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시들기를 바라지 않는(4)

정신을 차린 에르미온은 여전히 오베론의 집무실에 있었다. 팔에서 느껴지는 아린 느낌에 살짝 위를 올려다보았더니 머리 위로 모아진 팔이 천장에 매달려 있는 한 줄기의 밧줄로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밧줄 아래쪽으로는 허벅지 위를 아슬아슬하게 덮는 그의 상의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였다.

“일어났구나.”

가까이서 들려오는 소리에 흘끔 고개를 들자 새 붓의 붓끝을 장갑 낀 손가락으로 살짝 훑는 오베론의 모습이 보였다. 에르미온의 시선을 의식한 오베론이 구름 위를 걷는 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에르미온에게로 다가왔다.

카펫에 죽여진 발소리는 이미 서려있는 무거운 침묵에 침묵을 한줌씩 더해주고 있었다.

에르미온의 앞에 똑같이 무릎을 꿇고 앉은 오베론이 에르미온의 푸른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 시선이 부담스럽게 느껴져 에르미온이 아래쪽으로 시선을 회피하자 오베론의 눈에는 그저 에르미온의 흰 속눈썹만이 보일 뿐이었다.

문득 잡고 있는 붓을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리듯 천천히 들어 올린 오베론이 붓으로 에르미온의 흰 목덜미를 사락 쓸어내렸다. 모여 있던 갈색 털들이 흰 피부 위에서 푹 흩어지면서 에르미온의 몸이 흠칫 떨렸다.

서서히 내려오던 붓끝이 에르미온의 옷깃에 닿자 오베론은 다시 붓을 들어 올려 에르미온의 무방비한 귀에 붓을 가져다 대었다. 붓이 귓바퀴를 핥듯이 지나가자 에르미온의 흰 뺨에 홍조가 어린다.

“...응.....”

귀 안쪽에 한올 한올 붓끝이 선을 그리면서 지나갔다. 그림을 그리듯 부드러운 움직임에 에르미온의 몸이 잘게 떨렸다. 살짝 새어나온 신음에 오베론이 움직이고 있던 붓을 잠시 그 자리에 멈추었다.

“너는, 에르.”

말을 제대로 잇지 않은 채 오베론이 붓을 에르미온의 가슴 중앙에 가져다 대었다. 씁쓸하게 웃으면서 그대로 붓을 아래쪽으로 느릿하게 내리자 옷에 닿은 붓이 조용하고 묵직한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아, 소리를 작게 내며 에르미온이 몸을 살짝 뒤틀었다.

“티타니아를 너무 닮았어.”

짐승의 털 같은 붓이 허벅지 안쪽의 여린 살에 미끄러뜨려진다. 무릎 근처부터 더 안쪽까지. 붓이 허벅지 안쪽의 접힌 부분을 타고 내려가자 입술을 꼭 깨문 채 움찔거리며 떨고 있던 에르미온의 입에서 탄성 같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이내 붓은 더 은밀한 곳을 탐하기 시작했다.

“아, 아....이제 그...만.....”

아찔한 느낌에 숙여진 에르미온의 머리가 오베론의 어깨 바로 앞에 멈춘다. 자꾸만 움찔거리는 에르미온의 고개가 저릿한 느낌을 가라앉혀줄 곳을 찾아 그를 잡아 주지 않는 공기에 몸을 의지하려 했다. 붓을 잡지 않은 손으로 에르미온의 허벅지를 살짝 누르고 있던 오베론은 그 어디에도 힘을 주지 않은 채 그저 붓만을 사락거리며 움직일 뿐이었다.

안쪽에서 꾸물거리는 붓끝은 무언가에 젖어 더 이상 흩어지지 않았다. 질척하게 모인 붓은 이제 하나로 모여 은밀한 곳을 탐하는 데만 집중한다. 더운 숨을 내쉬는 에르미온의 붉어진 뺨은 내뱉는 숨만큼이나 뜨거웠다. 그의 뺨 옆에 땀에 젖은 채 드리워진 흰 머리칼은 그의 얼굴의 붉은 기운을 완전히 가리지 못했다.

“흐...읏..... 그만..... 읏.....”

오베론이 붓을 쓸던 방향을 살짝 틀자 곧바로 반응이 전해져 왔다. 더운 바람이 되어 전해져 오는 떨림도, 붓에 전해져 오는 움찔거리는 느낌도, 벌어진 입에서 새어나오는 목소리도 어느새 농도가 짙어져 있었다. 그의 손목에서 팽팽해진 밧줄은 도무지 다시 느슨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거칠어진 숨소리가 방 안에서 점점 크게 울렸다. 묘하게 뒤틀린 그의 몸이 숨소리에 맞춰 계속해서 움찔거리고 있었다. 간간이 들리는 에르미온의 신음소리가 귀에서 울리자 오베론이 충동적으로 에르미온의 턱에 손가락을 가볍게 올렸다. 손에 부드럽게 와 닿은 피부는 겨울날의 난로처럼 꽤나 뜨거웠다.

살짝 들어 올려진 얼굴에서 머리칼 사이로는 잘 보이지 않던 가련함이 묻어나왔다.

“흐윽......”

붉게 물든 얼굴 위로 흘러내리는 땀이 눈물처럼 방울져 흘러내렸다. 가늘게 뜬 눈은 앞에 있는 것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하고 풀려 있었다. 이미 이성이라 부를 만한 건 저 멀리로 사라져버린 지 오래였다.

“참고 있구나.”

붓의 움직임은 점점 더 농염하게 변해갔다. 새로운 자극에 에르미온이 비를 피하려는 새처럼 흠칫거리며 오베론의 손 위를 빠져나갔다. 갈 곳 없이 그저 흥분으로 꼿꼿이 세운 목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가는 손가락이 손에 닿는 밧줄을 힘껏 붙잡는다.

질척한 소리가 들릴 때마다 흰 손가락이 점점 붉어지며 밧줄을 단단히 휘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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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2-18 02:23 | 조회 : 1,151 목록
작가의 말
부드럽게

개인 사정 때문에 늦었는데 글이 미완성이라 죄송합니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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