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그녀의 이야기

13.5 그녀의 이야기

뭘 해도 라휠은 어차피 레스를 싫어할 수는 없었다. 라휠 안에 입력된 감정에는 레스를 아끼는 감정도 들어있었으니까.


"우리는 심장이 파괴되면 죽는 거 알고 있지?"
"그건 내 안에 정보를 넣은 네가 더 잘 알지 않나?"
"네 대답이 듣고 싶어서."
"...알고 있어."


그래서 라휠은 언제나 레스에게 지게 된다.


"하지만 죽지 않는 존재도 있었어."
"죽지 않는다고?"
"정확히는 죽어도 다시 살아난다고 해야 되나? 육체를 갈아타며 다시 태어나는 우리와는 다르게 자신의 육체에서 다시 살아나는 그런 존재가 있었어."


그 이야기를 하는 레스의 얼굴은 조금 슬퍼 보여서 듣고 싶지 않았지만 레스가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기에 라휠은 가만히 이야기를 들었다.


"예전에, 아주 오래전에 한 아이가 신의 아이로 태어났어. 푸른 잔디를 닮은 머리카락에 진한 나뭇잎을 닮은 그 눈을 한 그 아이는 푸른 초원을 닮은 것 같았어."

라휠은 눈을 감고 그 모습을 그렸다. 푸른 초원을 닮은 한 소녀를.


"처음에 우리는 그녀가 불길하다고 했어. 그녀는 스스로 마법을 쓰지 못했거든. 무한한 마력을 가진 건 같았지만, 약한 육체나 힘 때문에 하등한 존재를 닮은 종족의 수치라는 이유로 막 태어난 그 아이를 죽이려고 했어."


뿐만 아니라 그 아이를 만든 부부도 죽이려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 불길한 아이가 햇살을 닮은 미소를 지어 보이자, 불안감도 수치라는 생각도 단번에 날아가 버려서.


"그녀는 사랑받는 운명을 타고난 아이처럼 미움도 불안함도 모두 녹여버리는 미소를 가지고 있었어. 어느새 수치라고 불리던 아이는 모두에게 사랑받게 되었지."


후에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가족을 이뤄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그녀의 행복은 거기까지였다. 그것이 불길한 아이였기 때문인지, 아니면 지금까지 사랑받은 삶에 대한 대가인지는 모른다.

그녀의 가족은 사고로 모두 죽었다. 흔히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모두가 불길한 운명을 타고난 그녀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자신을 원망하며 제발 죽여달라고 빌었다.

그녀는 본인의 소망으로 사형당했다. 심장을 꺼내 제단에 바치고 죽었다.


"그들은 그녀의 시체를 태우기 위해 그녀를 옮기려했어.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난 거야. 분명 꺼냈을 심장이 그녀 안에서 뛰고 있었거든."


그녀의 상처 입은 육체도 모두 재생되었다. 그녀가 눈을 뜨자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녀는 눈을 뜨자마자 자신의 가족들을 찾았다.


그녀는 자신이 한 번 죽었다는 사실도, 가족이 죽었다는 것도 잊어버린 것이다.


"그녀가 충격받아 잊은 거라고 생각한 그들은 그녀에게 사실을 알려주고 그녀가 빌자 다시 죽였지. 하지만 죽지 않았어. 그녀는 또다시 일어나서 가족을 찾고 그들은 그녀를 죽이는 일이 반복되었지."


어느새 그들은 죽지 않는 그녀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어떻게든 그녀를 죽이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죽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일어날 때마다 하나씩 기억을 잊어갔다. 그들은 결국 포기했다.


"그녀의 육체는 죽지 않았어. 육체가 죽지 않으니 영혼이 떠날 수 없는 거야. 하지만 죽지 않는 대신 영혼이 깎여나가 기억을 잊어버렸던 거지."


그녀는 자신의 주변이 죽어 나갈 때마다 원망을 듣고, 자신을 저주했다. 그녀는 끊임없이 죽여달라고 빌었다. 하지만 그녀를 죽일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났다. 기억을 잃은 그녀가 인간과 접촉하고 신의 아이를 위기에 빠지게 한 것이다. 그들은 그녀를 죄인이라고 부르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녀를 죽이려 했다. 그러나 어떤 수를 써도 그녀는 죽지 않았다.


"그러다 누군가가 방법을 찾았지. 그녀를 죽여 관에 넣고 그녀의 마력을 매개체로 저주를 걸어 영원히, 몇 번이고 죽이게 한 다음 관을 마법으로 봉인하는 방법이었어."


너무 잔인하다는 말도 있었지만, 그녀 본인은 자신을 그렇게 봉해달라고 말했다. 그들은 그로부터 몇 년 후에 환생한 그녀의 가족에게 그 관을 맡기고 영원히 지키라고 말했다.


"그렇게 그녀는, 샨은 잠들었어. 영원히."


말을 끝마친 레스는 슬픈 눈으로 라휠을 바라보고는 그를 꼭 껴안았다. 라휠은 그에게 이유를 묻지 않고 그를 마주 안아주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카루나도 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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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1-09 11:59 | 조회 : 1,254 목록
작가의 말
B.B.ZZ

죽지않고 영원히 산다는 게 과연 행복한 일 일지, 만들어진 존재에게 자아를 넣는 게 그들에게 행복한 일인지 인공지능이 발전 뭐 이러는 거 보고 오랫동안 생각한 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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