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 상시가 傷時歌

주제관련 발언을 마친 개조씨가 진행자에게 마무리 발언겸 토론 주제와 관련없는 개인적 발언의 기회를 달라고 요청하고 진행자는 그것을 받아 들인다.

개조씨 -
지금 이자리에 함께하고 계신 분들과 국민 여러분께 제가 이기회를 통해서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금년에 치뤄질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결심이 지금에서야 비로서 섰습니다.

사실 그동안 저는 부모와도 같은 나라와 하늘과도 같은 이땅의 삶의 터전에 감사만 할 수는 없었습니다.

만족함 보다는 충족되지 않는 것들에 대한 갈증이 더 컸기 때문 입니다.

그렇다고 하늘같은 나라를 위해서 제가 무엇을 해야만 한다는 생각도 하기는 곤란 했었습니다.

제가 처한 삶의 현실은 땅 만큼이나 먼 곳이였기에 그곳에서 바라보는 하늘의 일들은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라 여겨졌던 것이죠.

그러나 오늘 이시간을 통해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어떤 일들은 멀리서 보아야만 잘 보이고 그 먼곳에서 보내는 신호를 따라야만 제대로 일을 할 수 있곤 합니다.

바로 정치가 그런일들 중의 하나 일듯 합니다.

정치 일선에 계신분들이 일하시기 좋도록 먼곳에 거하는 저희 서민들이 신호를 좀 드려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다가오는 대선은 국가 운명을 이끌어낼 중차대한 행사인 만큼, 그 기간동안 제가 여러 국민들과 함께 정치 일선에 계신 분들에게 열심히 신호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골개조씨는 이것으로 대선출마 선언을 하게된 셈이다.
사전에 출마 결심을 굳혔던 것이 아니였지만 토론 참여중에 그 결심을 하게 되었다.

토론을 마치고 개조씨와 아들 때려씨가 집에 도착했을때는 이미 전국에서 전화가 쇄도하고 있었다.

오랜세월 전국을 떠돌며 공사를 해오면서 쌓여온 지인들 이였다.

그들은 한결같이 선거 출마를 지지한다며서 자신들의 지역에서 개조씨를 위해서 선거운동을 하겠다는 약속들을 주고 있었다.

다음날이 되자 신문과 방송들은 골개조씨 지지를 선언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하기 시작한다.


신문기자 -
골개조씨의 대선 출마선언을 지지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죠.

경기도민 -
우리 서민들이 정치는 잘 모르지만 골개조씨 말대로 당리당약에 휘둘리지 않고 정치가 이루어져야 국민들 삶의 고단함이 덜어진다는 것쯤은 알기 때문입니다.

뒤에있던 중학생이 지나가며 장난치듯 큰 소리로 말한다.

중학생 -
당권이 뭣이 중헌디~? 뭣이 중혀<~~??


방송 리포터 -
골개조씨를 아신다고 말씀 하셨는데요,, 어떤 분이신지 말씀해 주실수 있겠습니까?

부산 영도구민 -
아, 그 양반이 5년전에 저희 상가건물을 리모델링 해줬었거든예,, 일은 딱부러지게 하면서도 가격도 매우 합리적이였던거라예,, 노가다로 오랜세월 잔뼈가 굵어진 사람치곤 잔머리도 굴릴지 모르고,, 아, 모든 면에서 쪼깨 양반이라는 것쯤은 알았지만서도,, 하하~ 사람이 그정도로 그렇게 깊은 뜻이 있꼬,, 나랏일까장 걱정하는지는 몰랐네예,, 하하하 아, 마 저정도면 정치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될지 안될지는 모르겠지만서도 서민들을 대표해서 하는데까지는 할 수 있도록 서민들이 도와야지예 !!


아들 때려씨는 소셜 네트웍에 '국가 리모델링 조합' 이라는 페이지를 만들어서 헤드라인을 치고 있다.

" 국가의 리모델링은 국민들의 참여로만이 가능합니다."

전국에 있는 서민들의 일상에서 가장 친근한 단어중의 하나인 '조합' 그는 정당 정치를 대응하는 국민들의 단체를 '조합' 으로 명명한다.

그리고는 타임라인에 'Philosopher king' 의 ID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이 '국가 리모델링 조합' 을 활성화 시키기 위해서 베일에 쌓인채 재야의 철학자로 활동중이던 그 Philosopher King 이 그 가면을 벗고 세상에 나가는 순간을 맞았다.

조선시대에 인조가 북인들을 상대로 반정을 일으킨 서인들에 의해서 왕권을 차지하고 난 후에도 일등 공신들간의 암투에서 밀려난 이괄에 의해서 난을 겪어야만 했었고 이사건으로 인하여 인조는 한양 도성을 버리고 공주까지 피난을 갔었야만 했다고 합니다.

1625년 6월 조선의 16대 왕인 인조3년때 도성인 한양에서 떠돌던 작자미상의 노래속에서 이런 반복되는 난투극을 바라보던 당시의 민심을 보여주듯 '상시가' 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상시가 傷時歌
- 그릇된 시대의 모습에 마음 아파하는 노래

아 ,, 너희 훈신들이여
잘난 척하지 마라
그들의 집에 살고
그들의 토지를 차지하고
그들의 말을 타며
또 다시 그들의 일을 행하니
당신들과 그들이
돌아보건대 무엇이 다른가


과거 조선시대의 붕당사를 보면 지금의 정당정치를 보는듯 합니다.

훈구와 사림 그리고 동인과 서인 또한 북인과 남인들 서로간의 씨를 말리는 치열하고도 잔인한 기득권 다툼이 노랫말에서 보여주듯, 당시에도 백성들의 삶에 기여하는 바가 전혀없는 그들만의 리그(세상) 였던가 봅니다.

저는 대학진학 대신 아버지를 도와 일을 시작 했었고 저의 아버지 골개조씨도 고졸학력자 이십니다.

저희 부자는 언제부턴가 정치하시는 분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며 고민하기 시작 했었습니다.

대체로 정치하시는 분들이 공부도 많이 하셨고 사회나 경제적인 활동도 두루두루 요직에서 왕성하게 활동들을 하신 분들임에도 불구하고 공사 현장에서나 가끔 볼듯한 막말과 우격다짐을 하고 논리적이거나 합리적이지도 않은 말들을 하며 또한 그것을 집단으로 행동들을 한다든지 그리고 그런한 일들을 몇차례고 반복해 내는 뻔뻔함 같은 것들의 원인은 무엇일까,, 하고 말입니다.

그런 고민과 대화속에서 우리는 그러한 현상들이 오랜 세월동안 자리 잡아온 벼슬아치들의 관습과 문화가 되어 있었음을 느끼곤 했습니다.

잘못 자리잡고 있었던 문화들이 이토록 오랜동안 지속되어질 수 있었던 것은 그 세월들을 같이해온 교육들이 제 구실을 못했왔다는 증거이기도 한 셈일 것입니다.

군자의 도와 벼슬아치의 사명을 책으로부터 눈과 혀로 읽어내어 머리속에 담아 두어도 이권에 눈이 멀어 가슴에서 타인을 돌아볼 마음에 여유가 없는 인성이 되었다면 그 교육은 알맹이 없는 껍데기와 다름 없었다는 것이겠죠.

그리고 이러한 허울뿐인 교육이 사람들간의 몰이해와 부족한 배려를 조장하고 고착화 시켜서 사회내의 관습과 제도에까지 그 영향이 미치기에 비단 벼슬아치들의 인성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소셜 네트웍 활동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체험하고 느낀 이 시대의 보편적 인성을 공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필명으로 활동하는 계정으로 친구가 400명이 넘어서면서부터 그 친구분들 중에서 사망하는 분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더군요.

병으로 돌아가시는 분들도 계시고 뜻밖의 사고로 운명을 달리했던 분들도 계십니다.

그리곤 그 돌아가신 분들의 네트웍을 가끔씩 살펴 보곤 했는데요,,
대부분의 분들이 슬픔이나 조의는 일시적이고 가족들의 상실감과는 달리 비교적 빨리 행복하고 밝은 포스팅이 올라오곤 했습니다.

소셜 네트웍 활동을 하시는 분들중에는 타인의 비극이나 슬픔을 포스팅 하면서도 곧이어 본인의 욕구가 만발한 포스팅을 올리는 분들도 있구요.

네트웍의 특성상 각종 뉴스들이 링크되어 올라 옵니다만, 뉴스란 대부분이 사건과 사고들인데 그것들을 올리는 의도가 의아한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저도 지금은 적지 않은 숫자의 친구와 팔로워가 있기 때문에 겪게되는 애로점이 있습니다만, 다행이 저는 포스팅이 개인적인 내용이 아니고 다루는 이야기 무겁고 심각한 경향이라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다만 저보다 더 많은 친구와 팔루워를 가지고 활동하시는 분들이 어쩌면 그렇게도 밝고 활기찰수가 있는지 놀라곤 합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통신 네트웍의 발달로 사람과 사람들의 사이가 가까워지고 빨라지기는 했지만, 그 가까워진 거리와 속도 만큼이나 타인들의 고통과 아픔들도 그들의 주변 가까운 곳에 있음을 망각하고 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그 뿐만은 아니죠,,
이익추구라는 황금율을 쫓기 위하여 변질되어야만 모든것들, 즉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심지어는 인간관계와 가족관계 까지도,,
그러한 모든것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소셜 네트웍 활동들로 변형을 겪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을 의식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분들중에는 타인들을 고려해서 자신들의 감정을 숨겨야 하는 상황에서 매우 곤혹감을 느낄 것입니다.

이러한 곤혹감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는 개인의 삶이 드러냄과 감춤의 적절함 그리고 시점과 상황에 걸맞는 바람봄(욕구)에 훈련될 필요가 있습니다.

- 여기서 언급한 훈련은 인간이 가지게 되는 모든 욕구와 욕망들을 어린시절부터 다루어 보도록 하는 과정들 이기에 육체적 연령과 사회적 상황에 의해서 발생하는 욕구와 욕망들을 인내나 억압 혹은 희생같은 것들을 통해서 스트레스를 받게 하거나 욕구 불충족으로 인한 불만이 쌓여서 불행함을 느끼고 의욕이 저하되는 것과 같은 부작용을 유발하기 보다는 보다 적절하고 합리적이며 공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욕구와 욕망을 쏟아 낼 수 있도록 안내해주고 연습 시키는 과정. 그러나 사회적인 구조와 기반이 뒷받침 해주지 않으면 이루어 질 수 없는 교육 훈련


제가 이와같이 소셜 활동을 통해서 새삼 다시 깨달은 것은 인간도 특별한 이유나 동기가 주어지지 않는한 자신의 욕구와 욕망에 집중하느라 타자들의 고통을 돌아보지 못하는 동물에 불과할 수 있다는 사실 입니다.

"인간은 이기적이든 이타적이든, 충실하든 악의적이든 자신의 만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살아갈 뿐이다." - 게리 베커

인간이 욕구와 욕망에 집중하면 할수록 타인이 갖고 있는 욕구와 욕망으로부터는 눈과 마음이 멀어지는 반비례 속성을 말한 것으로 자신의 성취에 몰두하는 활동의 증가는 타인과의 관계에 틈을 넓히는 계기로 작용할 수밖에 없음을 경고하는 말로 받아들이면 좋을듯 합니다.

경제학에서 무시 되어왔던 인간들의 활동과 그들이 맺는 관계들을 분석했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게리 베커가 했다는 이 말이 찬성하고 싶지는 않아도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 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이윤추구를 위해서 모인 이익집단은 물론이거니와 가족같은 혈연 관계나 사회의 공의를 위해서 모인 구성원들 사이에서도 발생하는 현상 임으로 동물적 근성과도 같은 그 본능을 걸러 내어줄 훈련을 바로 교육과 재교육의 과정속에 사회가 도처에 마련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교육은 가정에서 시작하여 교육기관을 거치며 사회속에서도 끊임없이 정보제공과 제교육의 형태로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이고 그것이 적절한 형태로 충분히 이루어 졌을때 비로서 그 문화 가운데에서 결실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정부 차원의 의지와 체계적인 지원이 없이는 기대할 수 없는 일들 입니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교육은 100년지 대계" 라고들 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시간이 걸리는 일들을 보다 빠른 시간내에 사회내의 각기 다른 분야와 다양한 계층들로부터 동시 다발적으로 이루어 내기 위해서는 그것에 걸맞도록 새롭고도 효율적인 국가 운영 시스템이 절실하게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토록 실용적이고도 효율적인 새로운 국가 운영체제의 필요성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서 급격한 자본주의 금권화에 밀려서 뒷전이 되었던 전인격적 교육의 부재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주요 분야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가를 짚어볼까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과학의 시대라고 할만큼 과학에 대한 의존도나 기대 심리가 매우 높습니다.

어떠한 사실을 언급할때 그것이 과학적인 근거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하면 그것에 상당한 신뢰를 주는 경향이 있죠.

이러한 성향의 증가는 과거 인류가 종교에 부여했던 신뢰와 권한에 비교될 수 있을 정도 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토록 인류가 과학에 의존하고 과학의 힘으로 인류 문명에 커다란 변화를 이끌어 내려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사회속 수많은 사람들의 하루하루의 삶은 매우 비과학적이고 불합리한 상황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과학은 인간적 활동이고 사회적 활동이다." 라는 라부아지에의 말처럼만 과학자들이 과학적 활동을 통해서 인간들의 삶과 그들의 사회적 관계에 개입하고 영향을 끼치고자 노렸했다면 인류사회는 보다 나아질 수 있었으려나 생각해 봅니다만,
대부분의 과학 활동들이 이윤추구를 극대화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한 지금의 현실에서는 많이 늦은감이 있습니다.

시장 경제속에서 펼쳐지는 무한 경쟁에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어쩔수 없는 선택임을 간주한다 하더라도,
눈부신 과학의 업적아래 진보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는 인류가 정작 그들의 일상에는 그런한 지식과 노하우를 적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를들면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다양한 동물과 식물들의 종의 교배에 관여해 왔으며 여러 새로운 종을 만들어 왔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하면 보다 사회성이 있는 사람을 태어나게 하고 어떤 교육과 훈련으로 범죄율을 낮출수 있는지 알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 흉악범죄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찾아낼 수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재난과 재앙은 예측이 가능하고 그에따른 예방이 가능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에 실험되거나 관찰되어진 과학적 지식가 기술이 아니더라도 오랜 인류의 삶 속에서 다양한 사실과 경험의 축적으로 인하여 우리 인류는 얼마든지 지금보다 훨씬 안락하고 안전하며 합리적으로 살아 갈수가 있습니다.

인간이 삶속에서 고통받는 가장 커다란 이유는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없어서가 아니였습니다.

원만하지 않은 가족관계, 뜻대로 되지 않는 인간 관계들로부터 그 고통은 시작 되곤 합니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인류가 수천년동안 가장 많이 해온 일이 인간관계이고 가족관계 입니다.

그 어떤 분야 보다도 가장 많은 노하우와 심오한 기술 그리고 비법들이 즐비해야 하는 것이 마땅 합니다.

이것이 인류가 안고있는 가장 심각한 적폐이고 모순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 인류가 수없이 반복하고 있는 세대간의 교체 속에서 축척된 노하우와 비법을 상속받지 못하게 하였던 것일까요?

그것은 각각의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타인들의 삶과 그들의 고통을 바라봄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무관심과 어느 정도의 냉소로 일관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정치든 경제든, 종교든 과학이든, 예술이든 철학이든,, 심지어는 가족간에도 사회의 모든 분야에 만연하기 때문 입니다.

여러분 돌이켜 생각해 봅시다.
우리 각자각자 한 사람이 과연 누구의 행복에 관여하려 하는지를 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가족관계 범위를 넘어서지 못합니다.

심지어는 아내나 남편간의 행복에 있어서도 서로간에 일상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자의든 타의든 서로의 행복에 깊이 관련되어 있습니다만,
자식들의 경우로만 가더라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도리를 다할뿐 그들의 삶의 행복에 관여해내지 못합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자신의 자식들과 후손들이 살아가면서 반드시 행복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겠죠,
그러면 그는 자신이 갖고있는 모든 유산은 물론이겠거니와 자신이 깨달은 인생의 노하우와 비법들을 전해주려고 애썼을 것입니다.

바로 행복한 삶을 살기위한 그 비법들을 말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로지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 행복의 비법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서로간의 행복은 각자가 알아서 할 일이지 내가 타인의 행복을 책임져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문화적으로도 약간의 차이와 그 영향이 있어 보입니다.

예를들면 서구문명은 사람간 서로의 감정과 감성에 더 관심갖고 관여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감정과 기분을 살펴주는 그들의 언어문화와 대조되는 우리의 언어 문화를 보면 알수 있겠죠.

그 덕분에 그들의 행복지수는 우리보다 높은편 입니다.

타인의 행복에 관여하지 않는 사람과 가족이 되면 불행한 가족이 될 것입니다.

타인의 행복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의 기업에서 일을 한다면 그 직장생활은 돈을 벌기위한 활동일뿐 고달픈 시간이 될 것입니다.

타인의 행복에 특별한 의무감이 없는 사람이 국가의 운영에 관여한다며 훨씬 더 끔찍할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와같은 현상들이 오랜세월 개선됨이 반복적으로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교육의 부재와 부조리한 관습을 수정해 내지 못하는 국가의 운영체제에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합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의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으로서 저희 가족이 국가의 체제 정비에 기여하고자 하시는 가장 골개조씨의 행보를 지원하고자 합니다.

부디 많은 분들이 이 '국가 리모델링 조합' 에 지지해 주시고 동참하시어 역사에 길이 남을 국가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함께 이루어내시길 간절히 소망하는 바입니다.


Philosopher King 드림



골때려씨는 '국가 리모델링 조합' 을 홍보하는 포스팅을 1만여 팔로워들에게 전한다.

개조씨와 때려씨는 전국에서 다양한 영세 상인들의 재건축과 리모델링 사업건에 시공자로 참여하여서 거품없는 공사비와 성실시공으로 매우 좋은 평판과 더불어 많은 인맥을 얻어 왔었다.

지금 그들이 전국 각처의 선거 지부가 되어서 개조씨의 오프라인 선거운동을 그들 스스로 주도해가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개조씨의 공사에 참여해오던 각파트의(미장, 목수, 페인트, 타일, 공구리, 도배 등등) 오야지들도 당분간은 일손을 접고 규합이 가능한 일꾼들과 함께 선거 운동에 동참 하겠다는 의지들을 보여주고 있다.

아직은 세식구가 쏟아져오는 전화를 받거나 각종 인터뷰나 만남 요청들로부터 일정을 짜맞추기도 혼란스러운데 외부적인 대외 선거운동은 벌써부터 그들 스스로 체계를 잡아나가며 조직적인 활동을 꿈틀대기 시작한다.

사무직을 맡아줄 인원들의 필요성을 고려해서 때려씨가 온라인 활동으로부터 자원자들을 규합해서 오프라인 미팅을 계획한다.

베일을 벗은 Philosopher King 에 대한 관심과 커다란 화제가 되어있는 개조씨의 대선 출마가 씨너지 효과를 내어서 많은 이들이 지원에 나섰다.

그들중에서 1차로 모일 인원들의 이름을 추려본 때려씨가 그들중 한명의 이름에서 시선이 멈춘다.

이름 - 나사랑 부산의 P대학에서 종교학과 4학년에 재학중, 자칭 때려씨의 팬으로서 Philosopher King 이라는 필명을 제안해 주었던 여학생, 채식주의자로 환경운동 단체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때려씨는 자신에게 많은 관심을 보여 주었었고 자신의 사상에 전적으로 동조를 보내왔던 그 사람의 이름에서 잠시 기대감을 다독이고 있다.

때려씨도 그 동안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나사랑씨의 포스팅을 지켜보아 왔던 참이였었고 이번 기회를 통해서 같이 일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상승중이던 그녀에 대한 기대감은 운명이 아닐까 하는 상상으로 자꾸 이어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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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8-23 10:37 | 조회 : 768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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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63335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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