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외전 - [차승현]의 시각(2)

“무슨 일 있었니?”
“아, 하하하. 왔어요?”
“방금.”

저번 일이 신경 쓰이는지 눈을 못 마주치는 모습이 신선했다. 그래. 신선하다. 이렇게 바로바로 솔직한 반응이 나오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칵테일을 건네주는 것에 고맙다 말하려고 했는데 긴장했는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을 해버렸다.

괜찮다고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말이 또 끊겼다. 하하하, 시발 서준 새끼. 너 저번에 최전방에 나갔다가 허벅지에 총 맞았다더니 아직도 정신 못 차렸냐. 마음에 안 들어서 쳐다보니 갑자기 일이 생겼다며 나가버렸다. 그리고 아진이도 가버렸다.

‘오늘 밤새 굴려야겠군.’

오기를 기다리는데 이상하게 오래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원래 평소 서빙 하는 데 이렇게 까지 늦지 않을 텐데? 걱정이 돼서 와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웬 멍청해 보이는 녀석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있었다.

아진이가 반가운지 웃으며 쳐다보았지만 저렇게 아무에게 웃어주고 다니니 그런 일을 당하지 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었다. 괜한 질투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나보다. 괜찮다고 말리는 아진이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봐주기로 했다.

어차피 이놈은 오늘부로 끝이니까. 뭐, 아진이 앞에서는 다정한 형처럼 있어야지. 겁먹어서 도망가 버리면 어떡해. 일이 대충 마무리 되고나서도 이렇게 맹한 녀석을 보니 한숨이 나왔다.

“에... 그러니까. 음... 도와줘서 고마워요?”
“넌... 정말,”

그런데 어쩌겠나. 이 녀석을 좋아하게 된 내가 잘못이지. 그리고 봐줄 녀석이 생겼으니 오늘은 좀 일찍 가야겠다. 그래도 솔직하게 아쉬워하는 모습이 귀여워 이제는 항상 가지고 다니는 사탕을 손에 올려주었다. 아, 좋아한다. 귀엽네.

저번에 작은 아버지의 배신으로 생긴 일을 정리하고 오느라 좀 늦었더니 아진이가 귀여운 말을 하고 있었다. 늦어서 걱정이 되었나보다. 근데 오늘 상태가 좀 이상해 보이는데.

“서운해? 좋아하는 사람을 못 봐서?”
“네-? 아니, 서운한 건 맞지만 좋아한다니, 저, 아니 싫어한다는 건 아니지만.”
“그럼, 좋아하는 거지.”

그렇지만 왜 망설이는 거야. 싫어하지 않으면 좋아하는 거지. 평소 같았으면 가볍게 쓰다듬었을 머리를 괜한 심술에 크게 흐트러뜨리고 말았다. 그래도 조금 미안해져서 두어 번 톡톡 두드려 주었다.

“승현이 형!”

이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냥 반가워서 웃는 녀석이 야속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헛웃음이 나왔다. 아마 현우 녀석이 일은 제대로 하고 왔냐고 묻지 않았으면 엄청 놀렸을 지도 모르겠다.

“아진아? 괜찮아?”
“아, 네?”
“너 오늘 상태가 좋지 않아보여서.”

너 빨리 보려고 무리해서 일 끝마치고 오니 너는 정신을 놓고 있고. 몸이 좀 안 좋은가 걱정이 되었다.

‘걱정이 된다고?’

속으로 비웃었다. 내가 누군가를 걱정을 한다니 이것만큼 웃긴 일이 없었다. 평소 잔소리가 많지만 걱정이 평소 걱정이 많은 현우 녀석이라면 모를까. 그래서인지 녀석이 내가 데려다 주겠다고 하니 비웃는 듯이 말했다.

“그래주면 고맙지. 이왕이면 병원도 데려가 주지 그러냐.”
“그래.”

이런 모습은 처음인 현우 녀석이 당황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머리를 짚어보니 이미 머리에서 열이 나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놀라면서 피했을 녀석이 배시시 웃으면서 볼을 비볐다.

다른 녀석들도 이 모습을 보았을 텐데. 주위에서 구경하는 놈들을 슥 둘러보면서 제압한 뒤에 차에 대려다 주었다. 역시 한계였는지 금방 잠이 들고 말았다. 몇 번 불러보았지만 크게 색색거리는 것이 이미 깊이 잠든 것 같았다.

‘이거, 깨울 수도 없고 병원은 아직 눈에 띌 거고. 역시 집으로 데려가야 하나.’

몸을 피하는 용도로 쓰려고 했던 집을 이렇게 쓸 줄은 몰랐다. 물론 제 용도로 쓴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말이다.

일단 침대에 누이고 열을 재보았다. 38도라. 높은데. 아픈 녀석에게 아무거나 먹일 수는 없으니 최대한 빨리 장을 보고 나왔다. 이 때 옷도 같이 샀어야 했는데. 아, 물론 덕분에 좋은 광경을 봤다.

급한 데로 열은 내려야 하니 해열제를 먹이려고 했는데 의식이 없어서 그런지 삼키지를 못했다. 아, 진짜 곤란한데.

잠시 고민을 하다가 입안에 약과 물을 털어놓고는 입을 맞추었다. 미안해. 그렇지만 일단 네가 나으면 사과를 하던 할 테니까. 약부터 먹자.

꼴깍,

“으으응~”

약을 무사히 삼켰지만 아이의 입술 주위로 약간 흘리고 말았다. 입술이 촉촉한데다가 게다가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신음소리에 점점 참기가 힘들었다. 땀도 많이 흘려서 갈아입혀야겠는데.

‘최악이군. 아픈 사람을 상대로 발정하다니. 그것도 미성년자에게.’

어느새 볼록해진 바지춤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래서 어떻게 간호하려고. 그 날, 밤새 간호하면서 애국가를 그렇게 불렀다. 팔자에도 없는 애국자가 되겠다.

그렇게 고군분투를 했더니 다행히 많이 괜찮아졌다. 물론 처음에 바닥에 쓰러졌을 때는 놀랐지만 음식도 곧잘 하는 것을 보니 다행이다 싶었다.

약을 먹였다고 했을 때는 좀 놀란 것 같았지만 별 의미가 없다고 애써 변명했다. 게다가 그 나이에 키스정도는 해봤을 거라고 생각했고.

의외로 음식을 제대로 할 줄 알았다. 요즘 이렇게 제대로 된 가정식을 먹은 게 오랜만이라서 그런지 집안에 사람 사는 향기가 나서 그런지. 장 보면서 앞치마도 사올걸 그랬다.

밥을 먹다가 동생이야기가 나왔는데, 이 녀석도 남자구나 싶었다. 관심 가지지 마. 괜히 질투가 났다. 조금 치졸해 보이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어쩌겠는가.

속마음을 숨기는 것은 자신 있었는데 이 아이와 함께 있다 보면 평소의 내가 아니게 되었다. 젠장, 서준이 녀석이 보면 평생 놀려먹겠군.

“걱정하지 마세요. 저 좋아하는 사람 있으니까.”
“뭐...?”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이다. 물론 그 사람이 나라면 좋겠지만 저 아이가 나를 좋아할 리는 없고 아마 좋아한다고 해도 동경일 것이다. 어른에 대한. 그 아이가 좋아한다는 사람에게 숨길 수 없는 질투가 일어났다. 정신 차려라. 상대는 미성년자다.

밥도 해주었는데 설거지 정도는 할 수 있다. 음. 총에 기름을 먹이는 것처럼 문지르면 될까. 의외로 별거 아니군. 하나의 실수가 없게 천천히 하고 있는데 아진이가 갑자기 폭탄 발언을 했다.

“형,”
“응?”
“저 그게 첫 키스 였어요.”

쨍그랑-!

“형은 괜찮아요?”
“아니.”

여상하게 묻는 것이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나 보다. 아니, 기분이 좋기는 한데. 애가 미성년자라 너무 죄책감이 들어... 사람을 팰 때도 느껴보지 못한 감각이었는데. 이게 바로 죄책감이구나. 내 손을 살피려 잡아오는 손이 부드러웠다.

“너 괜찮냐고.”
“네?”

내 얼굴을 바라보는 녀석이 여전히 맹한 표정을 하고 있기에 한숨이 나왔다. 남은 진지하게 해놓고 자기는 나 몰라라 라니. 설마 다른 사람에게도 이렇게 행동하는 것 아니겠지. 너무 무방비하다.

“너... 첫 키스... 라며.”
“아,”

그제야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나 보다. 드디어 기억해주는 구나 싶었더니. 그 뒷말이 또 마음에 안 들었다.

“음. 어, 아, 하하하. 괜찮아요. 아마도. 어쩔 수 없죠. 기억에도 없는데요. 뭐.”
“기억에 없어?”
“네. 그러니까 없는 셈 쳐요. 형도.”

애써 웃어 보이는 것이 눈에 보이는데 없는 셈 치라니. 정말 바보 같은 녀석이다. 그동안 내 쪽에서 다가간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이 아이는 매번 내 예상을 빗나갔다.

“싫어.”
“형...?”

그리고 이젠 내 마음대로 하겠다. 하는 행동이 하나 같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가만히 내버려 뒀더니 이제는 내가 못 참겠다.

놀랐는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는 데 동그랗게 뜬 눈이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다. 처음이라더니 거짓은 아니었나보다 눈을 감으라고 하니 말도 잘 들었다. 그리고 절로 입을 열어주니 더 흥분하게 되었다.

“으읍-!”

도망치려 하는 것을 막으니 넘어지지 않으려 목에 매달렸다. 따뜻한 입안이 생각보다 더 좋았다. 살짝 힘겨워 하는 모습이 사랑스러워서 가만히 등을 쓸어주었다. 하지만 잠시 떨어져야했고. 아진이를 배려하기 위해서 침대로 장소를 옮겼다.

최대한 조심스러운 손길로 눕혀주었지만 아까 잡아먹을 것 같았던 키스에 겁이 났는지 입술을 오므리는 것이 보였다. 괜찮다면서 아이가 알고 있는 다정한 모습으로 살살 달랬다.

다행히 금방 긴장이 풀려서 기분 좋은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는데, 굉장히 감도가 좋은 몸인 것 같았다. 미성년자라서 더 이상 진도를 나가지 못하는 게 아쉬웠다.

계속된 키스에 힘들어 하는 것이 보여 놔주었건만 무슨 생각인지 무릎을 대고 일어나더니 내 입술을 핥았다. 놔주려고 했는데 이건 네가 자초한 거라고 애써 변명하며 달려들었다.

부끄러운 지 한 번 더 하려고 하자 화장실로 도망가 버려서 웃음을 흘렸다. 그것보다 나도 꽤 급한데 말이지. 정신없는 틈이라서 발기한 것을 눈치 채지 못해서 다행이다. 만약 알았으면 더 기겁하면서 당장이라도 집에서 나갔을 것이다.

근데 안에 옷 없을 텐데? 일단 입을 만한 것이 있나 싶어서 살펴봤더니 역시나 내 옷밖에 없었다. 눈대중으로 봐도 체격차이가 나서 입기 힘들어 보이는데, 어쩔 수 없이 내 옷이라도 건네 줘야 하나 라는 생각으로 방으로 가려는데,

어제 입었던 셔츠가 화장실에 걸려 있었는지 그것을 입고 나온 것이다. 따뜻한 곳에서 방금 나와서 그런지 붉게 상기되어 있는 얼굴, 촉촉하게 젖어있는 갈색 머리카락, 머리에서 떨어지는 물에 젖어 점점 속이 비치는 몸. 아슬아슬하네.

아진이가 코에서 피가 난다고 할 때까지 정신을 못 차렸다. 가까이 오지 마. 지금 오면 덮쳐버릴 것 같으니까. 진짜 가끔 일부로 그러는 거 아닌지 의심 될 때가 있다.

게다가 내가 쓰는 제품을 썼는지 같은 향이 나는 것이 사랑스러워서 말이다. 이렇게 보니 마냥 귀여워 보이던 아이가 너무 야했다. 미성년자에게 발정하다니.

내 억지에도 얌전히 들어가 준 아이 덕분에 화장실에서 결국 진정시켜야 했지만 여기저기서 아진이의 향이 나는 것 같아 한참 뒤에야 진정 할 수 있었다. 요즘 너무 쌓였나. 확실히 아진이를 만나고 나서 자중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아-”

겨우 진정하고 머리를 말려주려고 하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불 속에 있는 작은 목이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다. 추운가 싶어서 봤더니 보이는 새하얀 목덜미에 그냥 눈을 꼭 감고 머리나 말려주고 말았다.

‘빨리 옷을 사와야겠네.’

옷을 사주니 갈아입고 나온 아진이가 설거지를 끝내더니 자신은 학생이라 가야겠다고 그랬다. 어제 열이 높았는데 괜찮을까 싶어 쉬는 게 낫지 않겠냐 싶었는데 책임감이 강한지 부득불 가야겠다 우겨서 그냥 집까지 데려다 주고 말았다.

그리고 차에 내려서 환하게 웃는 녀석이 왠지 괘씸해져서 약간 심술을 부리고 말았다. 가벼운 버드 키스였지만 사이드 미러로 보이는 맹한 모습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푸핫-! 귀여워.”

오랜만에 진심으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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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2-23 19:50 | 조회 : 3,970 목록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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