것들도 사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유치원 버스에 오르는 작은 돈복이의 뒷통수를 보며 잔잔히 웃었다.

···문제는 소풍을 다녀온 돈복이의 가방 속이였다. 하회탈, 가락엿, 소 조각상···. 그리고 곳곳이 끼어있는 만원짜리의 지폐장들이 보였다. 우리는 눈을 크게뜨고 돈복이를 돌아보았다. 돈복이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소풍을 간 그 곳에서 사람들이 내게 용돈으로 주었다며 말해왔다. 큰 잘못을 했다는 듯 입을 우물거리던 돈복이가 돌연 고개를 푹, 숙였다. 우리는 생각했다. 분명 돈복이의 치명적인 귀여움에 빠져든 사람들이 용돈을 주었다고 말이다.

그 날이 있고 난 후 돈복이는 밖을 나설때마다, 용돈을 받아왔다.

"정말···, 전 돈복이가 제 배에서 난 것이 믿기지 않아요."

"어떻게 이런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나올 수 있죠?" 정지유는 아들 옆에 누워 그의 배를 도닥이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김정돈 또한 동감이라는 듯 잘게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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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2-20 12:21 | 조회 : 1,365 목록
작가의 말
nic23075521

풱 풱 풱 의외로 댓글이 달렷자나? 그래도 기대해지마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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