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외전 - [차승현]의 시각(1)

“아진아, 일어나야지.”
“으으응~ 형, 조금만요오-”
“큭, 그래... 조금만 더 자.”

침대 위에서 꼬물거리는 사랑스러운 제 연인을 보았다. 작고 귀여운 아이다. 금방이라도 달려들고 싶은 것을 그동안 수련했던 것을 생각하며 겨우겨우 참았다.

처음 만났을 때는 그저 예의가 바른 학생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조그만 디저트 하나에 그렇게 행복한 미소를 지을 줄은 몰랐다. 정말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몇 개라도 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보는 사람도 즐겁게 해주었다.

그래서 평소답지 않게 번호를 주는 행동을 하고 만 것이다. 주고 나서 아차 하기도 했지만 저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말았다. 학생에게 무언가 받을 생각도 없었고 말이다.

그런데 현우 녀석의 가게에서 만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깔끔한 정장을 입고 있어서 훨씬 성숙한 분위기였지만 귀여운 것은 변함이 없었다. 깜짝 놀라서 디저트 이름을 크게 불렀을 때 소리 내서 웃고 싶은 것을 겨우 참았다.

시무룩해져서는 사과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여 토닥여 주고 싶었지만 번호를 주었다는 말에 흥분한 현우 녀석 때문에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그래도 도련님이라고 부르지 않아서 다행인 건가.

일의 진척을 물어보려 직접 나선 건데 의외의 수확이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조금 더 있어도 재밌겠다 싶었다. 오랜만에 관심이 가는 아이가 생겨서 말이다. 살짝 어색해하는 것이 보여 일단 서두를 내뱉었다.

“일단 주문부터 할까요?”

칵테일을 만드는 동안 여상하게 대화를 진행했다. 아마 주의가 분산되니 말하는 것도 편안했을 터였다. 이름이 강아진이라고 말하면서 살짝 눈치를 보는 것이 너무 귀여워서 순간 끌어안을 뻔했다. 칵테일 바가 둘 사이를 가로막지 않고 있었다면 당장이라고 그렇게 했을 것이다.

승현이 형이라고 불러보라고 시키니 우물쭈물하면서 선뜻 부르지를 못했다. 그 모습이 오히려 더 곤란하게 만들고 싶다는 것을 모르는지... 나도 모르게 놀리는 말투로 말하고 말았다. 얼굴이 빨갛게 되면서도 승현이 형, 하고 부르는 것이 사랑스러웠다.

“앞으로 자주 와야겠네.”

뒤늦게 온 현우가 자초지종을 듣더니 한숨을 쉬었다. 아마 우리 쪽 일과 관련 되었을까봐 걱정이 되었나보다. 현우 녀석이 이렇게 관심을 가지는 상대도 꽤 오랜만이다 싶었다. 그 만큼 이 아이는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었다.

일주일에 3일을 일한다고 들어서 그 때마다 찾아오게 되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도 그 아이를 바라만 보고 있어도 즐거웠다. 무표정한 얼굴이 나를 보면 무방비하게 풀리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저, 그런데 형,”
“자~ 기야!”
“윽!”

또 어떤 말을 해서 나를 즐겁게 해줄까 기대하고 있었는데 지저분하게 흔들리는 미역머리 하나가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 그리고 그 미역머리가 감히 아진이 앞에서 내 욕을 하려고 했다. 짜증나는 미역 같으니라고. 최전방으로 보내서 굴려버려야겠다.

“아니, 네가 여기는 어쩐 일이야...세요?”
“일단... 우리 아진이부터 놓고 이야기하지?”
“어헉! 그럼! 그래야지!...요.”

감히 아진이를 껴안아? 나도 못해봤는데. 치졸한 질투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왠지 내 것이 침범당한 기분에 짜증이 났다. 이제는 익숙한 웃음을 지으면서 눈치를 주니 적어도 멍청한 놈은 아니니 금방 떨어졌다. 그래도 넌 최전방이야.

“아진아 괜찮아? 이 변태가 혹시 너한테 무슨 짓 한 건 아니야?”

상습범인지 현우 녀석이 와서 무슨 짓을 했냐고 물었다. 어떤 대답을 할지 궁금한 걸. 내게 이야기 하는 것을 보니 마냥 순둥이 같더만은, 칵테일을 한 모금하면서 귀를 기울였다.

“서준 형이...”
“그래, 이 새... 아니 얘가.”
“저를”
“그래 너를. 뭐.”

아이가 상큼하게 웃었다.

덮쳤어요

“그래 덮쳤...!? 뭐-!”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무해하게 웃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생각보다 이 아이, 성격 있었다. 더 마음에 드는 걸?

서준이 물러나고 상황이 정리된다 싶었더니 현우 녀석이 망설이다가 아진이에게 따라하고 한 말이 또 가관이었다. 평소에도 애들에게 약하다 싶더니 이렇게 터지는 건가.

“자, 따라해 봐. 싫어요, 안돼요, 이러지 마세요.”
“싫어요, 안돼요, 이러지 마세요...?”
“그렇지! 다음에 녀석이 또 그러면 이렇게 말해.”

그걸 또 따라하는 녀석은 뭐야. 절로 웃음이 나왔다. 원래 이렇게 웃음이 많은 성격도 아니었건만... 억울한 듯이 바라보기에 한 마디 더 보탰다.

“난 해당 사항 안 되는 거지?”

아, 형~ 저 애 아니에요-

귀엽다. 더 놀리고 싶지만 시간이 다 되었다. 요새 규칙적으로 시간을 뺐지만 그만큼 일은 늘어나서 머리가 아파왔다. 특히 여기저기서 배신의 조짐이 보여 더욱 성가신 부분들이 많았다.

가야겠다는 말에 잔뜩 아쉬워 보이는 얼굴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아쉽냐고 묻는 말에 부끄럽지만 솔직하게 말하는 모습이 예뻐 보였다. 평소에 접대 받을 때 아양을 떠는 여자들과는 달리 참 순수한 아이였다.

그래서 기분이 좋았고 부드러워 보이는 갈색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선물로 사탕을 주었다. 말 잘 듣는 아이에게는 선물을 줘야지. 깜짝 놀란 것 같은 모습에 마음에 들지 않냐고 살짝 시무룩한 모습을 보였더니 또 금세 반응하면서 좋아한다고 고백해 오는 게 귀여웠다.

“아뇨! 아니에요! 절대! 저 진짜 좋아해요! 형!”

나를? 하고 장난 반, 진심 반으로 물어보려고 했는데, 전화가 왔다. 네 녀석도 서준이 자식이랑 같이 최전방으로 보내버리겠다. 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심각한 일이었다. 잠깐 풀어줬다고 작은 아버지라는 사람이 배신을 때렸다.

아진이를 의식하며 최대한 매너 있게 전화를 받았다. 갑작스러운 존대에 부하가 당황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그 녀석들이 당황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내 관심은 여기 있는데.

통화가 끝나고 멍하니 나를 바라보는 아이가 귀여워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요즘 확실히 웃음이 많아졌다. 아마 나를 야근하는 직장인으로 생각하는 지 굳은 결심을 한 표정으로 안녕히 가시라고 했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그만,

“형도 진짜 좋아해. 아진아.”

진심을 말하고 말았다. 속삭이고 지나간 귓가가 서서히 빨개지는 모습이 너무 달콤해 보였다. 시간만 충분했다면 맛을 보았을 것을... 차를 타면서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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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2-23 19:49 | 조회 : 4,340 목록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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