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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똑똑-

책상을 치는 둔탁한 소리에 서류에 꽂혀있었던 시선을 올려 소리의 원인을 쳐다보았다. 올려다본 그곳에는 얼굴에 자잘한 상처들이 있는 남자가 있었다. 여기까지 뛰어온 건지 숨을 헉헉댔다.

"변호사 맞아?"

그 남자는 어느 정도 숨을 가다듬은 뒤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말을 반 토막 내서 하길래 남자와 어디서 만난 적이 있는지 아는 사이인지 떠올렸다. 하지만 처음 보는 인물이었고 아무 관계도 아니라고 결정을 내렸다. 그렇다고 결정을 내리니 기분이 한순간에 나빠지기 시작했다.

"맞아. 그런데 그쪽이랑 초면..."

"재판 좀 맡아줘."
앞뒤 설명도 없이 재판을 맡아달라니, 거기에다 반말로. 싫다고 했다간 죽이겠다는 눈빛으로 제 눈을 노려보길래 꽤나 기분이 나쁘긴 했지만 이야기라도 들어보겠다고 생각했다. 자리를 옮겨 소파로 가서 남자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형이 누명을 썼어. 횡령죄로."

볼펜을 쥐고 있던 손이 떨렸다. 떨리는 손을 숨기며 크게 내색하지 않고 계속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JN 기업 경리부에 일하기 시작한 지 이 주일이 됐을 때였어. 어느 때와 똑같이 형은 회사에서 일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그때 체포해간 거야. 그 같이 일하던 직원들도 다 우리 형이 돈을 빼돌린 사람이라고 지목했고 모든 증거들 모두 다..! 누가 봐도 형을 범인으로 몰고 가고 있었어. 그 회사에서 일한 지 이 주일 밖에 안 됐는데 5억이라는 돈을 횡령한다니 말이 안 되잖아.."

끝내 그의 눈에서 나올 것 같지 않은 눈물이 한 방울 흘렀다. 자신과 상황이 비슷했다. 누명이 쓰인 형과 그 누명을 벗기려 하는 동생. 비록 자신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나와 같이 형을 잃게 하고 싶지 않았다. 소중한 사람을 잃는 것은 나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그게 얼마나 아픈지 아니까, 그를 도와주고 싶었다.

"알았어. 내가 도와줄게."

나에게 재판을 맡긴 한준서는 시키실 거 있으면 시키고 잘 부탁한다 한 뒤 집으로 돌아갔다. 지금이 4월 2일이였으니 재판은 20일 뒤였다. 그때까지 증거들을 모아야 한다. JN 기업의 정보들을 쉴 새 없이 찾았다. 열심히 찾는 자신을 보며 김정훈 변호사님이 한동안 넋이 빠져있더니 드디어 넋이 돌아왔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한번 웃어주고는 다시 집중했다. 2일 동안 밤 새가며 찾은 결과 얻은 게 별로 없었다. 보안이 강해서 건진 게 없었다. 그나마 건질만한 건 HK 그룹이 JN 기업을 도와주는 것이었다. 그에게 부탁해볼까?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런 생각을 한 내가 바보였다. 지금 그와 관계는 끝난 사이였으니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다짐은 별로 오래가지 못하고 사라졌다. 점심시간이 다 끝나갈 때 쯤 나는 지금 그의 사무실 앞에 와 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막상 오긴 했지만 떨렸다. 입술이 바싹바싹 말랐고 그의 얼굴을 본다고 생각하니 더 두근댔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문을 두드린 다음 문고리를 아래로 내린 뒤 밀었다.

안경을 쓰고 서류를 보고 있는 윤석은 자신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문 앞에서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예쁜 눈은 안경에 숨겨졌지만 여전히 예뻤고 입술은 유난히 빨갛고 피부는 더 하얘진 것 같았다. 저 입술을 빨고 싶었다. 저 서류를 잡고 있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유두를 만져준다던지 애널에 넣고 괴롭혀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최구원 씨가 여긴 어쩐 일로?"

"아, 아, 그니까.. 부탁이 있어서 왔습니다."

"부탁?"
비웃는 듯 입꼬리를 한쪽만 말아올리는 그에게 다가가는 동안 다리가 풀릴 것 같은 느낌이 자꾸 들었다. 발걸음마다 그의 시선이 노골적으로 느껴져 침을 삼켰다. 윤석의 앞에 서서 재판을 도와달라고 말했다.

"우리가 도와주고 그럴만한 사이였나? 그냥 섹스 파트너일 뿐인데, 내가 왜 도와줘야 하지?"

"......원하는 대로 해드릴 테니까.... 부탁드립니다."

"최구원."

그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더니 나에게로 걸어왔다. 내게 가까이 올 때마다 그의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내 머리를 그의 손으로 살살 쓰다듬었다.

"부탁하는 사람이 그러고만 있을 거예요? 마음에 드는 짓을 해야 부탁을 들어줄 마음이 생기죠."

말을 다 끝냈을 때는 현윤석의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고 그 억센 힘에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했다. 그의 어둡고 음침한 동공에 시선을 잡아먹혔다.
-

마음이 편할 줄 알았다. 느긋하게 기다리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초조했다. 처음에는 최고원이 좋다고 다른 남자와 자는 것은 아닐까? 싶어서 걱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에게 갈 뻔했다. 날이 지나면 지날수록 걱정이 쌓였다. 일주일이었다. 일주일이 지나면 그를 보러 가기로 결정했다 그러지 않으면 자신이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눈에 들어오지 않는 서류의 글씨들을 보았다. 그 글자들이 최구원으로 바뀌어 머릿속에 그로 가득 차게 했다. 머리를 한번 휘젓고 다시 보기 시작했다. 서류를 보며 최구원을 생각하고 있을 때 똑똑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자신을 아는 사람이라면 말을 걸 것이 분명하니 서류를 계속 보기로 했다. 집중은 되지 않았지만. 한참동안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기에 문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기쁨에 의자에서 일어날 뻔했다. 최구원이었다. 자신을 꽤나 멍하니 쳐다보는 그였다. 날 보고 싶어서 온 건가, 붕 뜨는 기분에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가까스로 막고 구원을 불렀다. 약간 놀랐는지 말을 더듬었다. 그때까지는 기분이 좋았다. 그는 여전히 작은 목소리로 내게 부탁하러 온 것이라고 했다. 조울증이라도 걸린 것인지 붕 떴던 기분은 확 가라앉았다. 자신이 생각나서 온 게 아니라고? 퉁명스러운 말투로 대답이 나가자 최구원은 고개를 푹 숙이며 내가 원하는 대로 해준다고 대답했다. 심술이 났다.

'그래. 네가 말한 대로 해줄게. 후회해도 나는 몰라.'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왜 최구원 앞에 서면 기분이 좋았다, 나빴다 하는 건지 아직도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었다기보다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좋아하는 감정을 처음 느껴보니까, 자신이 최구원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 것이다.

"입으로 벨트부터 풀어봐. 너는 강아지니까 손도, 발도 쓰면 안 되고 말도 하면 안 돼. 두발로 서도 안되고. 그냥 개처럼 짖고 네발로 기어. 알았지?"

최구원의 눈은 두려움으로 짙어졌다. 마음에 들었다. 떨고 있는 눈동자를 핥고 싶었다. 그 눈동자에는 현윤석의 모습만 보여야 한다. 최구원이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나를 좋아한다고, 나밖에 없다고 세뇌시켜서라도 좋아하게 만들 것이다. 그것이 내가 좋아하는 방법이니까.

구원은 마지못해 무릎을 꿇었다. 입을 대고 벨트를 풀려 애썼다. 조금씩 풀어지긴 했지만 입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애쓰는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이 닿았을 때 흠칫 떨었다. 계속 머리를 만져주니 푸르기에 열중했다. 시간이 꽤 지난 뒤 다 풀었다는 눈빛으로 저를 올려다보는 구원을 감상했다. 얼굴에 정액을 범벅시키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웃었다.

"손에 올려놔."
그는 입으로 벨트를 물어 제 손에 올려놓았다.

"네가 풀은 건 벨트가 아니야. 네 목줄이지."
다정하게 말하며 최구원의 목이 많이 조이지 않을 만큼만 감싼 뒤 버클을 채웠다. 옷을 벗기고 싶었지만 정장을 입고 있는 모습도 자신을 흥분시키게 했으니 그냥 내버려 뒀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의자로 돌아가 앉았다. 볼펜을 하나 꺼내든 뒤 문쪽으로 던졌다.

"물어와."
최구원의 얼굴은 오줌 마려운 강아지 같았다. 진짜로 네발로 기어가야 하는 건지 고민하고 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구원에게 당연히 네발로 기어가는 것은 알고 있겠지?라고 말하자 그는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수치스럽다는 뜻이었다.

"빨리해. 안 하면 안 도와준다고?"

그는 입술을 잘근 깨문 뒤 왼쪽 팔과 왼쪽 무릎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다음 오른쪽 팔과 오른쪽 무릎을 앞으로 내미는 것들 반복하며 한 걸음씩 기어가기 시작했다. 그 뒤태는 정말 박고 싶게 탐스러웠다. 기어가는 동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최구원도 자신의 좆이 먹고 싶을까? 안 먹고 싶다 해도 먹일 생각이었지만. 큭큭대며 생각에 잠겨있을 때쯤 자신의 앞에 볼펜을 물고 엎드려있는 구원을 발견했다. 그는 얼굴이 눈에 띄게 벌게져 있었다. 툭 치면 눈에서는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그래도 볼록 튀어나와있는 바지춤은 그만해달라는 것 같지 않았다. 더욱 자신을 괴롭혀달라는 걸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손을 펴자 구원은 볼펜을 올려놓았다.

"잘했어.

대답해야지?"

"멍..."

"착하다."
한번 더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복종하는 그의 모습은 정말로 흡족할만했다. 앞으로도 이렇게 나에게 복종했으면 좋겠다. 벨트를 잡고 내 쪽으로 끌어당기자 힘을 못 쓰고 끌려왔다. 나빴던 기분은 풀어진지 오래였다. 이제 그와 즐길 일만 남았다.

"장소를 옮길까요? 밤새도록 놀 수 있는데로."

최구원과 자신의 얼굴에 쾌락이 서렸다. 그 쾌락을 좇기 위해 천천히 입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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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2-09 00:01 | 조회 : 2,630 목록
작가의 말
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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