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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악몽이 아닌 행복한 꿈을 꿨다. 현윤석과 손을 잡고 시선을 마주하며 서로의 온기를 느꼈다. 실제 연인처럼. 꿈은 행복했지만 행복한 꿈에서 깬 현실은 잔혹했다. 그래서 그와 같이 있는 순간들을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어젯밤에 치뤘던 정사는 평소보다 서로를 더 원했고 세게 끌어안았다.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액체가 자꾸만 내 얼굴에 떨어졌다. 그는 내 눈가를 계속해서 핥았다. 목부터 아래까지 차례대로 잇자국을 내며 흔적을 새겼다. 뜨겁게 달궈진 몸은 그의 것을 잘 받아들였다. 허리 짓을 세게 하면서도 멈추고 자신을 한동안 쳐다보았다. 그를 마주할 자신이 없어 다리로 그의 허리를 감으며 재촉했다.

여전히 현윤석은 부끄러운 말과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자신이 그만해달라고 애원해도 소용없었다. 내게 구멍에 들어와있는 걸 만져보라며 접합되어 있는 부분에 손을 대게 했다. 그의 팔을 붙잡으며 고개를 도리질 쳤지만 저급한 말만 되돌아올 뿐이었다.



'구원아, 네가 날 다시 찾아오면 말이야. 그때는 내 마음대로 할 거니까, 그렇게 알아둬.'

'무슨...'

'너는 날 다시 찾아오게 돼있......'

머리 위에서 느껴지는 손을 느끼며 숨을 고르고 있을 때쯤 들려오는 영문모를 말에 되물었지만 금세 나를 찾아온 어둠은 나를 뒤덮었다.

*


눈을 떴을 땐 현윤석은 이미 가버린 상태였다. 노곤한 몸을 욕실로 이끌었다. 거울을 보니 얼굴은 예전보다 더욱 창백해졌고, 눈은 빨갛게 충혈돼있었다. 오랜만에 정신을 제대로 차리니 다시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지기 시작했다. 수면제만 먹고 두통약을 먹지 않아서 그런지 고통이 심하게 느껴졌다.

씻는 동안 머리가 아파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로 있었다. 씻자마자 밖으로 나와 두통약 통을 찾았고, 찾아서 약을 두 알 꺼낸 뒤 입에 털어 넣고 곧바로 삼켰다.


약효가 아직 들지 않아 아픈 머리를 이끌고 밖으로 나왔다. 흐렸던 어제와 달리 오늘은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었다. 한 발자국 내디딜 때마다 비가 와 떨어진 벚꽃잎들이 밟혔다. 벚꽃잎이 떨어지지 않은 길로 발걸음을 옮겼고 로펌으로 향했다.



일주일 만에 온 사무실은 무엇인가 허전했다. 자세히 둘러보니 책상이 하나 없어져 있었다. 제가 일주일 동안 오지 않아 잘린 건가 싶었지만 내 책상은 어지럽혀진 채 그대로 있었다. 영문을 모르고 있을 때쯤 뒤에서 누군가 등을 세게 때리며 말을 걸었다.

"구원군! 왜 이제 왔나!! 안 와서 걱정 많이 했다고."

"아.. 죄송해요."

그래서 왜 안 왔냐는 신대식 변호사님의 질문에 형의 장례식을 치르느라 안 왔다고 하자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계속해서 사과하는 변호사님을 말리기 위해 그를 붙잡고 물었다.

"그 김 변호사님은 어디 가셨어요?"

"아아, 다시 부장검사 자리로 돌아갔어. 현윤석이 검사를 그만둔다고 했다고 김 변보고 다시 돌아오라고 했어."

"네?! 언제요?"


예상보다 약간 큰 목소리로 말한 나는 작은 탄성을 내뱉었다. 변호사님은 괜찮다는 제스처를 취하고 대답했다.

"그러니까 오늘 새벽 5시쯤이었을 거야. 그때 김 변한테 한윤석 비서라고 하는 사람이 김 변 책상이랑 짐다 옮겨놨다고 오늘부터 검찰로 가라고 했어."

현윤석이 이렇게나 빨리 그만 둘 줄 몰랐다. 꽤나 놀랐지만 이제 상관없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나라도 와서 다행이라며 내 손을 살며시 잡았다. 현윤석의 소식에 의해 잊어버린 자신의 용무를 기억해냈다.

"죄송하지만, 당분간 사무실에 못 올 것 같은데요."

변호사님은 빠르게 표정이 걱정스럽게 변했고 어깨가 축 처졌다. 힘 빠진 목소리로 내게 대답했다.

"알겠네. 그런데 구원군, 힘들면 말하게나. 힘들다고 쉬기만 하면 더 생각날 뿐이야."


그의 말이 맞았다. 자신은 한 번도 현윤석을 잊은 적이 없었다. 현윤석을 생각하지 않았다고 되뇌며 수없이 그를 생각했다. 그와 마주하지 않으면 그를 잊을 수 있을 것 같기에 현윤석의 곁을 떠날 것이다.


-

최구원의 집을 나오자마자 허탈감이 몰려왔다. 최구원이 자신에게 아무 관계도 아니라고 했지만, 그의 얼굴에는 그렇게 쓰여있지 않았다.


어제 최구원의 행동이 마음에 들었지만 매우 불길했다. 그 예감은 맞아떨어졌고 그 불안감을 털어내려 그를 안았다. 꽤 부드럽게 한다고 했긴 했지만 초반에만 그랬었고, 그 뒤에는 이성을 잃은 것 같았다.


지쳐있는 최구원의 얼굴을 보며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내게 끝까지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는 최구원을 이제 내버려 두기로 했다. 그가 다시 찾아올 때까지 그를 찾지 않을 것이다.


최구원은 분명히 날 찾아올 것이다. 그가 형을 구하고 싶다면 말이다. 내가 증거를 가지고 있으니까, 최구원의 형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목격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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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3-12 00:01 | 조회 : 1,948 목록
작가의 말
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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