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당신이 하고 있는 생각을(1)

엘프들의 숲에서 큰 흙길을 따라 조금만 걸으면 딱 숲의 나무들보다 조금 더 높은 돌로 된 거대한 성이 나온다.

그 성 주위에 형성되어 있는 마을은 아기자기하고 깔끔한 것이 숲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마을과 전혀 다를 것이 없었다.

성 안의 달팽이처럼 꼬불꼬불한 계단을 타고 올라가는 엘프 왕의 백발이 계단을 따라 휘어지면서 팔랑거리고 있었다.

꼭대기 층에 도착한 그는 그곳의 낡은 나무문을 확 열어 젖혔다. 끼이익 소리와 함께 안에 있는 누군가의 재채기 소리가 들렸다.

재채기 소리에 화들짝 놀란 그가 발을 헛디뎌서 휘청거렸다.

휘청거리는 그의 모습을 본 재채기의 주인이 오히려 더 놀란 듯 번개같이 달려와 그를 붙들었다.

넘어지지는 않은 채 자신의 팔을 붙잡은 사람을 확인한 그의 눈이 놀란 토끼처럼 동그래졌다.

“마렌, 여기는 어쩐 일로?”

검은 머리에 검은 눈을 가진 마렌이라 불린 남자는 그의 물음에 멋쩍은 듯이 빙그레 웃었다.

마렌은 대답을 잠시 회피하는 듯 제 왕의 옷을 가볍게 털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돌 바닥이라서 그런지 그의 움직임은 밤의 고양이처럼 소리가 없었다.

“오늘... 온 침입자에 대해서... 에르미온 애스트리드님께 감히 여쭈러...”

머뭇거리던 마렌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에르미온의 가벼운 한숨소리가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머리를 짚은 채 어두운 낯빛으로 고개를 수그리고 있는 에르미온의 모습에 마렌은 어머니께 혼나는 아이처럼 그의 눈치를 보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돌로 된 벽에서 한기가 나오는 듯, 방이 유난히 서늘하게 느껴졌다.

“기억이, 읽히지도 않고 옮겨지지도 않았다. 그뿐이야.”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덤덤한 에르미온의 말에 마렌은 오히려 더욱 무덤덤하게 반응했다.

마렌은 제 군주가 입을 맞추었는데도 그 대상을 지하 감옥으로 옮겼다는 것의 의미를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그가 진실로 궁금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그럼, 그 후에 이어진 건...”

마렌은 자신을 새침하게 노려보는 에르미온의 눈길에 얼른 입을 닫았다.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해 물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것을 물은 것이 자신이 아니었다면 큰 벌을 받았을지 모른다는 것을 마렌은 잘 알고 있었다.

“그의 힘이 뿌리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만족하나?”

심통이 난 듯한 말투로 대꾸하는 에르미온의 모습이 왠지 우스워 마렌은 소리를 죽여 웃어 버렸다. 그러더니 문득 무언가가 생각난 듯, 그의 웃음이 멎었다.

“힘으로 엘프를 이기는 인간이라니요. 기억도 지워지지 않는데 그럼 그는 무엇이란 말입니까?”

이제 알았냐는 듯 면박을 주는 제 군주의 시선에 마렌은 머리를 긁적였다.

멋쩍은 탓인지 추운 탓인지, 온 몸이 오슬오슬 떨렸다.

“이제 알아봐야지...”

에르미온의 대답은 대답보다는 혼잣말에 가까웠다. 그의 눈빛은 어느새 창 밖의 하늘을 향해 있었다.

이미 그가 자신을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눈치 챈 마렌이 물러간 후에도, 에르미온은 그 자리에 붙박여 한참을 미동도 않은 채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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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1-18 02:42 | 조회 : 1,153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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