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살려주세요

“아진아!”
“흑-!”

누군가 머리를 잡아당겼다. 눈가는 가려져 있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주위에서 살짝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닌가? 아까 마셨던 약 때문인지 머리가 어지러웠다.

‘의자에 묶여 있는 건가.’

팔걸이가 없는 의자에 양 발목은 의자 다리에 사이좋게 묶여있고 손마저 뒤로 돌려 묶여있다. 심지어 입도 막혀있다니 이것 참, 더 나쁠 것도 없네.

“깼어?”
“읍-!”
“에이~ 모른 척 한다. 섭섭행! 나라구 지인이~ 현지인!”

아니, 풀어줘야 말을 할 거 아니냐! 젠장, 설마 했지만 진짜로 여주일 줄이야. 소설에서도 약간 미친년 같았는데 이거 실제로 겪어보니 정도를 넘었다. 뭔가 윤슬우 급으로 미친것 같네.

아차, 입을 풀어줘야 말을 하지? 라면서 그제야 큰 것을 깨달은 듯 말하던 여주가 입을 막고 있던 천을 풀어줬다.

“이게 무슨 짓이지?”
“어머? 놀라지도 않네? 뭐, 이런 점도 좋은 거지만.”
“………”
“음... 재미없어! 그래도 뭐, 일단 대답은 해줄게. 난 널 아끼니까.”

얼굴을 찡그렸다. 내가 물건도 아니고, 여주가 잡고 있는 내 머리카락이 점점 더 세게 당겨지면서 두피가 아려왔다. 좀 놓고 말하지. 여주의 목소리가 가까워졌다.

“아진아, 나는 널 보자마자. 네가 나의 왕자님이라고 생각했어!”

망상이 폭발하는 여주다. 뭐래

“네가 날 구해줬을 땐, 우린 운명으로 묶여있던 거야!”

아닙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말 이상하게도, 넌 내게 관심이 없더라?”

목소리가 음산하게 깔렸다. 거야- 난,

“그리고, 사대천왕은 갑자기 내가 아무런 관심이 없어졌어!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내게 노든 것을 해줄 것처럼 그러더니.”
“………!”
“이상하지? 왜 그랬을 까. 갑자기.”

눈을 가렸던 천까지 풀어주면서 여주가 내 눈을 마주봤다. 검은 눈동자에서 일렁이는 광기가 얼른 이 자리를 피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니 풀어줘야 도망가든지 할 거 아니야!

“너 때문이잖아-”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난 그 녀석들에게 관심 없어.”
“나도야.”

단호하게 말한 여주가 내 허벅지 위로 올라와 깔고 앉았다. 주위에서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렸지만 우리 둘 중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닥쳐- 이 쓸모없는 것들아.”

음, 나만 신경 쓰지 않았나보다. 인상을 무섭게 팍 찡그렸던 여주가 나를 보더니 다시 예쁘게 웃으면서 내 쇄골을 따라 쓰다듬었다.

“그럼 왜,”
“말했잖아?? 난 널 원해. 그런 미친놈들은 줘도 안 먹어, 물론 이용해 먹기는 좋겠지만.”

원래 이런 인물이었나? 머리가 복잡해졌다. 실제 소설에서 여주는 그냥 백치미가 아주 돋보이던 그냥 바보였다. 좋게 말해서 순진한 바보? 하지만 남주들의 후광으로 잘 먹고 잘 산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난 그런 거 없어도 되거든. 근데 너는 나 없이도 괜찮나봐. 나는 아닌데.”
“윽-”

머리가 뒤로 확 젖혔다. 아오, 그만 좀 당겨! 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이 미친 여주가 무슨 짓을 할지 몰라. 그냥 입을 꾹 다물었다.

“좋아해, 아진아. 나랑 사귀자~ 응?”
“…………”
“대답해봐~ 좋지? 응?”
“…………”
“대답해!!!”

찰싹-!

뺨 맞았다. 그럼에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자. 초조한 목소리로 대답을 재촉하면서 내 멱살을 잡아왔다.

“왜, 대답을 안 해? 싫어?”
“싫어.”
“아, 그래?”

담백하게 말하던 여주가 갑자기 천천히 옷을 벗었다. 미, 미친!!! 애 뭐하는 거야! 경악해서 놀란 나를 무시하면서 여주가 내 허벅지를 덧그렸다.

“현지인! 너, 미쳤어? 당장 이거 풀어!”
“이제야 내 이름을 불러주네~ 행복해라~! 역시 이 자세는 좀 불편하지? 그럼 침대로 옮겨줄게~~”

틀렸어 안 통해. 그나마 의자에서 발이 풀리는 순간 도망가려고 했지만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달려드는 장정들 때문에 다시 붙잡히고 말았다.

“젠장,”
“어머! 예쁜 입에서 왜 그렇게 험한 말을 해? 그러니까 왜 도망치려고 그랬어~ 어차피 잡힐 것을! 여기는 지하라서 빠져나가기도 힘들어~”

깜짝 놀랐다는 듯이 입가를 가리며 바닥에 제압당한 나를 보면서 여주가 말했다. 손짓 한 번에 어디에 있었는지 모를 침대에 옮겨져 다시 묶였다.

‘여전히 손목도 묶여 있고, 발목도 고정시켜버렸군. 이래서야 움직이기 힘들 것 같은 데,’

상황이 좋지 않았다. 이럴 때 녀석들은 뭐하는 건지. 그렇게 감시를 했으면서 아직도 날 못 찾았나? 아니지, 나답지 않게 웬 약한 소리인지. 정신 똑바로 차리자.

“그래... 좋아, 그 눈빛! 정말 좋아!”

근데, 얘가 좀 무서운 데요? 차라리 때렸으면 덜 할 것 같아. 멀쩡한 정신으로 강간이라니! 이건 좀 너무 하잖아!

“아진아~ 우린 이제 정말 한 몸이 되는 거야!!!”
“놔!”

이대로 당할 수는 없지. 녀석이 함부로 하지 못 하도록 잘 움직여지지 않는 몸을 격렬하게 움직였다. 바지를 벗기려던 여주가 얼굴을 구기면서 손짓을 했다.

“얌전하게 만들어.”
“크흑-!”
“아, 얼굴은 건들지 마. 마음에 드니까.”

곧바로 배에 한 방을 시작으로 온 몸에 구타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차라리 맞는 게 낮다고는 했지만 이렇게 개 패듯이 패면 어쩌라고!

침대에서 끌어내어졌지만 몸이 묶여 움직일 수 없는데다가 여럿이서 패는 데에는 장사 없었다. 그래도 얼굴은 용케 건들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어디론가 도망이라도,’

손이 뒤로 묶여 막는 것도 힘들었다. 아... 진짜. 답답하네. 발이라도 풀어줬으면 해 볼만 했을 텐데. 그런 쓸데없는 생각도 드는 것이 아마 힘이 다 빠졌나보다.

“됐어. 이제 다시 묶어. 혹시 너무 맞아서 안서면 어떡해~”
“큭- 쿨럭! 하아- 하,”
“힘들지? 이것만 끝나면 쉬게 해 줄게~”

이젠 기력도 없어서 멍하니 있었다. 아마 내 몸 아래서 움직이는 모양을 보아하니 옷을 벗기려고 하는 모양인데, 이미 온 몸에 욱신거리는 감각 때문에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음, 아진이는 평균보다 아주 야~악간 크구나?”

그게 뭔 소리래. 남의 사이즈를 마음대로 판단하지 말란 말이야. 그리고 평균 사이즈가 뭔지 어떻게 아는데.

“그래도 예쁘니까 봐준다.”

제발, 봐주지 말고 그냥 때려. 이제는 정신도 가물가물하다. 전기충격에 약도 들이마시고, 구타까지 당했으니 지금까지 버틴 것이 신기한 건가.

“승현이 형...”
“...?! 너, 너 지금 뭐라고,”
“?”

내가 뭐라고 했나? 여주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네가 그 이름을 어떻게 아냐고, 그 사람은 아닐 거라고,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다가 미친 듯이 내 뺨을 쳤다.

“아니야, 아니라고 말해! 너, 뭐야? 이제는 그 사람까지?”

어이, 진짜 죽겠어. 손이 매서웠다. 볼에서 따가운 느낌이 들었다. 아마 손톱에 긁혀 찢기기라도 했나보다. 안 돼, 빨, 빨리. 여주가 더듬으면서 말했다.

“그만,”

그리고 구원처럼 내려앉는 목소리. 감기는 눈을 애써 뜨면서 목소리의 주인을 찾았다. 그리고 내가 본 것은,

“아진아.”

승현이 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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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2-21 17:54 | 조회 : 3,790 목록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ㅠㅠㅠ 승현이 형 왜 이렇게 늦어써요! 때지! 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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