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외전 - 승현이와 아진이(2)

그런데...

“사, 상견례요...?”
“응.”

따라 오려고 하는 사대천왕을 간신히 따돌리고 형의 차로 도착한 곳은 전에 가봤던 형의 집, 아니 동네였다. 그래. 동네가 맞겠다. 도착했으니 내리자는 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내렸더니 바로 형의 폭탄 발언이 있었다.

“가, 갑자기요?”

빈말로도 싫다고는 안하는 아진이가 사랑스러워서 승현은 제 안쪽 살을 살짝 깨물었다. 그럼 내가 너를 그냥 놔줄 줄 알았어? 가둬버리고 나만 보고 싶은 것도 참는 마당에 이 정도는 해 줘야지

“괜찮아. 상견례라고 말은 했지만 그냥 소개만 하는 거니까.”

물론 허락을 받는 자리가 아닌 통보만 하는 자리다. 이미 제 아비도 어느 정도 말은 들었을 테다. 그래서 그냥 오늘 데리고 오겠다고 했고. 당황스러워 하는 모습이 귀엽다. 상견례라고 하니까 잔뜩 긴장하는 모습에 안아주고 싶었다.

포-옥

“형...?”

어, 저도 모르게 실행에 옮기고 말았다. 승현은 제 흑심을 숨기면서 퍽이나 다정하게 웃었다. 안심하라고 이미 아버지도 알고 계시고 그저 얼굴이나 보고 싶어서 오라고 하신 거니까 긴장하지 말라고. 새빨개진 귓가에 승현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내가 계속 같이 있을 거니까.”
“...고마워요.”

아진은 그 말에 안심했다. 형이랑 같이 있는 다면 괜찮을 거야. 아버님께서 이미 알고 계신다는 게 좀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어, 그런데 아버님은 자기 아들의 연인이 남자여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건가.

‘하긴... 이 세계관이 워낙 미쳐있어서 괜찮을지도 몰라.’

자신에게 달려들던 수많은 남자들을 생각하면서 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아진에게 들이대던 남자들은 사대천왕이나 승현 말고도 수없이 많았다. 의도치 않게 약한 모습만 보여줘 왔던 아진이지만 실제로 싸움도 꽤 했고.

따라서 느닷없이 덮치려고 달려드는 남자들을 제압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리고 살짝 기절시키고 자리를 피했다. 아마 승현이나 사대천왕이 그런 놈들을 하나하나 다 족쳤다는 것은 모를 것이다. 그들 사이에서는 그런 놈들을 먼저 잡는 것이 시합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어느새 아버님이 계시다는 방에 다다라 아진은 침을 꼴깍 삼켰다. 긴장된다.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가 물린 자리를 슬쩍 훑으며 깨물지 말라고 하는 승현에 어색하게 웃었다.

“아버지 접니다.”
“들어와라.”

‘우와- 목소리가...’

묵직한 저음이 방문을 뚫고 나왔다. 주저 없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간 승현이 들어가기를 살짝 망설이는 아진을 보다가 어깨를 잡아 끌었다. 힘없이 끌려간 아진은 그대로 승현의 가슴에 톡 부딪히고 말았다.

“엣,”
“괜찮아.”

형의 배려에 감동하는 것도 잠시 여기가 상견례 자리라는 것을 깨달은 아진은 퍼뜩 정신이 들어 화들짝 놀라면서 떨어졌다. 승현은 아쉬웠지만 그런대로 만족하며 자리에 앉았다. 아진은 슬그머니 눈치를 보다 옆에 찰싹 붙어서 앉았다. 승현의 입 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아이고, 아이고? 보자보자 하니까.’

승현의 아버지, 차진환은 제 아들이 하는 꼴을 보면서 어이없음을 금치 못했다. 아주 팔불출이 따로 없네 그려. 이미 보고는 받아서 자신의 아들이 얼마나 신경 쓰는 상대인지 알았다. 다만 그 이상 캐지 못한 것은 승현이 먼저 선수를 쳤기 때문이다.

[아진이, 건들지 마십시오. 조만간 제가 데리고 오겠습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더니.’

제 꼴이 딱 그랬다. 안 그래도 나이가 꽤 차서 더 늦기 전에 선을 보려고 했더만은... 쯧쯧, 저래서야 말도 못 꺼내겠구먼. 진환은 자신의 아들을 잘 알았다. 만약 힘으로 하려 치면 이빨을 들이 밀 거다. 이 아비에게도.

“험험, 그래... 네가 그 아이라고?”

헛기침을 해서 시선을 모은 진환은 과연 승현의 아버지인 만큼 진중한 인상의 사람이었다. 현가주인 그는 만약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이 아니었다면 승현과 형제로 착각할 만큼 잘생긴 사람이기도 했다.

“아, 네!! 강아진이라고 합니다.”

옆에 승현이 있음에도 막상 마주한 얼굴을 보니 자신감이 사라진 아진은 점점 목소리를 줄여갔다. 솔직히 살짝 무서웠다. 승현이 제 연인의 손을 잡으며 아버지를 향해 눈살을 찌푸렸다. 졸지에 나쁜 놈이 돼버린 진환이지만 이런 쪽으로는 둔한 진환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뭐, 잘 지내봐라. 둘이. 저-기 어디냐. 안쪽에 집하나 줄 테니까.”

아무렴 상관없겠지. 둘이 저렇게 좋다는데. 사업 쪽으로는 팽팽 돌아가는 진환 머리는 이럴 때는 참 단순했다. 그런데 새아가가 참하게 생겼네. 진환이 입맛을 다셨다. 흠... 10년만 젊었어도 내가 가지는 건데 말이야.

“네?”
“고맙습니다. 아버지. 그럼 이만.”

갑작스러운 진도에 깜짝 놀란 아진과는 달리 무언가 거슬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승현은 재빨리 대화를 마무리하며 아진을 데리고 나가려고 했다. 허, 저놈 보게 진환은 혀를 끌끌 찼다. 그렇게 고생~고생하면서 키워놨더니...

“아가.”
“ㄴ, 네?”

저요? 아진이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물었다가 금방 또 입을 꾹 다물었다.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어... 진환은 알만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 저렇게 토끼처럼 하얗고 조그만 녀석들이 있었다.

“오늘 자고 가거라.”
“자, 자요?”
“그래.”

이만 나가보거라. 손을 휘휘 젓는 아버님에 알바 있다는 말은 끝내 하지 못하고 나온 아진이 울상이 되었다. 그 모습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지켜보던 승현은 준비된 방에 들어오자마자 끝내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리고 말았다.

“웃지 마요...”
“아니... 큭큭큭, 아, 미안. 근데,”

하하하. 승현이 계속 웃었다. 아진은 불만 어린 얼굴로 입술을 삐죽였다. 형은 가끔 너무 짓궂어요. 아진이 말했다.

“더 짓궂은 일 해줄까?”

네...? 아진이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그의 입이 막혔다. 툭툭 제 가슴을 두드려오는 손길에 승현이 입술을 부비며 웃었다. 이거 밀어내는 거야. 아니면 재촉하는 거야.

“혀, 형!”

기어코 제 입술을 때어낸 아진이 벌게진 얼굴로 입을 가렸다. 이 양반이 정말 뭐하는 거야! 지금 나 화났어요. 승현이 웃으며 이마를 맞대었다.

“형 아니고 자기.”

자기라고 불러봐.

“!!!”

오, 또 빨개진다. 더 이상 붉어질 것도 없다고 생각했던 얼굴이 더욱 달아올랐다. 농익은 딸기처럼. 흠... 조금만 맛볼까. 양심 따위는 개나 줘버린 승현이 생각했다....

“자, 자기-”

...가 고쳐먹었다. 그래. 그래도 저렇게 까지 노력하는데 내가 참아야지. 2년, 아니 1년 반만 기다리자. 눈을 꼭 감고 매혹적인 붉은 입술로 오물오물 말하는 아진이 너무 사랑스러워 승현은 바로 키스를 감행했다.

‘뭐, 키스 정도로 참아주지.’

아진이 알았다면 기함할 생각을 아무렇지 않게 하면서 승현이 빙긋 웃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진은 그저 언제나 적응 안 되는 잘나빠진 키스에 정신이 없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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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2-27 19:46 | 조회 : 3,937 목록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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