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같은 마음

해가 뜨자마자 일어난 리카는 오늘의 식사 준비 담당인 레바를 깨우기 위해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녀는 한순간에 몸이 굳고 말았다.


"이게...무슨..."


한 사람만 겨우 누울 수 있는 좁은 침대에, 순백의 긴 원피스를 입고 누워있는 샨과 그에 깔려 괴로워하는 레바가 있었다. 리카는 잠시 숨을 고르고 한결 차분해진 표정으로 침대 시트를 잡고서 던져버렸다.


"일어나, 이 자식들아!!!"


쿵 하고 크게 부딪치는 소리에 놀란 카니가 레바의 방으로 뛰어가자 레바가 바닥에서 머리를 붙잡고 괴로워하고 있었고 샨은 어째서인지 리카에게 혼나고 있는 기이한 광경을 목격했다.





6. 같은 마음






"그러니까 샨이 오빠 방에 들어가서 자고 있었다는 거죠?"
"난 기억 안 나는데."
"나도."

상황이 진정된 후, 다 같이 식탁에 둘러앉아 아침에 있던 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고 보니 화장실 간다고 나왔던 건 기억나."
"그리고 레바 방에 들어간 건가."
"누가 들어오는지도 몰랐네. 나도 늙었나."

늙었다고 말하기엔 힘든 모습인 레바가 한숨을 쉬며 딱딱한 빵을 집어 들었다. 빵을 우물거리던 리카는 무언가 떠오른 듯 먹던 빵을 삼키고 입을 열었다.

"너 원래 방문 잠그지 않았어?"
"까먹었나?"

장난기가 많던 어린 리카가 장난을 치는 일이 많아 레바는 지금까지도 잘 때마다 습관적으로 문을 잠그고 잤다.

물론 레바는 리카가 자신의 방문을 열고 들어올 때부터 눈치채고 있었지만 아무리 혼내봐야 어린아이들이, 특히 리카가 말을 듣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예 문을 잠궈버렸다.


"이젠 잠글 필요가 없어서 그랬나."


장난기 많던 어린 리카는 이젠 자신보다 어른스러워져 무엇이든 척척 해내는 어른이 되었고 겁 많고 소심하던 카니는 샨을 처음 봤을 때 친근하게 말을 걸어주고 마을 아이들도 잘 돌봐줄 수 있게 되었다.

뿌듯한 마음으로 리카와 카니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냈지만 리카는 밥이나 먹으라며 빵을 집어 던졌다.


"리카, 오늘은 너만 가."
"뭐?"
"나는...오늘 카니 일을 대신해 주려고."


레바는 중간에 말을 흐리고는 샨과 카니를 바라보았다. 눈치가 빠른 리카는 레바가 한 말이 핑계이며, 샨과 카니가 들어서는 안 되는 이야기인 것을 알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제 열심히 했으니까 오늘은 내가 다른 사람들한테 잘 말해주지."
"고마워. 카니, 어제 무리도 했으니까 쉬어. 샨은 카니 좀 봐줄래?"
"네, 오빠."
"응. 레스."


이제 샨이 이름을 잘못 부르는 것도 익숙해졌다. 레바는 식기를 대충 치운 뒤 리카와 함께 집을 나섰다. 그런 레바를 가만히 지켜보던 샨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카니, 혼자 방에 갈 수 있어?"
"걱정 마. 열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다 내렸어."
"그래?"


샨이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었다. 그 눈은 아직 웃지 않은 채로.


"그럼 먼저 방에 올라가 있을래?"


목걸이 줄이 흔들리면서 맑은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작은 자물쇠가 푸른빛을 내며 반짝였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레바는 자신이 꿈을 꿨던 것인지 한참 동안 깊게 생각했다. 시체가, 그 잔혹한 현장이 너무나도 깔끔히 사라져버렸다. 처음부터 없었던 듯이.

굳이 그 끔찍한 현장을 친절하게 치울 사람은 없다. 오히려 보기만 해도 도망쳤을 것이다. 다시 찾아온 현장은 너무나도 고요했다.

꿈을 꾸는 것처럼 눈이 감겼다. 눈꺼풀 안쪽에는 어제의 그 현장이 그려졌지만, 눈을 뜨자 차가운 바람이 부는 골목길만이 보일 뿐이었다.


"...정말로 내가 잘못 본 건가?"


아무리 살펴봐도 흔적을 찾을 수 없었기에 레바는 결국 잘못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자신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레바는 자꾸만 눈이 감겼다.

누군가가 잊으라고 뇌 속에 직접 말을 집어넣는 것처럼 레바는 그 일을 꿈이라고 결론지어버리고 그 자리를 떠났다.

골목길 벽에 그려져 있던 밝게 빛나는 푸른색의 빛의 문자와 원이 레바가 떠나자마자 흩어지듯 사라졌다.

레바는 마을을 순찰했지만 아무런 소득도 없이 집에 돌아왔다. 샨이 식탁에 고개를 처박고 자고 있었다.


"일어나."
"우음...레스?"


레바가 샨을 흔들어 깨웠다. 샨은 기지개를 켜더니 레바를 보고서 활짝 웃었다.


"어서 와!"
"여기서 뭐 하냐?"
"슬슬 올 것 같아서 레바 기다렸지."
"카니는?"
"카니는 자."


레바는 수프와 죽을 데워 따뜻한 수프를 샨에게 건넸다.


"여기서 기다리긴 왜 기다려. 춥게."
"헤헤. 그냥 기다리고 싶었어."


샨은 수프를 한 모금 마셨다. 몸 안에 따뜻함이 퍼져나간다. 샨은 레바를 보며 말했다.


"레바를 보면 이상한 기분이 들어."
"뭐가?"
"레바를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것 같아."


처음 본 순간 그녀는 느꼈다. 그리움, 그리고 찾았다는 해방감.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를 보면 그런 기분이 들었다. 레바는 자신과 같은 느낌을 샨이 느꼈다는 것에 놀라움을 느꼈다.


"샨."
"응?"
"우리, 어디선가 본 적 있어?"


레바의 물음에 샨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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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1-01 19:55 | 조회 : 1,216 목록
작가의 말
B.B.ZZ

너를 기다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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