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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비가 세차게 내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나는 분명 바닥에 누워있었는데 왜 침대에 누워있는지 영문을 가질 때쯤 문이 열리며 어둠 속에서 빛이 들어왔다. 그 빛에 몸을 일으켰다.

"구원 씨, 일어났어요? 빨리 나와서 뭐 좀 먹어요."

저 사람이 여기 왜 있지. 저 사람을 내보내야 한다. 더 이상 흔들리지 않으려면 그와 마주하지 않아야 한다. 굳게 마음먹었었으니까.

"못 일어나겠어. 안아줘, 빨리."

그전에 조금만, 아주 조금만 행복할게.


현윤석에게 안겨 밖으로 나와 식탁의자에 앉았다. 식탁에는 하얀 죽이 있었고 마주 앉은 그를 바라보자 어서 먹으라는 듯이 날 쳐다보았다. 먹고 싶었지만 힘이 없는 몸은 팔을 들기도 힘들었다.

"먹여줄까요?"

어찌할 바를 모르는 자신을 유심히 쳐다보더니 내게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부끄러움에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는 미소를 작게 지으며 수저를 들었다. 한 숟가락 뜨고 빈속에는 원래 죽 먹는 거라며 호호- 부는 모습이 귀여웠고 제법 우스웠다. 피식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이 윤석의 시선을 불러왔고 크게 터진 웃음은 윤석이 저에게 말을 걸게 했다.

"왜요? 저한테 뭐 묻었어요?"

안 그래도 큰 눈이 더 커지고 자신의 머리를 긁적이며 날 쳐다보았다. 얼마 남지 않았다는 불안감을 애써 숨기려 웃었다.

"저 배고픈데 빨리 주세요. 아-"

소리 내며 입을 벌리자 그도 기분 좋은 듯한 웃음소리를 내며 입에 수저를 넣어줬다. 목으로 넘기는 걸 다 보고서야 그는 내게서 눈을 돌렸다.

죽을 한 그릇 다 비우니 뱃속은 더 허기가 졌다. 한번 음식을 먹으니 끝도 없이 먹고 싶었다. 그걸 눈치라도 챘는지 반찬들을 내오는 윤석이었다.

그런데 자꾸만 먹여주려는 그를 내가 할 수 있다고 말렸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 그 때문에 윤석의 눈을 보지 못했다.

어느 정도 배가 다 찼을 때 거실로 장소를 옮겼다. 그와 소파에 나란히 앉았고, 앉자마자 현윤석에 품으로 파고들었다. 한순간도 그의 향기를 잃고 싶지 않았다.


"구원 씨, 우리 뭐 할까요?"

당신의 정액을 먹고 싶다고 어떻게 말을 할까 현윤석의 눈을 보면서 고민했다. 말만 하면 다 해주겠다는 눈빛의 재촉에 맘속에서 되새기고 있던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

"목말라요. 그쪽 우유 마시고 싶어요."

현윤석은 재밌다는 미소를 입가에 띄웠다. 그 미소를 짓고 있던 입술은 제 입술을 덮쳤다. 꽤 급했다는 듯 집어삼킬 듯이 키스를 하는 탓에 따라가기 힘들었다.

이 시간이 영원히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시간, 세상 속은 현윤석으로 가득 차 있다고 누가 말해줬으면 좋겠다.

"좋긴 좋은데요. 좋은 만큼 불안한데 구원씨. 아니죠?"

쪽- 하는 민망한 소릴 내며 떼어진 입술은 타액이 길게 늘어져 연결되어 있었다.


눈치 빠른 그는 마지막이라는 걸 벌써 눈치라도 챈 건지 떨리는 동공으로 날 쳐다보았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어린아이 같아서 손을 들어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머릿결이 부드러워 손길을 여러 번 하게 했다.

"미안해요. 내가 너무 힘들어서 그러는 거예요. 나 말고 다른 사람 만나요."

"싫어. 다른 새끼들은 싫어. 네가 좋아, 나만 좋아할게. 나 혼자만 너 좋아하면 되니까. 그러니까....!"

"아니요! 형이 죽었어요. 제가 죽게 했어요. 내게 가당치도 않는 행복만 원해서 형이 죽었어요. 그 행복이 현윤석이라.. 당신의 얼굴을 볼 수 없어요."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아무말도 하지 않았고 서로의 숨결만 들렸다.

고요한 적막이 흘렀다. 자꾸 부딪혀오는 시선을 똑바로 마주할 수 없었다.


"그래. 마지막으로 물어볼게. 너한테 나는 뭐였어?"

좋아하는 사람. 그래서 아프게 하기 싫었던 사람. 제 세상 전부인 사람.
"말했잖아요. 우리는 섹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그가 없는 삶은 지옥 같을 것이다. 이미 내가 사는 곳은 나락인데 어디까지 내려가야 하는지 궁금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내가 현윤석과 만났을 때부터? 형이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썼을 때부터? 다 아니었다.

잘못은 나였다.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뭔가 꼬여버린 거다. 축복받지 못한 탄생은 기쁘지 않았다. 한없이 우울한 좌절감에 빠져 허우적거릴 뿐이다.

오늘도 간절히 빌어본다.

누가 나 좀 구원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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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3-04 01:00 | 조회 : 2,278 목록
작가의 말
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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