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하지 않는다. 이 자에게는.”
무언가 많은 요소가 생략되어 있는 듯한 말이었음에도, 뒤의 엘프들은 그 말에 크게 동요한 듯 보였다.
잔잔한 수면에 돌멩이를 던진 듯 고요 속에서 소란이 점점 번져나갔다.
그 모든 소란을 가만히 바라보던 그들의 왕은 살짝 쓴웃음을 머금었다.
웃고 있는 듯 보이는 눈에는 어두운 기운이 감돌았다.
“일단 지하로 옮겨라.”
나직하게 내뱉어진 말에 소란이 잠시 사그라졌다. 건장한 체격의 두 엘프가 무리 속에서 나와 루젠의 양 팔을 붙들었다.
루젠은 저항하지 않았다. 그들이 가는 대로 따라가는 모양새가 끌려가는 것 보다는 스스로 따라가는 것처럼 보였다.
엘프들의 왕은 창백해진 낯빛으로 그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가 엉거주춤 서있는 모양새가 불안한 듯 보였다.
이미 루젠에게 능력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성가신 일이었다.
그가 조용해지자 덩달아 나무처럼 뻣뻣이 굳어있는 제 수하들이 문득 눈에 띄었다. 왕이 명하기 전에 그들이 움직이는 것은 불경한 일이었다.
그들은 왕의 손짓 한번에 바람에 날려가는 나뭇잎처럼 여기저기로 조용히 흩어졌다.
흙이 발에 비비어져 나는 작은 소리들이 그쳐갈 때 쯤, 공터에 혼자 남아있던 그도 천천히 어딘가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