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외전 - 후회하는 남자

“당신 변했어! 변했다고!!!”

짜-악!

매서운 손길이 뺨에 가해졌다. 제현은 돌아간 고개를 되돌릴 생각도, 손길만큼이나 아픈 말에 대꾸할 생각도 없었다. 그저 무기력하게 눈만 한번 감았다. 떴을 뿐이었다.

아무런 반응이 없는 제 남편에 아내 진아는 지친 듯이 말했다. 이제는 이 공방도 너무 지겨웠다. 항상 그랬다. 저는 화를 내고 남편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것은 제 사랑하는 이를 대하는 태도는 전혀 아니었다.

“왜 아무 말도 안 해? 변명도 안 해? 당신 그 날 뒤로...!”
“백진아.”

흠칫, 진아는 뒤로 물러섰다. 그 날을 언급하자 자신의 남편이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탓이었다. 더 이상 말한다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듯이.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내가 뭐 못할 말 했어요?! 난 당신의 아내잖아! 그런데... 그런데...”
“…………”

그렇게 참으려고 했던 눈물이 흘렀다. 예전 같았으면 울지 말라고 다독여주었을 남편은 이제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그저 바라만 볼 뿐이었다.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처럼.

“이럴 거면, 이럴 거면 이혼해! 이혼하자고!!”

쾅-!!!

현관을 박차고 나왔다. 이제는 참을 수가 없었다. 자그마치 5년이었다. 5년 동안 남편은 단 한 번도 자신을 돌아봐주지 않았다. 남편이 감정을 내비칠 때는 일 년에 단 한 번. 그 날 뿐이었다. 이미 많이 늦은 시각에도 확연히 보일 정도로 우중충한 날씨가 제 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았다.

자신의 아내가 그렇게 나가고 나서도 제현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만 길게 한숨을 한 번 쉬고 거실 한 구석에 자리한 소파에 몸을 기대었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술병 중 술이 남은 것을 찾아 뒤적거리다 기계적으로 마셨다. 한참을 마셨더니 어느새 취기가 올라온 듯싶었다. 제현은 제가 이렇게 술이 약한 줄 오늘 처음 알았다.

“하... 아진아.”

이제는 불러도 대답해 줄 이가 없는데도 제현은 꿋꿋이 그 이름을 연신 불러대었다. 아진아, 아진아. 강아진... 시발.

약하게 욕을 읊조리며 얼굴을 덮었다. 면도도 하지 않아 까슬해진 턱이 거슬렸다. 아니, 그냥 그 아이가 없는데도 잘만 굴러가는 이 현실이 이 망할 현실이 거슬렸다.

[안녕? 새내기야? 이름이 뭐야?]
[강... 아진이요.]
[오, 이름 되게 귀엽네.]
[놀리지 마세요.]
[푸하핫! 너 귀엽다. 앞으로 나랑 같이 다니자. 야~ 얘는 내가 찍었다. 건들지 마!!]

아, 뭐에요. 선배. 아, 또 저런다. 어휴 불쌍한 새내기... 애가 곤란해 하잖아요. 익숙한 듯이 타박을 해오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도 그 아이만 보였다. 담담하게 말했지만 살짝 빨개진 귓가가 이 녀석 겉으로는 무뚝뚝해보여도 상당히 귀여운 성격이라는 알았다.

수많은 여자들이 제 곁을 지나갈 때. 그 아이는 항상 내 곁에 있었다. 여자에게 차이고 상처받았을 때도 그 아이가 위로해줬고. 곁에 없으면 허전한 마음에 실례를 무릅쓰고 데이트에 데려가고는 했다. 여자들에게 괜한 원망을 받으면서 그 아이가 욕을 먹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단지 자신만을 바라보는 단정한 눈동자가 좋아서. 그래서.

“이제 보니 난 쓰레기 새끼였네...”

얼마나 상처받았을까. 곁에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여겨서 더욱 그렇게 허무하게 내 곁에서 사라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더러워]

제가 마지막으로 그 아이에게 한 말이다. 아직도 상처받은 그 표정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그게 마지막일 줄 알았더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후회는 언제나 해도 늦었다.

“가스 불 좀 제대로 확인하지...”

화재였다. 그렇게 보내고 나서 걱정이 되어서 찾아왔는데 이미 너는 죽어 있다고 했다. 현장에 있던 구급대원이 무슨 관계냐고 묻는 말에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입만 벙긋거렸다. 이상한 사람이라는 듯이 쳐다보던 대원이 그냥 지나쳐갔다.

땅! 떼구루루... 팅-

힘없이 잡고 있던 술병이 기어코 떨어졌다. 볼품없이 구르던 병이 거실 바닥 여기저기에 흐트러져있는 술병들과 부딪히면서 겨우 멈추었다.

“아아,”

그러고 보니 자신의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다. 언제나처럼 제 겉모습만 보고 다가오는 여자들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그녀에게 관심이 간 이유는,

‘이름이... 거꾸로 하면 아진이네?’

병신 같은 논리였지만 이 이유 하나 때문에 사귀게 되었다. 하나도 닮지 않았다. 그냥 이름 하나 때문이었다. 이제 보니 자신이 그동안 만났던 여자들은 다 어디 한 군데가 아진이와 닮아있었다.

[당신, 그렇게 하다가는 망해. 마음 똑바로 정리해.]

언젠가 자신과 헤어지면서 어떤 여자가 한 말이다. 그동안 만났던 여자들과는 달리 굉장히 간단하게 헤어지자는 말을 전했다. 그러면서 아진이에게 잘 하라고 했다. 멍청했던 자신은 이 이상 어떻게 잘 해주냐고 대꾸했지만 여자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후회할 것이라고 말했다.

“씨발... 아진아...”

보고 싶다.

너무 취해서 비틀거리는 몸에 그냥 바닥을 설설 기어서 부엌으로 갔다. 언제나 겁이 나서 죽지 못한 자신, 망설이던 자신이 오늘따라 이렇게 자신감이 넘쳤다. 아니, 혐오감인가.

네가 죽고 나서야 깨달았다. 싫어하는 게 아니었어. 가지 마. 그렇게 상처받았다는 표정하지 말란 말이야. 오히려, 오히려...

“사랑해...”


[속보입니다. 오늘 밤 11시 반 경에 서울 **아파트에서 한 남성이 자살을 한 것으로 알려져... 목을 찔러... 이 남성은 평소에도....]

비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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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2-24 17:35 | 조회 : 4,148 목록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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