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09


장례식은 빠르게 흘러갔다. 조문객들의 방문이 없어 제가 우는 소리만 방을 울렸다.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형이 자꾸만 자신을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는 것 같았다. 내가 해야할 의무를 잊은 채 가당치도 않은 여유를 부리고 행복을 원했다.

형을 위해 나는 영원한 어둠 속에 갇혀 빛을 찾아야 한다. 빛을 찾지 못한다면 영겁 동안 그 무섭고 두려운 어둠 속에서 살아야 할 것이다.

한시라도 빨리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현윤석을 몰랐었고 오로지 자신이 지고 있는 짐을 내려놓기 위해서 발버둥 쳤었던 시간으로 돌아갈 것이다. 힘들겠지만 그것이 내게 주어진 벌이니 마땅히 받아야 한다.


약과 물에 의존한 채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울리는 휴대폰은 어느새 배터리가 다 되어 꺼졌고 제 숨소리만 울리는 방안은 적막만이 가득했다. 가려진 커튼 틈새로 빛이 들어서는 걸 보아 아침이 온 것이다. 약통을 뒤집어 알약을 꺼내려 했지만 다 떨어진 것인지 나오지 않았다. 사 오기 귀찮았지만 내성이 생긴 몸은 약을 원했다. 침대에서 벗어나 일어나자 머리가 핑 도는 느낌과 며칠을 밥을 먹지 않아 공허한 뱃속에 의해 다리가 풀렸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낯선 코트가 손에 잡혔다.

그 낯선 코트를 품으로 끌어안으며 눈을 감았다.

현윤석과의 두 번째 만남이었다. 로펌에 직접 찾아와 자신을 놀라게 했다. 사무실을 같이 쓰고 있던 김정훈 변호사님은 얼굴이 벌게지며 언성을 높였다. 그 소리에도 현윤석은 아무렇지 않게 제 손목을 붙들고 밖으로 나갔다.

겉옷도 챙기지 못한 채 나간 밖은 추웠고, 함박눈이 내렸다. 추위에 몸을 떨자 어깨 위로 그의 코트가 올라왔고 낮고 달콤한 음성이 제 귀를 덮쳤다.

'그럼 갈까요?'

눈이 손에서 녹아내려 없어지는 것처럼 위험한 제안을 뿌리쳐야 한다는 마음은 순식간에 없어져 버렸다.

코트에 남아있던 옅은 향기가 자신을 잠식시켰다. 그를 보고 싶었다. 옅은 향기보다 그의 품에 안겨 짙은 향기를 들이키고 싶었다.

"보고 싶어. 현윤석..."

코트를 더욱 끌어당기자 제법 짙은 어둠이 다가왔다.

-

최구원과 5일 동안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의 형이 죽었다는 소식은 들었다. 꽤나 상심이 크겠지. 집에는 들어간 건지 밥은 잘 챙겨 먹고 있는지 걱정 돼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고심 끝에 최구원의 집 앞에 서있었다. 벨을 눌러도 나오지 않아 문 너머로 보았던 비밀번호를 눌러 문을 열고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풍겨오는 그의 냄새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최구원을 생각할수록 점점 자신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더욱 좋아지는 감정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거실과 부엌, 화장실을 찾아봤지만 최구원은 없었다. 마지막으로 침실을 들어가 보자 바닥에 떨어져 자신의 체구보다 큰 검은색 코트를 끌어안고 웅크리고 자는 그를 보았다.

최구원은 역시 끼니를 먹지 않은 것인지 말라있었다. 그가 작게 뭐라 중얼거리는 것 같아 가까이 다가갔다. 가까이 가보니 코트는 자신의 것이었다. 아마 첫 관계를 한 뒤 두 번째로 만났을 때 줬던 것이다.

왜 끌어안고 있는지 의문을 가질 채도 없이 최구원이 내뱉는 작은 말이 들려왔다.

"현윤석.... 보고 싶어.."

알 수 없는 감정이 발끝에서부터 휘몰아쳤다. 최구원이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꼬리가 아주 크게 휘었다. 최구원을 깨물고 싶었다. 날 좋아하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최구원의 눈을 바라보며 그의 대답을 듣고 싶었다. 애정을 갈구하고 싶었고, 그를 원했다.


2
이번 화 신고 2017-02-27 01:01 | 조회 : 2,222 목록
작가의 말
재나

.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