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시들기를 바라지 않는(5)

꼭 깨문 입술.

장밋빛의 얼굴.

전율에 떨리고 있는 몸.

가련하게 젖어든 눈.

질척해진 붓이 그려내는 쾌락에 맞추어 움직이는 모든 것은 슬프도록 아름다웠다.

붓이 그려내는 선의 방향이 틀어질 때마다 봉해진 입에서는 가는 신음이 여지없이 흘러나왔다. 억눌린 듯한 신음소리에 오베론이 에르미온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살짝 훑자 앙다물어진 입술이 꽃이 피듯 여리게 벌어졌다.

“아... 아....”

입술이 벌어짐에 질끈 감긴 눈에서 보일 듯 말 듯 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흘러내린 이슬이 남긴 자국이 홍조를 담아 붉게 빛났다. 눈이 드러낸 작은 애원에도 붓은 그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온몸을 휘감아 오는 저릿한 느낌을 죽이려 손에 들어간 힘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참지 않아도 괜찮단다, 에르.”

이상하리만큼 달콤하게 들리는 오베론의 목소리가 에르미온의 몸을 부드럽게 휘감는다. 언제나 들어왔던 목소리가 순간 전혀 다른 사람의 것으로 들렸다. 암사슴 같이 우아했던 목소리가 검은 뱀 같은 우아함으로 변모되어 민감한 부분을 찔러왔다. 에르미온에게 오베론은 결코 싫어했던 자가 아니었기에, 뱀이 물고 지나간 곳은 고통 없이 달아오르기만 할 뿐이었다.

가혹하게도 점점 빨라지는 붓놀림에 에르미온은 흠칫거리는 몸을 제어할 수 없었다. 그가 마물을 잡기 위한 미끼로 사용되는 것이라는 목적은 에르미온에게는 이미 신경 쓸 수 있는 범위 밖에 있는 것이었다. 그저 미끼를 만들 뿐이라기에는 감정이 너무도 많이 담겨 있는 붓은 이미 하얗게 된 에르미온의 머릿속을 몇 번이고 하얗게 덧칠하고 있었다.

“우읏.....오...베론님.....아, 흡....”

애원하듯 새어나온 이름 한 마디에 오베론이 에르미온에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눈물이 만들어낸 안개로 부옇게 가려진 오베론의 표정은 에르미온에게 전혀 보이지 않았다. 볼에서 느껴지는 작은 불조각 같은 느낌에 흐릿하게나마 일렁이던 세상이 다시 질끈 감겨져 버렸다. 말캉한 혀가 눈물자국을 훑고 지나갔다.

오베론이 가져다 댄 입술은 말라버린 눈물을 머금은 채 잠시 에르미온의 볼에서 머물렀다. 볼에 내뱉어진 숨이 왠지 붉어서 에르미온은 고개를 파르르 떨었다. 그것에도 개의치 않는 그 입맞춤이 너무 평온해서, 에르미온은 목소리가 들려올 때까지는 누군가가 들어온 줄도 모른 채 그저 흥분에만 허덕이고 있었다.

“놓아주시죠?”

에르미온이 눈을 가늘게 뜨자 또다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목소리를 전혀 개의치 않는 붓이 계속 움직이는 통에 에르미온은 아랫입술을 여전히 입 안으로 말아 넣고 있었다. 머릿속을 울리는 뜨거운 느낌 사이로 비쳐 보이는 것은 무표정의 한 남자였다. 그 남자의 벌꿀색의 눈은 먹구름이 낀 듯 어둡게 굳어져서는 오베론을 향해 딱딱한 시선을 보냈다. 어느새 오베론의 두 손가락 사이에 끼어 있는 작은 칼날은 에르미온이 눈치 채지 못한 사이에 그 남자가 던진 것이 확실했다.

어째서 이런 상황에 ‘그’가 와있는 건지. 의아해하던 에르미온은 농밀하게 움직이는 붓을 이기지 못하고 또 한 번 새된 신음을 내뱉으며 몸을 뒤틀었다. 목을 힘겹게 올린 채 온몸을 흠칫거리는 에르미온을 본 루젠이 폭풍전야의 고요함을 머금고 에르미온을 향해 다가왔다.

그런 루젠을 지켜보던 오베론이 눈을 가늘게 휘어 빙긋이 웃어 보인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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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2-20 02:58 | 조회 : 1,068 목록
작가의 말
부드럽게

이건 15세 미만 불가 작품일까요...? 최소한 야하지는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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