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사대천왕(...)

아침부터 조금 춥다 싶더라니 결국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오전이었지만 흐물흐물 어두워진 운동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유일하게 남주들이 모두 모여 착실하게 수업 받는 날, 강세찬은 창밖의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고 서하진은 모범생답게 선생님의 말씀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적고 있었다.

채시원도 의외로 수업에 집중하고 있고 윤슬우는... 퍼 자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도 안 깨워 주는 것이 예전부터 생각했던 거지만 이 녀석 공부는 때려치운 건가.

수업내용도 머리에 안 들어오는 데 비까지 내려와서 마음이 왠지 울적해졌다. 비가 내리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갑자기 고개를 돌린 강세찬과 눈을 딱 마주쳤다.

살짝 커졌다가 바로 찡그려지는 눈. 그리고는 고개를 다시 홱 돌리는 데 마음이 쓰려왔다. 아직 아무것도 안했다, 이 자식아...

솔직히 수업이 머리에 안 들어오는 데는 앞으로의 계획을 짜느라 그런 것도 약간 있었다. 여신님이 주신 능력을 가지고 이놈들을 꼬시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행이 소설 속에서 읽은 것이 조금 있어서 대략적인 계획은 세워졌다. 그리고 체육대회를 마친 그 날이 시작이다.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워보고 머릿속으로 시험해 보는 데 점심시간 종이 울렸다. 종이 울리기가 무섭게 여주가 와서 밥 먹으러 가자고 쫑알거리는데 머리가 아파왔다.

“아진아, 아진아. 있지~ 있지~ 오늘 점심에 잔치국수 나온데!!!”
“어.”
“우와~ 슬우도 빨리 먹고 싶다!! 그렇지 아진아?”
“우리 아기 고양이는 오늘도 까칠하네, 하하하.”
“아진을 너무 놀리지는 마세요.”
“다들 시끄러워.”

대꾸하기도 귀찮아서 대충했더니 익숙하다는 듯이 다들 한 마디씩 했다. 얘들아 나 지금 생각하느라 바쁘거든...? 하루만이라도 조용히 해주면 안 될까?

나의 속마음이 무색하게 옆에서 바로 반박 들어오는 학생들의 소음이 들려왔다. 한 달이 지났는데도 이것은 익숙해지지가 않아.

“꺄악! 서하진이다. 역시 불멸의 수호자! 오늘도 멋있다.”
“비켜! 암흑 속의 군림자, 강세찬! 여기 한 번만 봐줘~”
“윤슬우, 진짜 귀여워!! 금빛의 프린스!”
“아, 오늘도 시원씨의 미소는 나의 마음을 녹이는구나. 피의 기사님...”

그런데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남주들의 반응이었다. 이럴 때마다 얘들이 정말 소설 속 인물이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내 마음은 더 우울해졌다.

“감사합니다.”
“꺼져.”
“헤헤, 너도 귀여워!”
“하하하 너를 위해서라면 몇 번이든 웃어주지!”

말이 끝나자마자 들려오는 비명소리들. 얘들아 밖에 비도 오는데 소리 조금만 줄이지. 하지만 말을 꺼내기에는 내게 들려오는 심상치 않은 소리들이 많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왠지 한 번 말하면 그대로 끝일 것 같아.

“그런데 저기 회장 옆에 섹시한 분은 누구셔?”

너희랑 같은 나이야. 존대하지 마.

“너 몰라? 4반에 새로 전학 오신 공주님! 그 싸늘한 매력의 얼음 공주라고 불리시지.”

아니야! 공주님 아니라고! 옆에서 채시원이 웃는 게 느껴졌다. 어깨 떨지 마...

“진짜? 왜 난 몰랐지? 와- 억울해. 그 미모를 이제야 보다니.”
“그래, 벌써 몇몇 연성러들 사이에서는 유명하다고 사진 동아리에 유니크한 사진도 많다더라.”
“그래? 얼마래? 어머, 이건 꼭 사야해!”
“실은 나도 오늘 가려고 했거든! 벌써 불티나게 팔리고 있데 같이 가자!”
“그래!”

그렇게 떠들던 여자애들이 가버리자 그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몇몇 아이들도 재빨리 무리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거 초상권 침해야...

“하아-”

결국 참지 못하고 한숨이 새어 나왔다.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면서 아파오는 미간을 꾹꾹 누르는데 그 모습에 빵 터져버린 채시원이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쳐 웃었다.

“푸하하하하- 공주님이래, 공주님! 크큭, 윽, 아이고, 하하하하~”
“공주님께 너무 무례하네요. 채시원.”
“괜찮아, 아진이는 그 정도로 예쁘니까 봐 줄게.”
“시발...”
“꺄악, 역시 아진이야! 날 제치고 벌써 우리 학교 공주님이 되다니!”

이번에는 강세찬까지 웃고 있었다. 욕하면서 웃지 말아줘라. 나도 많이 부끄럽다. 너도 뭐 자랑스러운 별명은 아니잖니. 응? 암흑 속의 군림자라며.

위로냐, 놀리는 거냐. 제발 다들 꺼져줬으면 좋겠다.

5
이번 화 신고 2017-01-19 12:30 | 조회 : 4,562 목록
작가의 말

저도 빨리 그 능력을 쓰고 싶어요... 너무 기대하지는 마시고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