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외전 - 승현이와 아진이(1)

“아...”

학교 가기 싫다. 멍한 머리를 부여잡으며 침대에서 뒹굴 거리고 있던 아진이 속으로 투정을 부렸다. 창 밖에서 들어오는 밝은 햇살에 베고 있던 베개를 제 품에 꼬옥 안고 고개를 숙여 얼굴을 감추었다.

지이이잉-

“어?”

문자가 왔다. 승현이 형이구나. 아침부터 문자를 보내는 사람이 누군가 싶어 얼굴을 찡그리려던 아진이 활짝 웃으면서 벌떡 일어나 문자를 확인했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일어난 시간에 딱 맞춰서 문자를 보냈을까.

[승현이 형: 일어났니?]
[나: 방금요. 형은 안녕히 주무셨어요?]

올라가는 입 꼬리를 주체하지 못하면서 침대 위로 털썩 누워서 다리를 꼬았다. 시간을 살짝 확인해보니 다행이 5분은 더 뒹굴 어도 되겠다. 형에게서 답장이 바로 왔다. 그에 답을 하다 보니 순식간에 창이 가득 찼다.

[승현이 형: 응, 너도 잘 잤어?]
[나: 네~]
[승현이 형: 일어나기 싫다고 뒹굴 거리고 있는 건 아니지?]
[나: 헉; 어떻게 알았어요?]
[승현이 형: 그냥 감으로]
[나: 말도 안 돼. 형 출근 했어요?]
[승현이 형: 응.]
[나: 이렇게 일찍이요?]
[승현이 형: 실은 오늘 갈 곳이 있어서.]

아진은 순간 타자를 치던 손을 멈췄다. 갈 곳이 있다고... 오늘은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우울해지는 기분에 퍼뜩 정신이 들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긴 형은 바쁘니까. 음. 그러니까 어쩔 수 없지.

[승현이 형: 괜찮아?]

잠시 정신을 놓고 있는 사이에 문자가 날라 왔다. 다정한 사람이다. 배시시 웃으면서 괜찮다고 쓰는데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 옆에서 대화하는 것처럼 너무 자연스러웠다. 잠깐 문자를 멈췄는데도 무언가를 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문자했다.

[나: 뭐가요...?]

침을 꼴깍 삼켰다. 내가 너무 과민반응 하는 걸지도 몰라. 그냥 걱정하는 거겠, 바로 답장이 왔다. 아진은 제 속마음이 들킨 것 같아 지레 놀랐다.

[승현이 형: 너도 같이 가야 하거든.]

“에...?”

같이 가야 한다고? 왜? 의문에 휩싸였다. 당장 궁금증을 풀고 싶었지만 지금 씻지 않으면 아무리 가까운 학교라고 밥도 못 먹고 가야 할지도 모른다. 씻지는 못해도 밥을 못 먹는 것은 사양이었다. 호기심을 누르며 아진이 타자를 쳤다.

[나: 형, 잠깐만요. 저 씻어야 해서. 씻고 나와서 전화해도 돼요?]

바로 답이 올 것이라 생각해서 옷을 벗으면서도 핸드폰만 바라보았지만 화장실을 들어가기 전까지 끝내 답은 오지 않았다. 창문에 커튼을 드리운 아진이 들어가면서 생각했다. 안 되나보다.

승현은 지금 미칠 지경이었다. 아침부터 발기하게 생겼네. 눈꼬리를 사르르 접으면서 승현이 생각했다. 아, 문자 보내야지. 제 사랑스러운 연인이 옷을 벗는 것에 정신이 팔려 답이 늦고 말았다. 또 괜한 오해하지 않게 빨리 보내야겠다.

[나: 응, 해도 돼.]

때 늦은 문자를 보내면서도 승현은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옷을 벗으면서도 답장이 언제 올까 힐끔거리는 것이 너무나 귀여웠다. 새삼 승현은 아진이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만약 지금 아진이 제 앞에 있었다면 바로 덮쳐버렸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 크흑... 진짜... 일해야 하는데...”

귀여운데 섹시하네. 승현은 제 입을 가리면서 이 주체 못하는 웃음을 가렸다. 물론 가린다고 가려지는 웃음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한참을 웃던 승현은 스쳐지나가듯이 본 쇄골을 생각하며 나른한 한숨을 쉬었다.

아진이는 몸이 다 낫고 나서 바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괜찮다고 말했지만 이미 받은 것이 너무 많아서 죄송하다고 하면서 기어코 돌아가고 말았다. 사실 아예 여기서 살아도 된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자존심 강한 제 연인은 듣지 않을 터였다.

먹히지도 않을 괜한 말로 점수를 까먹을 생각은 없다. 그래서 승현은 그냥 깔끔하게 보내주었다. 다만 다치게 된 것은 이쪽 잘못이 크니 죄송하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가만히 제 눈을 들여다보던 연인은 그저 고개를 한 번 끄덕였을 뿐이었다.

현지인지 동생인 것을 알았을 때는 놀랄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그 뒤의 반응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라 신선했다. 동생 간수도 제대로 못 한다면서 한소리 할 줄 았았더만, 아니군 제 연인의 성격에 그럴 리는 없나.

어쨌건 마음에 아플 소리 하나 정도는 들어줄 각오는 했다. 이 바닥이 다 그렇듯이 말이다. 하지만 어떠한 원망도 분노도 까칠한 태도도 없었다. 단지 무언가 안타깝게 바라보는 눈빛이 걸렸지만 곧바로 살짝 안아오는 손길에 안심했다.

괜찮아요. 언제나 단정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다. 괜찮다고. 정말 그런가. 차마 물을 수 없는 것을 승현은 언제나 삼키고 또 삼킨다. 내가 안 괜찮아. 승현은 항상 그렇게 생각한다.

“음? 다 씻고 나왔...”

쿨럭, 아, 이거 진짜 위험한데... 어느새 터진 코피를 닦으며 승현이 당황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속옷만 입은 연인이 너무 예뻐서

씻고 나온 아진은 머리를 탈탈 털었다. 요즘 머리가 길렀는지 머리를 말릴 때 시간이 좀 걸렸다. 그래도 옷 입고 밥 먹다보면 다 말라있었지만. 팔뚝 위로 슬그머니 올라오는 닭살에 아직 따뜻한 손으로 연신 쓸어대면서 옷을 찾아 입었다.

너무 많이 먹어도 방해되니 아침은 간단히 먹기로 했다. 프라이팬을 꺼내 기름을 두르면서 냉장고에 잔반이 얼마나 남았나 생각했다. 그냥 냉장고 안에 있는 것만 꺼내 먹어도 되겠지만... 역시 따뜻한 반찬 하나 정도는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아, 전화!”

학교 갈 준비를 한다고 움직이다보니 형에게 전화한다는 것을 깜박했다. 계란을 깨서 프라이팬에 올린 뒤 잽싸게 침대에서 휴대폰을 가지고 왔다. 그리고 바로 형에게 연락하고 스피커를 켜 놨다. 계란은 벌써 다 익었다.

-응, 아진아.

신호음이 좀 오래간다 싶었는데 집중해서 일하면 그럴 수도 있지 라며 아진이는 자신을 다독였다. 저번에 형의 집(?)에 다녀온 뒤로 자꾸 이상한 상상이 늘어났다. 예를 들어 형이 싸우다가 피를 흘리면서 쓰러져 있으면 어쩌지... 하는 것 같은.

아진의 생각은 반은 맞았지만 둘은 평생 그것을 모를 것이다. 물론 싸우다가 그런 것도, 쓰러진 것도 아니었지만 승현은 쉴 새 없이 나오는 코피를 수습하다가 전화를 늦게 받고 말았다.

-미안해요. 형, 제가 등교 준비하다가 늦었어요.
-아니야. 벌써 일 하나 끝났는걸.

부하들이 밤새워 작성한 보고서를 힐끔 보고 바로 퇴짜를 준 승현이 입에 바른 말을 했다. 일 하나는 했지. 요즘 내가 너무 물러졌나. 애들이 일을 제대로 안하네. 상시 대기하고 있는 비서를 불러 보고서에 눈짓했다.

‘시부럴, 다 야근이구나.’

부랴부랴 달려온 비서는 침음을 삼켰다. 엄청난 상관을 둔 부하들의 말로였다. 제 상관은 인간이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살짝 미지근하다 싶으면 바로 퇴짜를 놓았다. 보고서 한 뭉텅이를 들고 나온 비서는 곧바로 울상을 지었다. 그놈의 돈이 뭐라고...

그러거나 말거나 승현은 제 사랑하는 연인과 대화하기 바빴다. 방금 문자로 했던 말을 반복하면서 오늘 학교로 데려가겠다고 말했다. 알바가 있다는 말에도 얼마 걸리지 않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전화가 끊어지고 아진은 그제야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이미 식어버린 식사였지만 형과의 통화로 좋을 대로 좋아진 기분에 느끼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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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2-27 19:45 | 조회 : 4,043 목록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이 마지막이네요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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