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19)

#05

입가가 경련했다. 끌어올려지지도 않는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렸다. 최구원이 제 뒤통수를 후려친 것만 같았다. 그의 대답은 한 방 먹었다는 기분을 처음으로 느끼게 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아니라고 말하는 구원을 보니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허탈함과 분노가 치밀었다. 그는 내 얼굴을 보며 얼굴을 종종 붉히고 내 생각을 하며 자위까지 했다. 최구원의 행동은 내가 오해를 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에게 나는 단순한 섹스 파트너였다.

"사건번호 2017고합16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마주 앉은 최구원의 얼굴은 여전히 벌게져 있었다. 그를 계속 쳐다보았지만 최구원은 제대로 시선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런 그의 모습은 정복욕과 소유욕을 들끓게 했다. 단순한 소유욕일 것이다. 그저 자신만 그를 탐하고 만질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다. 그 외에는 특별한 감정이 없을 것이다.

재판하는 내내 표정관리가 되지 않았다. 그의 탁한 눈동자를 봐도 표정이 나아지지 않았다. 어떻게든 이상한 기분들을 떨쳐내고 싶다. 재판은 생각보다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최구원의 목소리는 힘 있지 않았고 탁한 눈동자를 나와 맞추지도 않았다. 마음에 안 드는 행동만 골라서 했다. 어떻게 혼내줄지 고민하고 있을 때 최구원이 내 쪽으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 강아지는 무관심을 무서워한다. 주인이 자신을 버리지 않을까라는 조바심 때문에 어떻게든 관심을 끌려고 한다.


말없이 그를 지나쳤다. 지나치는 순간 최구원의 표정은 잠깐이지만 마음에 들었다. 버림받을까 두려움에 빠진 얼굴. 버릇을 들이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했다.

최구원이 다시 자신의 관심을 바랄 때까지.
-

재판이 끝나고 나를 그대로 지나쳐 나가는 윤석을 붙잡을 수 없었다. 내가 그를 좋아하지 않아도 현윤석은 아무렇지 않을 것 같았다. 그냥 평소처럼 날 대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는 나를 모르는 사람처럼 스쳐 지나갔다. 알 수 없는 느낌들이 자꾸만 심장을 들쑤셨다. 역시 그에게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또 나는 혼자가 된 것이다.

익숙하다.
혼자가 되는 것은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그건 거짓말이었다. 그 거짓말은 자신이 혼자가 됐다는 걸 위로해줄 변명일 뿐이다. 우리 관계는 이제 끝이었다.
괜찮을 것이다. 그에게 푹 빠져있던 건 아니었으니. 그냥 평소대로 돌아가는 것뿐이었다.

*

1월 20일 한파가 시작된 날이었다. 추운 한파 속에서도 작은 포장마차에는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그 많은 사람들 중 정중앙에 내가 앉아있었고 그 앞에는 김정훈 부장 검.. 아니 변호사님이 앉아계셨다.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눈치도 눈치인지라 꼼짝없이 자리에 앉아있었다.

"내가 말이야. 참 박복한 인생이지. 그 현윤석 새파랗게 어린놈!! ...때문에 꼬일 대로 꼬였어."

현윤석, 꽤 파장이 큰 건지 내 귀에 그의 이름이 들려왔다. 현진 가문의 손자이며 HK 그룹의 후계자면서 무슨 생각인지 검사를 한다고 했다. 그것도 부장검사였던 김정훈을 내쫓고 자기가 그 자리에 앉았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얼굴이 한껏 찌푸려졌다. 현윤석은 제가 제일 싫어하는 타입이었다. 돈, 권력이면 뭐든 다 된다고 생각하는 부류였으니 싫어하는 이유는 충분했다.

그의 하소연을 억지로 들으며 나에게 따라주는 술이 3병을 넘어섰을 때 점점 취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술에 취해 주사를 부리기 전까지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검사님, 아니, 변호사님. 저는 이제 그만 일어나겠습니다."

"에? 벌써?? 좀만 더 있다가."
손을 붙잡고 말하는 그를 애써 무시하며 자리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내일 사무실에서 뵙자고 한 뒤 도망치듯 나왔다. 계속 꼬이는 걸음에 몇 발자국 가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죽겠다... 죽겠어......"
일어나려 했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그냥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한참이 지났을까 의미 없는 혼잣말을 내뱉는 나의 앞으로 다가온 한 남자가 있었다. 흐릿한 시야로 언뜻 보이는 그 남자의 모습은 예쁘다고 말할 수 있었다. 핑핑 도는 머릿속은 빨리 그 남자에게 유혹하라고 명령했다. 술에 취한 몸은 그 명령을 저항할 힘이 없었다.

"저기, 오빠. 나랑 섹스할래요?"

그 남자는 그 말을 듣자마자 나를 끌고 가듯 곧바로 모텔에 데려갔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옷부터 정신없이 벗기는 남자는 자신을 더욱 흥분시켰다. 그러고는눈가를 쉴 새 없이 핥았고 입을 맞춰왔다.

"하,역시 맛있어."
거칠게 밀어붙이는 키스는 정신을 빼놓게 했다. 입술에서부터 목으로 내려오는 남자의 입술은 뜨거웠다.

"아으, 그만.., 하윽..."

"왜? 네가 먼저 걸레같이 유혹했으면서. 처음 하는 것도 아니잖아."
그는 음란하게 웃었다. 술만 마시면 남자건 여자건 들러붙는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남자의 말은 틀렸다. 자신은 처음 맺는 관계였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자극에 내 몸은 어쩔 줄 몰라 했다.

"다리 좀 벌려봐."
남자가 다리를 쫙 벌렸다. 치부가 드러나 훤히 그에게 보이고 있었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웠지만 달아오르게 했다. 다리를 오므리자 남자는 다시 벌렸다. 얼굴을 가리기 위해 손을 들어 올렸다. 허나 그것도 봐주지 않겠다는 듯 손을 쳐냈다.

"네 구멍을 맛보고 싶었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 먹을 수 있을 줄은 몰랐는걸?"

"흐응, 무슨..."
남자는 영문 모를 하며 애널에 성기를 문댔다. 그 느낌에 작은 탄성을 내뱉었다. 문득 무서워졌다. 뒤가 찢어지는 게 아닌가 싶어서 위쪽으로 슬금슬금 도망쳤다. 하지만 허리가 세게 잡혔고 뭐라 말할 겨를도 없이 아랫배로 묵직하고 뜨거운 것이 꿰뚫고 들어왔다. 어찌나 큰지 숨이 턱하고 막혔다. 처음 느껴보는 얼얼한 고통에 눈물이 절로 나왔다.

"아악.....!, 읏, 아, 아파....!!, 앗"

"힘 빼. 누가 보면 처음인 줄 알겠어. 여기에 다른 남자 좆 많이 들락날락했으면서 아다인 척은."

"아, 아니...!, 하응, 아파, 아앙, 아읏..!!"

아니라는 말이 목까지 올라왔지만 비명에 의해 삼켜졌다. 남자의 성기가 빠졌다가 다시 치고 들어오며 세게 추삽질을 하기 시작했다. 남자의 성기는 내벽을 긁어대고 찔러댔다. 찢어질 것 같았다. 기분이 좋았다. 좁은 곳을 들락날락하는 느낌에 좋아 미칠 것만 같았다.

"하악!, 하응, 후으.., 하.."

"좋아?"

"응, 후응, 좋아..., 더 깊게...!!"
그의 움직임에 맞춰 흔들리며 신음을 내질렀다. 술과 흥분에 취한 몸은 뜨거워져 주체할 수가 없었다. 한치의 배려도 없는 움직임은 정말 난폭했다. 퍽퍽 거리는 마찰음과 찔꺽거리는 소리가 섞여 적나라한 소리들이 귀에 들렸다. 뱃속 안에 꽉 차있는 성기를 느끼며 한참 비명을 지르고 있을 때 남자가 깊고 강하게 박았다. 그와 동시에 따뜻한 것이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나도 정액을 내뱉었다. 숨을 한꺼번에 내쉬며 숨을 고르고 있을 때 남자는 또 내 눈가를 핥았다.

"아직 정신 놓지마. 안 끝났어."
배출한 정액을 윤활액 삼아 남자는 다시 한번 움직이기 시작했다. 온몸이 성감대인 것처럼 남자의 손길마다 반응했다. 사정한 몸으로 흔들리기에는 너무 힘이 들었다. 신음을 내기도 힘들었지만 성기로 내벽을 찌를 때마다 소리가 나왔다.

"아윽, 아, 그만, 흐으, 그만...!"

"뭘 그만해. 이렇게 좋아죽는 얼굴을 하면서."
허리를 제대로 잡은 뒤 더 강하게 움직였다. 미칠 것 같은 쾌감에 울부짖었다. 인형처럼 흔들리다 사정감이 몰려왔다. 남자는 사정을 못하게 앞을 잡고 손가락으로 막았다.

"같이 가자. 구원아."
내 이름을 어떻게 아는지 의문을 가질 채도 없이 크게 교성을 내질렀다.

"하응, 응...!, 윽.."
남자의 성기가 내장 안쪽까지 느껴지며 뿌리까지 박혔을 때 그는 다시 한번 내 안에다 사정을 하고 그의 손이 떨어지자 나도 사정했다. 체력이 바닥이었다. 이이상 더하면 죽을 것 같았다.

"한번만 더 하자"
길고 긴 밤이었다.
*

어제 정신없이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쓰러지듯 잠에 들었다. 눈을 떠보니 아침이 밝아 있었다. 오늘도 꿈을 꿨다. 현윤석과의 첫 만남이었다. 술이 다 깼을 때 그와 관계를 맺은 것을 알고 몸을 떨며 소리를 질렀다. 윤석은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그 상황을 즐겼었다. 술버릇 때문에 변태 새끼에게 물렸다 생각하고 잊으려 했다. 하지만 그는 나에게 자꾸 나타났고 만날 때마다 관계를 했다. 이젠 그 고통을 안 느껴도 된다니 좋았다. 아마도.

오늘도 똑같고 지루한 하루가 흘러가고 있었다. 한번도 울리지 않는 핸드폰만 붙잡고 있었다. 다른 변호사님들이 오늘 왜 그러냐고 물어보긴 했지만 대충 얼버무렸다. 그렇게 의미 없는 하루들이 지나가 일주일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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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2-05 00:01 | 조회 : 3,652 목록
작가의 말
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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