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슬픔이 파도가 되어 밀려 올라오다. 08

제로이드는 세즈의 의아한 눈에 자신의 눈을 맞춰주었다. 어리둥절하는 세즈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이 길은 피의 길이지.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만들기 위해 죽었다. 하지만 이 길을 만드려 했던 사람은 아주 나쁜 사람이었다. 많은 사람들을 갈아 넣은 주제에 이 길을 숨기기 위해 모두를 죽였지.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서.”

제로이드는 고개를 잠시 유골 쪽으로 돌렸다. 끔찍한 광경이었다.

“이들은 피해자들이다. 죽어서도 외로울 사람들이지. 이 사람들이 무서울 게 아니다. 정말 무서운 건 어설프게 군림하려고 책임을 버린 전 성주다.”

세즈는 아직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건 확실했다. 제로이드, 아버지는 분명 자신의 무서움을 덜어주기 위해 말을 꺼낸 것이라고. 그리고 분명, 그 다음부터 이 해골들이 무섭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늘 하던 대로 벽을 더듬으면 숨겨진 길이 하나 더 나왔다. 예전 성주의 집은 이미 다 망가지고 폐허만 남아있었는데, 그 벽 사이에 조그만 공간이 있다는 건 아무도 몰랐다. 세즈는 이쪽 출구를 조심스레 열었다.

비밀통로 중 아무런 장치가 없는 문은 여기뿐. 양 옆에는 사람이 아닌 조그만 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곳이다. 세즈는 폐허 사이의 골목을 돌아 시장 쪽으로 자연스럽게 엮여 들어갈 수 있었다. 사야할 물건은 꽤나 많았기에, 지금부터는 꽤 재빠르게 움직여야했다.

물건을 사고 바구니가 꽉 차면, 비밀 문을 통해 다시 오두막에 들렀다. 비밀 통로가 조금 더 넓었다면 수레도 끌고 올 법 했지만, 생각보다 울퉁불퉁하고 경사가 불규칙 해 수레를 끌기 최악이었기에 대신 몸을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처음엔 거의 모든 물건을 한 곳에서 구매했는데, 자주 ‘조그만 소년이 대량으로 물건을 구매한다.’는 소문이 돌아서 조금씩 분산하기 시작했다. 언제나 상인에게는 자신이 구매력은 있으되, 그 구매력이 넘친다는 사실은 숨겨야 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제로이드 플로린이 처음에 이리저리 다른 곳에서 사던 사실을 그렇게 한 번 몸으로 깨닫고 나서야 세즈도 번거로운 방식을 택했다. 편한 게 마냥 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니까.

그래서일까, 늘 해가 느지막이 산 반대편으로 넘어갈 만한 때가 되어서야 컬틴 산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이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세즈 자신의 개인적인 일도 두어 가지 정도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아주 가끔 생기는 소소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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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08-31 09:34 | 조회 : 616 목록
작가의 말
헤르닌

하아아, 어렵다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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