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08

좋아한다고 말할 예정은 아니었었다. 나올 것 같지 않던 말들이 최구원의 얼굴을 보니 말이 술술 나왔다. 여전히 최구원은 자신을 거절했다. 화를 주체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예상외로 화가 나지 않았다. 가슴에 뭐가 꽉 막힌 듯 답답했고 아팠다. 어서 이 기분을 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밤새도록 몸과 말로 최구원을 능욕하며 괴롭혔다. 처음에는 하지 말라며 볼을 붉혔지만 나중에는 숨을 헐떡이며 제 이름을 불렀다. 입에 성기를 물려주니 컥컥댔지만 그것도 잠깐일 뿐 맛있게도 잘 빨아먹었고, 구멍은 쫀득하게 자신의 성기를 감싸왔다. 넣어줄 때마다 적응하지 못하는 최구원은 언제나 아다처럼 조였다. 눈가가 빨개지고 쉴 대로 쉰 목소리로 박아달라고 내게 매달리고 애원했다.


최구원을 탐하면 탐할수록 자제력을 잃게 했다. 친절하게 웃으며 본래의 성격을 철저히 감췄지만 그와 섹스할 때마다 본래의 성격이 종종 튀어나왔다. 뭐, 밑에서 정신없이 흔들리는 최구원은 알 턱이 없었다. 그것마저도 좋다고 신음을 흘려댔으니.


꽤 재밌는 애완견을 만났다. 아직 낯가림이 심하고 버릇도 없어 주인을 화나게 했다. 게다가 강아지 주제에 예민했다. 자신이 그 발칙한 강아지를 길들일 것이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그를 제 것이 되게 할 것이다.

최구원이 내가 싫다며 도망가도 제 앞에 잡아와 무릎 꿇게 할 것이다. 내 세상에는 최구원 밖에 없으니 그의 세상에도 현윤석밖에 없어야 한다.

*

눈이 저절로 떠졌다. 우리 집 천장이 이렇게 화려했나. 그렇게 생각한 것도 잠시 여기가 현윤석의 집이라는 걸 인지했다. 창문을 바라보자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우중충한 하늘이었다. 넓은 방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고요했고 자신의 숨소리만 들렸다. 알 수 없는 한기가 제 몸을 관통해왔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불쌍하게 바닥에 떨어져 있는 핸드폰을 줍기 위해 침대에서 살며시 일어났다. 허리가 지끈지끈 아파왔고 걸을 때마다 허벅지에 말라붙은 정액이 느껴졌다. 뒤가 따끔히 아파왔다. 찝찝함과 아픔에 얼굴을 찡그리며 핸드폰을 주웠다. 도저히 더는 서있을 수 없기에 재빨리 침대에 다시 누웠다. 씻어야 했지만 지금은 움직이기가 귀찮았다. 그 변태 검사는 어디 간 건지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핸드폰을 켜보니 같은 번호로 부재중 전화 10통이 와있었다. 전화가 온 때는 윤석과 섹스를 정신없이 하고 있었을 때였다. 모르는 번호라 무시할까도 생각했지만 손은 이미 그 번호로 전화를 걸고 있었다.

몇 번의 신호음이 가고 전화기 너머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최수원 씨 보호자분이신가요?"

"네. 맞는데 누구시죠?"

"서울남부교도소 교도관입니다. 최수원 씨가 교도소에서 자살을 하셨습니다... 발견했을 때는 이미 숨이 끊어져있는 상태였고요. 지금 서울병원 영안실에 안치되어있습니다."

"뭐..? ...뭐라고?"

"최수원 씨가 사망하셨습니다. 곧바로 와주시길 바랍니다."

매정하게도 뚝 끊긴 전화 와 동시에 비가 한두 방울씩 쏟아졌다. 이건 뭔가 잘못됐다. 잘못돼도 한참을 잘못됐다. 누가 죽어...? 최수원이 죽었다고? 그럴 리가 없다. 그 착한 형이 죽을 리가 없다. 이 모든 게 장난이라고 바보 같은 내가 속은 거라고 누가 말해줄 것이다.

"구원 씨?"

이럴 시간이 없다. 빨리 형을 보러 가야 했다. 내게 장난치는 거였다고 웃으며 날 반길 것이다.

다급하게 옷을 주워 입는데 자꾸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손목을 잡아 행동을 제지하고 소리를 지르며 날 불렀다. 그게 누구인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머릿속에는 온통 형이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그렇게 생각이라도 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았다.

우산도 챙기지 않고 빠르게 밖으로 달려나갔다. 처음 보는 동네인지라 계속 길을 헤매어 같은 곳만 빙빙 돌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초조해져갔고 자신의 몰골은 비에 젖어 초라해져갔다.

정체 없이 뛰어다녔을까, 앞을 막는 차에 움직임을 멈췄다. 창문이 내려갔고 창문 너머로 보이는 사람을 마주 보았다.

그 순간 그 사람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그는 혼란스러운 자신의 머리를 한 번에 진정시켰다. 아까 자신을 제지한 것도 현윤석이었고 부른 것도 현윤석이었다. 드디어 생각 속에 가려진 기억이 돌아왔다.

"우선 차에 타요."

"어디로 가요?"

".......... 서울병원이요. 최대한 빨리..."

그는 더 이상 물어보지 않으며 최고속도로 달렸다. 그래도 신호까지 무시해가며 빨리 가라는 것은 아니었는데.. 윤석 덕분에 병원에 빨리 도착할 수 있었다. 병원 앞에 서있으니 서서히 손이 떨려오기 시작했고, 두려움에 심장이 요동쳤다.

"최구원."

낮고 부드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그리고 차디찬 큰손이 히터 때문에 약간 달아오른 자신의 손을 덮었다.

"괜찮아지면 뭐 때문에 그러는지 알려줘요. 기다릴 테니."


그의 말에 살짝 고개만 끄덕인 뒤 윤석이 내민 우산을 펴고 차 밖으로 나왔다. 현윤석의 말이 신경 쓰이긴 했지만 뒤로한 채 곧바로 병원에 들어갔다.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간단한 확인 절차를 끝내고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피부에 닿는 차가운 감촉은 싸늘했다.

중앙에 떡하니 놓여있는 침대 위에 하얀 천으로 덮어진 사람의 모습이 있었다. 형이 어디 있다는 걸까. 아무리 둘러봐도 형은 없었다.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떼어 앞으로 걸어갔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하얀 천을 내리자 자신이 되고 싶었던, 동경했던 사람이 눈을 감고 누워있었다.


"수원이 형... 이제 장난 그만해. 나 정말 속았으니까.... 그니까.. 제발 눈 떠... 흐으..."

제 손에 느껴지는 차가운 몸은 자신의 형이 죽었다는 사실을 단정 지었다. 자꾸만 형의 죽음을 받아들이라는 현실이 미웠다. 왜 내 형만 이렇게 불행해야 하는지, 아파야 하는지 모르겠다. 왜 비정한 신은 내게 소중한 사람을 두 번이나 빼앗아가는 걸까. 그를 붙잡고 서럽게 울었다.


최수원은 자신의 형이었고, 부모였으며 동경의 대상이었다. 못하는 게 없는 형처럼 되고 싶었다. 동네 사람들은 우리 형제를 보며 따뜻하게 웃어주며 그런대로 행복했다. 내가 13살이 끝나갈 즘에 형을 빼앗아가기 전까지 말이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자 동네 이웃들과 친구들은 자신에 등을 돌렸다. 살인자의 동생이라며 손가락질 받고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그에 맞서 아니라고 소리치면 집단으로 구타당했다. 상처 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해보면 벽이란 벽들에다 '살인자 새끼, 죽어라, 나가 뒤져라'라는 말들이 빨간 글씨들로 낙서 돼있었다. 솟구치는 설움에도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변호사가 되기 위해 공부했다. 행복했던 우리는 철저히 망가지고 불행의 늪에 빠졌다.

문제는 나였다. 나 때문이다. 형이 죽어가는 동안에 자신은 뭐 했는가. 쾌감에 미쳐 몸서리치고 있었다. 현윤석과 있는 시간이 점차 많아지면서 형을 만나러 오지 않았다. 생각도 하지 않았다. 형을 잊은 나에게 벌을 주는 것이다. 형의 무죄를 밝히는 것도 잊은 채 현윤석만 생각했고 원했다. 이 모든 게 다 내 잘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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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2-17 00:04 | 조회 : 2,442 목록
작가의 말
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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