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외전 - [차승현]의 시각(3)

시발, 근데 헤어진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런 일을 당한 거야? 정말 우연이었다. 평소와 같이 서류를 처리하며 혹시 모르니까 아진이를 찾아가볼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비서 녀석이 와서 보고한 내용을 듣고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다.

“도련님. 방금 연락이 왔습니다만. 현지인 아가씨께서 3조 말단 녀석들 몇을 데려갔다고 합니다.”
“현지인이?”

현지인은 새어머니가 데리고 들어온 아이였다. 제 어미의 성을 따랐기 때문에 아비의 성을 따른 저와는 성이 달랐다. 물론 서로 어미도 달랐지만 말이다.

어쨌든 저와는 아무 상관없는 아이라 생각해서 적당히 상대해 주고 신경 끄고 있었는데 이렇게 마음대로 사람을 데려다가 쓰다니... 애초에 그렇게 사람을 쓸 일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는데. 무슨 생각인가 싶어서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그런데 왜 이제야 보고가 들어왔지?”
“그쪽에서는 아가씨의 지시라서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그리고 상대가 고등학생이라고 합니다.”
“고등학생?”

요즘 들어서 고등학생이랑 많이 부딪히는 것 같다. 설마, 아니겠지 그 많은 고등학생 중에서 그 아이일 리가 없지. 그러나 언제나 불안감은 적중한다.

“예. 이름이 강아진이라고 하더군요. 아가씨와 같은 반에,”
“갈색 머리와, 갈색 눈동자?”
“아십니까?”
“시발, 당연히 알지! 당장 차 준비시켜!!! 그쪽으로 안내해!”

평정심을 잃었다. 젠장, 젠장, 젠장. 배때기에 칼이 쑤셔졌을 때도 이렇게 당황하지 않았는데. 실수다. 평소의 나와 같지 않게 평범한 사람처럼 행동한 것이 실책이었다.

그냥 보통 사람처럼 하나하나 알아가고 싶어 일부러 뒷조사도 안하고 미행도 안하고 감시도 안했는데, 그냥 내 식대로 해야 했었어! 일단 아진이부터 되찾고 생각한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현지인 몫으로 떨어질 한 호텔이었다. 성인이 되면 받을 예정이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멋대로 행동하다니. 숨겨진 통로를 통해 지하로 내려가면서 아진이가 무사하기를 빌었다.

빌었다. 빌었는데,

“승현이 형...”

얼굴 여기저기가 찢겨서 피가 배어나오고 옷이 벗겨진 채로 강간을 당하기 직전이었다. 옷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살갗이 심하게 멍들어있었다. 다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일단, 아진이부터 챙겨야 했다.

“그만,”

현지인을 뒤로 물렸다. 아직은, 아직은 때가 아니다. 내 목소리를 듣자 감기는 눈을 애써 들어서 나를 쳐다보는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웠다. 금방이라도 꺼질 듯 한 모습에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불렀다.

“아진아.”

화가 났다. 화가 났지만 아진이가 먼저였다. 한숨을 쉬면서 최대한 냉철하게 생각하려고 애썼다. 치료가 먼저다. 옷을 정리해주며 밧줄을 풀어주었다. 나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이가 이렇게 심한 짓을 당하다니 걱정이 되었다.

제 어미가 조금 사랑받는다고 이렇게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다니. 감히 내 것에 손대면 어떻게 되는지 알게 해주지. 이미 현지인은 관심 밖이었다. 무생물을 보는 듯 한 얼굴로 쳐다보니 털썩 주저앉았다.

안 그래도 짜증나는데 이제는 별게 다 와서 소리를 질렀다. 고등학생치고는 꽤 괜찮은 녀석들인 것 같았는데. 아직 어린 것이 눈에 훤히 보였다. 이젠 대꾸하는 것도 귀찮아 아랫것들을 시켰다.

차 안에서 자책하는 나를 단순한 말로도 끌어안아주는 아이에게 이제 난 이 아이가 아니면 안 되는구나 하고 깨달았다. 푹 자라면서 편하게 고쳐 안았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삑-

“정리는 끝났나?”
[일단은 끝났습니다.]
“일단?”
[알고 보니 그 고등학생들 중에서 꽤 하는 분들이 계시더군요.]
“흠... 그럼 그 녀석들 것 까지 해서, 가져와. 먼저 아진이를 최우선으로 하고.”
[네.]

비서의 전화를 끊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아진이는 괜찮다고 했지만 나도 역시 어쩔 수 없는 녀석이군. 사랑하는 사람의 뒷조사를 하다니. 절대 아진이는 모르게 해야겠다.

이번에는 본가로 데려왔다. 아무래도 치료하기에는 본가가 더 적합할 것이다. 웬만한 대학 병원보다 더 잘 되어있으니까. 지키기에도 효율적이고.

치료를 끝내고 사흘 째. 오늘도 잠이든 것을 확인하고 나왔는데 잠시 나갔다 온 사이에 일어나서는 쓰러질 뻔했다. 너무 자주 쓰러지는 같은데. 방 안에 카메라를 설치해서 다행이었다.

죽을 먹이고 치웠는데 씻고 싶다면서 혼자 화장실로 들어갔다. 일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이가 혼자서 괜찮을까 싶었는데 어찌나 단호한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을 닫아버렸다. 좀, 상처다.

죽을 잘 먹는 것을 보니 다행히 가져온 정보는 정확한 것 같았다. 다음에는 뭘 먹여야 하지. 딱히 가리는 것은 없는 것 같았는데도 좋아하는 걸로 먹이고 싶었다.

근데 잘 먹어놓고 왜 나처럼 되고 싶다는 무서운 말을 하는 거지? 나도 모르게 기겁을 하면서 말렸다. 물론 총을 들어도 섹시.. 아니 이게 아니라 그런 위험한 일을 시킬 수 없지.

또 다시 졸린 것인지 하품을 하는 것에 좀 더 재웠다. 특히 하품 하고 나서 무슨 질문에도 네 하고 대답하기에 잠이 오는 것을 확신했다. 조금만 잘게요 하면서 이불 속으로 꼬물꼬물 들어가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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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2-23 19:52 | 조회 : 4,069 목록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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