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라휠의 기억(2)

"나는 레스. 이 애는 카루나야. 우리가 널 만들었어."


굳이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라휠 안에는 정보가 입력되어 있었다. 라휠의 몸을 이루는 수많은 마법 중 기록의 마법 안에 보관된 정보에는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레스, 불로불사라 불리는 신의 아이라는 종족. 카루나, 이 나라의 주된 인구를 이루는 평범한 종족.
그리고 자신은 만들어진 도구. 자아를 가져 인간처럼 보일 뿐인, 수 천만 가지의 마법으로 만든 도구.


"알고 있어."
"그렇구나. 하하, 라휠은 똑똑하네."


레스의 첫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모든 걸 뻔히 알면서 웃는 것이 불쾌해 보이기까지 했다.

카루나는, 왜인지 계속해서 바라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여인이었다. 카루나가 자신을 보는 눈은 차가웠음에도 라휠은 그녀가 사랑스러웠다.

알 수 없는 감정에 '두려움'을 느낀 라휠은 어느 날 레스에게 질문했다.


"이런 감정은 뭐라고 부르지?"
"글쎄."
"너도 모르는 거냐?"


레스는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대충 짐작은 가."
"그런데 왜 알려주지 않는 거야?"
"네 감정은 너만이 정의할 수 있으니까."


레스는 라휠이 모르는 모든 것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라휠이 느끼는 감정만은 알려주지 않았다.


"으음, 스스로 찾기 힘들다면 관련된 책을 사올게. 한 번 읽어봐."
"그냥 네가 알려주면 쉽잖아."
"자신의 감정을 정의할 수 있는 건 자신뿐이야."


레스는 라휠을 만들었음에도 사람처럼 대했다. 하지만 라휠은 알고 있었다. 자신은 어느 목적만을 위해 만들어진 도구라는 것을.

자신을 인간처럼 대하는 레스를 볼 때마다 그 사실이 떠올라 비참해졌다.




13. 라휠의 기억(2)





레스와 카루나. 카루나는 어린 나이에 천재로 불리던 마법학자였고, 레스는 그런 카루나를 보조하기 위해 신의 아이에서 파견된 조언자였다.
레스는 말했다.


"난 쫓겨났어."


그 시대는 외부와의 인연을 끊고 살던 신의 아이가 갑작스럽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 인간들에게 마법을 전해준 때였다. 그들은 인간들을 '무지'하다고 동정하며 인간들도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라는 축복을 내려주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인간들은 그들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몇백 년이 지나도 노화하지 않고 죽지 않는 그들을 보며 인간들은 그들을 신처럼 섬겼다.

그런 인간들에게 마법을 가르쳐주기 위해 신의 아이에서 조언자들을 보냈다. 레스는 인간에게 관심이 많아 조언자를 지원했다. 그리고 어린 카루나를 만났다.


"카루나! 그만둬!"


카루나는 남들과는 조금 다른 아이였다.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서라면 누군가를 다치게 하는 것도 망설이지 않았고, 스스로를 상처입히기도 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나 감정의 변화를 감지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그런 카루나를 레스가 돌보았다. 마법 연구에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는 것이 이유였다.

처음에는 그랬다.

세월이 흐르고 카루나는 훌륭한 학자가 되었고, 레스는 동족들에게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카루나를 돌보면서 정이 들어버린 레스는 돌아가지 않았다.


"돌아오지 않을 건가? 지금이라도 후회한다면 눈 감아 줄 수 있어."
"나는 그 애의 아버지에요. 자식을 버리고 갈 수는 없습니다."
"...그대의 뜻을 존중하겠네."


신의 아이에게 다른 종족과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은 금기. 아버지와 딸이라는 관계를 맺은 레스는 추방되었다. 레스에게는 카루나 뿐이었고, 카루나에게도 레스 뿐이었다.


"카루나는 자기가 죽으면 내가 혼자 남을 게 미안했나 봐. 그래서 너를 만들었지."


라휠은 오직 레스만을 위해 만들어졌다. 심장이 부서질지 모르는 레스를 지키며, 영원을 살아갈 그의 옆에 있어 주기 위해.


"라휠, 우리는 죽어도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태어나. 왜 그런 것 같아?"
"몰라. 그런 건 내 안 정보에는 없으니까."
"하하, 한 번 생각해봐."


라휠은 레스가 싫었다. 그는 자신에게 뭐든 가르치려했다. 그냥 입력만 하면 더 편할 텐데도 인간이 하는 듯이 꼭 말과 글로 전하려 했다.



"우리의 기억은 영혼 안쪽에 새겨져. 보통 인간들은 정말정말 소중한 기억이 아니면 영혼의 겉에 새겨지거든. 그러면 죽고 나서 망각의 강에 영혼이 씻겨질 때 사라져버려."


라휠은 레스가 싫었다. 그는 너무 상냥했다.


"하지만 우리의 영혼은 견고해서 안쪽까지 물이 닿지 않아. 그래서 우리는 기억을 잃어버리지 않는 거야."


라휠은 레스가 싫었다. 카루나는 레스만을 위해 산다. 자신은 안중에도 없다. 그것이 슬펐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시작한다고 해. 환생이 아니라 다시금 인생을 시작한다고 말하지."


그를 미워할 수가 없어서, 라휠은 레스가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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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1-09 11:57 | 조회 : 1,469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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